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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엄마 Feb 02. 2024

불안해

  2009년에 결혼했으니까 남편과의 결혼생활도 15년째다. 그런데 최근 남편의 말들이 불편하다. 아마 '최근'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약 삼 년 간 주말부부를 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까 남편이 최근에 말하는 방법이 바뀌었던 게 아니라, 예전에도 맞지 않았었는데 일상적인 대화를 거의 하지 못했던 지난 삼 년은 '남편의 말과 그것을 이해하는 내 마음'이 수면 아래 있었던 거다. 그러다 다시 같이 살게 된 지난 한 달, 남편이 툭툭 내뱉는 말이 내게 참 불편하게 느껴진다. 

 남편은 빠르다. 바람 같은 사람이다. 느끼려고 하면 이미 지나가 있다. 그래서 들으면 감정은 상하고 기분은 나쁜데 "기분 나쁘다." 말하는 순간 남편이 무슨 말을 했는지 잊어버린다. 왜 그럴까 고민하다가 내가 불편한 남편의 그 말을 그대로 적어보았다. 

 

(안방에 들어가서 바닥에 놓인 아이 옷을 보며) 왜 이렇게 엉망진창이야?

(전기 콘센트를 느슨하게 꽂은 아들에게) 니 큰일 나. 하지 마, 진짜. 


 할 수 있는 말인데, 그런데 나는 왜 저런 남편의 말에 욱하는 것이 올라올까. 남편의 말을 적어놓고 내가 그 순간 어떤 감정을 느꼈길래 이렇게 화가 나고 잔소리가 나오게 되는 걸까 생각해 봤다. 방이 엉망진창이라는 말을 들은 나는 그 순간 내가 하고 있던 일을 내려놓고, 안방에 가서 치워야 할 것 같은 압력을 느낀다. 그 압력은 남편이 주는 게 아니라 내게서 나온 거다. '해야 할 것 같은' 마음. 그런데 마음 한 편에서는 내가 치워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또 올라온다. '나의 옷'이 아니라 예비 중등인 '아들의 옷'이기 때문이다. 아프거나, 그럴 수 없는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면 아이가 어질러 놓은 것은 아이가 치우는 게 당연하니까. 그리고 연이어 드는 생각은 '남편과 아이가 큰 소리를 내는 상황이 되면 어쩌나.'다. 그들이 투닥투닥거리며 좋지 않은 말이 오갈까 봐, 싸우기라도 할까 봐. 또 드는 생각은 '아빠가 싫어하니까 정리해 놓으라고 말했건만.' 하는 거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나는 상황을 예측하고 미리 대비하도록 했다, 그런데 방바닥에 옷이 그대로 널브러져 있고 회사를 다녀와 피곤할 남편이 싫어하니 내가 나서서 치워야 할 것 같은 압력을 느낀다, 그리고 아들과 남편 둘 사이에서 험악한 말이 나올까 봐 불안하다 인 거다. 

 그냥 넘어갔으면 좋았으련만, 몇 분 뒤 이어지는 남편의 두 번째 말에 나도 모르게 "여보!"가 나와버렸다. 콘센트에 전원 선을 꽉 밀어 넣지 않은 건 아이가 잘한 게 아니다. 나도 안다. 하지만 그냥 '이렇게 해 놓으면 위험하니까 다음엔 조심해.'라고 말했으면 좋겠다. 나지 않은 큰일을 겁을 주고, 금지시키고, 강조하는 말들이 불편했다. 그리고 그 불편한 마음 아래에는 아이와 남편이 싸우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나는 불안하다. 남편이 화를 내는 상황, 아이가 소리치는 상황. 그리고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피곤해졌다. "쟤는 왜 나한테만"이라고 말할 남편의 대사, 아이가 쿵쿵거리고, 달래러 간 나에게 "아빠 싫어요." 등의 말을 쏟아낼 아이의 대사. 그런 말들은 다시 나의 불안감을 키운다. 아이와 남편의 사이가 나빠지면 어떡하지? 아이가 아빠에 대해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크면 어쩌지? 

에너지가 없고 시간에 쫓기는 밤이면 빨리 해결하기 위해서 나는 결국 너는 이 부분 잘못, 너는 저 부분 잘못이라는 양비론을 펼치며 판사가 된다. 바람처럼 빠른 말과 툭툭 던지는 표현은 내게도 불편이어서 아이보다는 남편을 지적할 때도 많다. 아이를 재우며 그래도 아빠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남편에게는 하고 싶은 마음을 전하지 못한니 내 마음속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제는 남편에게 싫은 소리를 했으니 오늘 아침엔 아이에게 질책을 했다. 압박과 불안에 소리를 질렀다. 터무니없이 나쁜 공평이다. 


  이 불안 속에 무엇이 있다. 부부싸움을 하던 부모님, 자주 싸늘했던 집 안 분위기, 집에 와서 며칠을 곰곰이 생각해야 왜 기분 나쁜지를 알 수 있었던 시어머님의 말을 닮은 남편의 말,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말하는 그의 표현, 그리고 그 표현을 들었을 때 느끼는 나의 압박감,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아이의 판단 오류, 느리고 불안이 높은 나를 꼭 닮은 아들, 내가 원하는 가정의 모습 이런 것들이 마구 뒤엉켜 있다. 바꿀 수 없는 과거로 괴롭지 말고, 벌어지지 않은 미래를 겁내지 말아야 한다. 나는 지금 내가 불안한 것을 찾아 그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나는 우리 세 식구가 서로서로 잘 지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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