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교육에 한 발 담그고 있다.
아이가 영성체를 준비할 때 보좌신부님께 이름만 들었던 교육이다. 그 후 보좌 신부님이 바뀌셨는데, 바뀐 신부님께서 교사 과정을 수료하시고 교사가 되셔서 아이와 친구들이 5학년일 때 교육을 해주셨다. 그러면서 성당에서는 부모들을 대상으로도 오리엔테이션을 제외한 11회기 강의를 듣도록 교사를 초빙해 진행하셨다. 신부님은 아이들을, 교사는 그 보호자들을 지도하였다. '나도 어릴 때 이런 교육을 접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할 만큼 당연하지만 새롭고, 누구나 알지만 신선한 교육이었다. 나는 강사로 다른 강의들을 하고 있으니까, 정말 좋은 이 내용을 강의하고 싶었다. 좋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길 바랐다. 그래서 줌으로 열린 교사양성워크숍을 수료하였다. 그러자 우리 성당에 초빙되어 오셨던 선생님께서 드디어 지역에도 교사가 몇 되니 모여서 지역 모임을 이어가면서 교안연구를 해보자고 해 함께하게 되었다.
하지만 곧 좋은 일을 하면서 수익도 얻고 싶은 내 판단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한 아이의 보호자로서, 급변하는 시대를 살아온 성인으로서 해당 교육을 접할 때와 강사로 콘텐츠와 강의 현장을 고려했을 때 이 교육에 대한 내 평가는 180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종교를 떠나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내용이지만 종교의 색을 강하게 띠고 있는 수업이다. 그래서 교육 현장을 만드는 것이 정말 어렵다. 학교 법인이 종교법인이어도 강요의 표현이 되지 않도록 자기 점검을 해야 하는 요즘이다. 그리고 대입을 앞둔 학생들과 보호자들에게는 가치보다는 국영수가 더 중요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떠한 가치든 대부분의 가치는 그냥 계속 뒷전이 되는 세상이다. 많은 가치들이 그렇게 부와 명예의 후순위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이 교육은 상업화할 수 없다. '상업화'라는 표현보다 적절한 표현을 떠올리지 못해서 이렇게 썼지만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이라는 뜻이 아니다. 더 편하게 얘기하자면 이 수업의 강사는 불러주는 곳도 잘 없다. 수업을 한다 하더라도 아주 적은, 시간당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나오는 강사료를 받을 뿐이다. 교육 기관에서 서울 본부로 입금한 금액 중 일부 금액. 그러니까 내가 이 강의를 한다면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다른 강의를 통해 얻는 수익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봉사하는 마음으로 강의해야 한다는 거다. 직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 안의 선한 마음이 꺾이면 동기부여가 사라지는 그런 환경이다.
교사모임이 처음 시작될 땐 꽤 많은 사람이 모였지만 점점 사람이 줄어들었다. 우리 성당에 강의를 오셨던 선생님과 수녀님 두 분 그리고 나. 이렇게 네 명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올해, 한 학교에서 교육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같이 할 수 있냐고 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당시엔 깊이 고려하지는 못했다. 그냥 작년 월모임을 하면서 알게 된, 기존에 다른 교육을 강의했던 강사 입장에서 봤을 땐 놀랍기까지 한 강사료에 대해서만 내 마음을 접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수입을 포기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 한 번도 현장에 서보지 않은 교육 내용이라서 배워가고, 의견을 내고, 서포트를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교안을 만들어야 할 줄은 몰랐다.
매주 교안을 만들면서, 그리고 회의를 하면서 나는 불편하다. 불편하니까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다. 심오한 이 교육의 내용을 나는 아직 잘 알지 못한다. 그저 한 단어, 한 문장 내게 남아 있는 것들을 겨우 꿰어 가고 있다. 교안을 만들 때면 고르지도 못하고, 예쁘지도 않고, 구멍이 숭숭한 겨우 그 정도의 수준의 뜨개를 자꾸만 들어 보이라고 하는 것 같다. 회의가 끝나고 교안의 마무리를 맡을 때면 솜씨 좋은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저렇게 뜨면 된다며 자신이 짜던 고운 뜨개를 넘기며 내게 마저 짜오라고 하는 것 같다. 얕은 내 바닥을 들여다보며 자책하는 이 불편함의 시간.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