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엄마 Aug 10. 2021

지금은 맞고, 그때도 맞다.

  박물관에서 하는 원데이 클래스에 아이를 들여보내고 나니 한 시간 삼십 분의 여유시간이 생겼다. 집에서 먼 곳이라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일 년 전쯤 남편과 이 근방의 집을 봤던 적이 있어서 다시 돌아보기로 했다. 주차할 곳이 없어 차로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돌게 되었고, 마침 주차한 곳 가까이 부동산이 있어서 들렀다.

 부동산에서는 우리 부부가 궁금해하고 관심 가지고 있던 집이 아닌 다른 곳을 소개해주었다. 우리가 보려고 하는 집은 한 층의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는 것, 그에 비해 소개해 준 곳은 복층이면서도 아래층은 35평으로 비교적 넓은 공간을 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하였다. ‘이왕이면’ 하는 마음에 이 근처 호재라고 할 만한 일이 있냐고 물어보니 27년 지하철이 들어올지도 모른다고 한다. ‘지하철??’ 잘디 잔 얼음을 한 입 머금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든다. 지하철이 들어온다면 집값이 지금보다 오를 테지?! 이것이야말로 재테크!

 예전보다 집을 사고파는 일이 복잡해졌고, 시기가 시기인 만큼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것도 서로서로가 조심스럽기에 매물로 나와 있는 집을 보기 전에 좀 더 심사숙고를 해야 한다. 전혀 몰랐던 곳이라서 둘러보고 연락을 하겠다고 하고 나와서 아이를 픽업해 추천받은 아파트와 동네를 살피러 갔다.

 추천을 받은 곳은 16개 동에 300세대가 안 되는 5층의 아파트였다. 여러 타입의 집이 있었고 그중에 내가 원하는 복층형도 있었다. 아파트 옆은 아주 넓은 논으로 짙은 초록의 벼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앞은 산, 단지 바로 옆에도 야트막한 동산이 있었다. 근처 많은 아파트 단지 중에서도 가장자리에 세워진 편이고, 오래된 아파트들 옆에 세워져 아파트 앞 도로가 버스가 지나다니는 큰길임에도 불구하고 오가는 차가 거의 없었다. 길 가에 주차를 하고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아, 여기 참 좋다.” 하는 부분도 많았다. 일단 동네가 정말 조용했다. 사람이 많고 시끌벅적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이런 한적함을 바랐다. 초록빛으로 뒤 덮인 논도 좋았고, 나무와 풀이 많아서 숨 쉴 때마다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진한 풀 향에 마음이 편해졌다. 동네는 조용하지만 집들은 생기 있었다. 가림막 너머의 테라스에서는 여름을 맞아 테라스 풀장을 개장했는지 아이들의 물놀이 소리가 들렸다. 테라스는 멋스럽게 키워낸 식물로 이국적이면서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어닝을 늘어뜨리고, 파라솔이 펼쳐져 있는 집들을 보며 내가 지금 사는 집이 가지지 못한 여유와 여백이 그려져 부러웠다.

  그 사이 아이는 아파트 밖에 있는, 동산과 연결된 놀이터를 발견했다. 놀고 가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더니 우리 아파트에는 없는, 긴 길이의 와이어 집라인을 타고 논다. 순식간에 친구도 하나 사귀어서는 번갈아 가며 너 한 번, 나 한 번 타고 논다. 놀이가 틀어지려고 할 때쯤 아이를 데리고 동산을 올라가 한 바퀴 돌고 집에 가자고 했다. 진한 풀 향,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 아파트 테라스에서 내려다볼 이 풍경이 몹시도 부러웠다.

  팬데믹 현상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집에 갇혀 있기 시작하면서 집은 더 이상 내게 편안한 공간이 아니었다. 프리랜서라서 그 전에도 집은 내게 일터이며 쉼터인 곳이었지만 24시간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사 년 전부터 ‘오래된 주택을 사서 고쳐서 살고 싶다.’ 했지만 추위를 많이 타는 나의 체질상 안 된다고 남편이 못 박았었는데 그 마음은 다시금 스멀스멀 올라왔다. 확장되어 있는 아파트는 베란다조차 없다. 하늘을 올려다봐도 높다란 아파트들 사이에서 하늘은 손바닥만 해 보일 뿐이었다.

