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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엄마 Aug 11. 2021

사랑, 잊고 있었던.

  명란 주먹밥을 만들었다. 

아이가 저녁 반찬에는 명란젓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냉장고에 별 반찬거리가 없으니 차돌박이에 상추를 곁들이고, 명란젓을 넣은 야끼 오니기리를 만들면 한 끼 식사로는 괜찮을 것 같았다. 


 대학에 들어올 때까지 메뉴가 한정적인 외식을 했었다. 당시 엄마가 육고기를 드시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삼시 세끼 밥을 해주셨던 엄마에 대한 아버지의 배려가 부족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엄마는 늘 집에서 밥을 해주셨고, 그래서 건강하게 먹고 크긴 했으나 친구들을 통해서 또는 사회에서 만나는 식재료나 메뉴는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순대를 고 3 때 친구의 점심 도시락에서 처음 먹어봤고, 족발은 직장 이 년 차 휴일에 강제로 동원된 직장 내 산행에서 처음 먹어봤으니까. 돼지국밥은 출산하고 삼 년 뒤 처음 먹어봤었다. 

 친정에서 자라면서 명란젓을 가끔 먹어보긴 했지만 주먹밥에 넣은 것을, 일본식 주먹밥인 야끼 오니기리를 먹어본 것은 남자 친구 덕분이었다. 매일같이 회사 마치고 학교 후배들과 술집에서 저녁을 먹고 본가에 들어가던 남자 친구였는데 어느 날 늦은 밤 우리 집 앞엘 와서는 잠시 나와보라고 했다. 어리둥절해 나갔더니 비닐봉지를 툭 내민다. 뭔가 해서 봤더니 눈싸움하기에 좋을 법한 커다란 은박지 뭉텅이가 들어있다. 뭐냐고 물어보니 열어서 먹어보란다. 차 안 어두운 실내 등 아래서 처음 본 주먹밥을 야끼 오니기리라고 하는 것은 한참 뒤에 알았다. 

남자 친구는 술집에서 사장님이 만들어준 건데 너무 맛있어서 내 생각이 나더란다. 그래서 하나 더 만들어달라 부탁해서는 가지고 따뜻할 때 먹게 해주고 싶어서 그날 가지고 왔단다. 

 따뜻하고 기분 좋게 씹히는 식감의 밥알 속에 짭조름한 명란젓이 가운데 들어 있었다. 가장자리는 눌린 듯 구워져 고소하기까지 했다. 주먹밥 하나 때문에 남자 친구가 남편이 되었겠냐만은 ‘맛있는 걸 먹으면서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두고두고 감동이었던 것은 말할 것이 없었다. 


 냉장고에 있던 밥은 잡곡밥이었다. 있는 대로 하는 편이라 밥을 뜨려다 그냥 흰밥을 새로 지었다. 그때의 명란 주먹밥의 맛을 흉내라도 내 보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완두콩과 잡곡이 섞인 밥은 추억 소환에 적절하지 못했다. 명란을 잘게 다지고 술을 한 잔 넣어 비린 맛을 잡았다. 물을 작게 잡아 고슬고슬하게 흰 밥을 지었다. 꺼내어 손에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한 김 날린 후 두 손으로 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 가운데에 명란젓을 넣고 밥을 더해서 모양을 완전히 잡아줬다. 맛 간장을 흉내 내어 급히 만들고, 마른 팬에 주먹밥을 넣고 앞뒤로 맛 간장을 발라준 다음 뒤집어 가며, 굴려가며 구워줬다. 

@@오빠가 **이 아빠가 되었고 좋은 날과 나쁜 날은 1:3의 비율쯤 되려나.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하는 생각의 끝에는 배신감이 원망이 들었던 날이 많았다. 수없이 싸우는 날들 속에서 두근거림은 물론이고 믿음도 사라졌으나 결혼보다는 이혼이 어렵기도 하고, 이혼보다는 그래도 같이 사는 게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우리 부부의 성향 상 맞아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오늘은......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그 야끼 오니기리가 떠올랐다. 민사소송 중인 남편은 오늘 법원을 다녀왔다. 상대방은 변호사가 나오고, 남편은 혼자 갔다. 대략 네 번째의 평일 휴가,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오가는 지출과 함께 매번 갈 때마다 겪어보지 않은 일반인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고민거리를 안고 온다. 오늘도 어김없이 ‘어쩌나?’하는 숙제를 안 고와 혼자 고심을 한다. 센 척하지만 스트레스 상황에서 쉽게 평정심을 잃어버리는 나라서 저 문제는 전적으로 남편이 해결을 하고 있다. 내가 해결해 줄 수는 없으나 짠하고 애처로워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일 년의 좋았던 연애기간, 삼 년의 행복했던 신혼생활, 그리고 죽일 듯이 미워했던 출산 후 십 년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이제는 조금 알겠다.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가 예뻐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가엾어 보이는 것임을. 사람을 오래 두고 봐야 한다는 건 그 상대를 살피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의 어떤 모습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라는 것을. 

살던 대로 살아서 그냥 같이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내 마음속에 저 사람을 향한 짠함이 있었다. 애씀이 보여서 참 안쓰러웠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오래전 내가 받았던 것이 생각났다. 좋은 것을 나누고 싶었을 그 사람의 마음, 이 맛있는 걸 먹어보지 않았을 상대에 대한 안타까움. 그게 아마 술자리도 일찌감치 파하고, 우리 집 앞으로 오게 했던 마음이었겠지.


결과물은 내 상상 속의 그것과는 (당연히) 달랐다. 비슷하게라도 만들어지면 아이에게 “아빠가 옛날에 엄마한테 이거 사다 줬어. 맛있는 거 보니 엄마 생각난다고~” 라며 말해줬을 텐데 너무나 다르게 만들어진 모양과 맛에 아이가 궁금해할 엄마 아빠의 과거 이야기 전달은 다음 기회로 살짝 미뤘다. 그래도 아이는 원하던 걸 먹어서 좋았는지 세 개 5천 원 해서 팔자고 한다. 


오늘은...... 오래 전의 그 명란 주먹밥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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