  그런 내게 이곳은 천국 같은 곳이었다. 아이의 안전을 걱정하지 않으면서 잠시 떨어져 있을 수 있는 별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주거 공간, 답답할 때면 아이도 나도 나무와 흙을 밟으며 쉴 수 있는 집 앞의 자연, 조용함. 아이와 남편은 솔방울로 야구를 하였고, 나는 그 옆에서 운동기구에 올라서 몸을 풀고 있었다. 남편이 말했다. “민이 어릴 때 여기 이사 왔으면 더 좋았겠다.”

 정말 그럴 것 같았다. 매우 넓은 놀이터, 언제든 갈 수 있고 나무로 둘러싸인 공간, 층간 소음에 대한 염려 없이 베란다와 복층의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것 등. 주말이면 심심해 어쩌질 못하는 아이를 데리고 동네를 한 바퀴 휘돌면서~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아이의 더 어릴 때가 생각났다. 드문드문 어쩌다 있는 강의는 내가 시간을 보며 고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늘 종종걸음 치며 집과 해당 장소, 아이의 유치원을 오가게 했다. 내가 가지 못할 때는 친정엄마를 부르고 아이를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 바통 터치하듯 아이를 내 맡기고 밤늦은 시간 야간 강의를 갈 때는 남편이 버스 타는 시간 1분, 1초에 마음이 동동거렸다. 아이돌보미 대기 줄은 너무나 길어서 내게 과연 순서는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때는 친정에서 멀지 않은 지금 사는 이곳이 최선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돌아보니 나는 그 상황에서 늘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했다. 그것이 비록 이제와 보니 기대만큼 오르지 않는 집 값 이라던지, 내가 좋아하는 나무 울창한 곳에서의 맑고 깊은숨을 쉴 수 없다거나, 시간을 맞추는 것에 조바심 내지 않을 수 있는 지하철의 부재라는 것들로 나타나 자꾸만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 진다고 해도, 그 당시에는 나는 가장 적절한 것을 골랐었다. 그렇다면 이제 좀 덜 아쉬워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선택을 해서 이렇게 사는 나를, 더 나쁜 선택을 하지 않은 나를 기특하게 여기고 칭찬해줘야 하는 거 아닐까?

사람 속에서 사는지라 다른 사람의 선택이, 다른 사람의 행동에 따른 결과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지 않을  없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동안 나는  했던가?’ 하는 생각은 귀하게 여겨야 하는 나를 생채기 내는 우울감일 뿐이다. 나는 적당히 아끼며, 적당히 여유 부리며 살아왔다. 아이가 사달라는   사주진 않았지만 항상 아이에게 좋은   먹였다. 내 옷이나 가방등은 늘 뒷전이었지만 차는 바꾸고 싶을 때 바로 바꿨다. 그게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였다. 사람마다 우선순위로 여기는 가치는 비슷하고도 다르다.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그래서 앞으로도 타인의 선택과 행동과  결과처럼 보이는 것에 나도 모르게 흔들릴  있다. 하지만 나도  시간 무엇인가로 나와  삶을 채우고 있었다고, 나를  타박하고,  조급해하며 나에게 조금은  관대해질  있길 바란다.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배웠던 미국의 대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가 생각나는 날이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 갈라져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두 길을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나그네라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덤불 속으로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풀이 더 우거지고 사람 걸은 자취가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으므로 해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입니다,


그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 적어

아무에게도 더럽혀지지 않은 채 묻혀 있었습니다.

아, 나는 뒷날을 위해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다른 길에 이어져 끝이 없으므로

내가 다시 여기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며 이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갈라져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것으로 해서 모든 것이 달라졌더라고.





The Road not Taken

Robert Frost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작가의 이전글 염색, 왜 해야 하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