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으로 가지고 오지 않는다.

by 아니

아이의 얼굴이 좋지 않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 올라 상기되어 있고, 불편한 감정들이 마구 섞여 있는 표정이 어떤 일인지 예측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아이가 와서 말했다.


"엄마 **랑 싸웠어요."

"그랬어? 왜 싸웠어?"

"내가 싫어하는 애 얘기를 자꾸 하잖아요. 걔가 나를 왕따 시켰다면서."

"얼굴은 왜 그렇게 빨갛게 되었어? 서로 치고받고 싸웠어?"

"아니요. 맞지는 않았어요. 친군데 때릴 순 없어서 잡고만 있었는데 **이 나한테 막말을 했어요."

"무슨 말을 했는데?"

" **이가 우리 엄마가 너 부정적으로 말하니까 같이 놀지 말라고 했어 그리고 평소에도 나 싫었다고요."


아이의 얼굴을 보며 참 좋아하며 잘 지내는 친구랑 싸웠구나 추측했었고, 잠시 후 둘이서 소곤소곤하며 이야기하더니 그 뒤에 놀다가 들어와 잘 풀었거니 생각했는데 집에 들어온 아이는 그제야 모든 상황과 감정이 뒤섞인 폭풍에 휩쓸린 듯 한껏 화를 내고 짜증을 냈다. 약간의 투닥거림인 줄 알았는데 아이의 말을 듣고서 나도 놀랐다. 무엇보다 **엄마가 자녀에게 우리 아이와 놀지 말라고 말했다는 부분이 충격이었다. 가족 단위로, 부부 동반으로 식사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했고, 평소 두 아이가 자주 왕래하며 지냈기 때문에 놀라움이 컸던 것 같다. 처음엔 놀랍고, 두 번째는 서운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화가 났다. '정말 그런 말을 했을까?', '나는 그 아이가 아이들과 놀며 욕을 해도, 화가 나면 물건을 던져도 우리 아이에게 놀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었는데.' 의구심과 배신감도 들었다. 나 역시 아이처럼 복잡한 감정의 폭풍 속에 갇히고야 말았다.


엄마아빠에게 속상한 걸 털어낸 듯 아이는 여느 때처럼 일상을 보내다 잠자리에 들었다. 깜깜한 방에 누워서는 서로의 표정을 보지 못하니 깨어 있는 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서로에게 차분히 하곤 한다. 아이에게 상처받는 말을 듣고 그 마음이 괜찮아지지 않았는데도 왜 같이 놀고 들어왔냐고, 엄마와 아빠에게 자전거를 타느라 들기가 어려운 친구들의 짐을 아파트까지 부탁했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나는 친구가 별로 없으니까요."라는 대답이 나왔다. 네가 친구들과 맞춰 가는 게 크게 불편하지 않으면 그렇게 하고, 마음이 많이 상하고 불편한데도 굳이 맞춰가면서 같이 놀 필요는 없다고 말해줬다. 꼭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친구가 없는 시간도 괜찮다고.


아이에게는 최대한 덤덤한 척했지만 나도 속상했다. 상처받았다. 조금씩 부족한 부분은 있는 건데 그게 놀지 말라는 말을 할 만큼의 치명적인 단점이 되는 것인가. 아이에게 친구가 없어도 된다고 말했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한창 또래가 중요한 시기의 아이에게 친구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나도 잘 안다. 그래서 그나마 평범하게 다른 아이들처럼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 관계에서 거부당했다는 생각에 몹시 불편해졌다. 괴로움이 들끓어 오르려는 순간, 떠오르는 생각 '내 안으로 가지고 오지 말자.'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건 그 엄마의 그릇이다. 실제로 그런 말을 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앞에선 웃으며 지내고 뒤에선 자신의 아이에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건 그녀의 일이다. 나는 가끔 아이가 **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해도 "사춘기니까 그럴 수도 있어.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지켜보자."라고 했었다. 내가 아이와 주고받은 말과 마음씀이 보상받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나를 공격할 필요는 없다. 그냥 그건 그녀와 그 자녀의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내 심란한 마음을 토닥이며 나도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아이는 화장실에 가더니 문득 툭 내뱉었다.

"엄마, **이모가 그렇게 말했었다는 게 상처예요."

"그래, 그렇지. 평소 안 친했으면 모르겠는데 친하게 지내서."

"네."

"진짜 그런 말을 하셨는지 궁금하면 물어봐도 돼."

"물어봐서 그렇다고 하면 내가 뭐라고 해요?"

"그러셨구나, 섭섭했어요. 하고 그냥 네 마음을 말하면 돼. 괜찮아."


뒤숭숭한 연말을 뒤숭숭한 마음으로 보냈다. 이런 시간이 참으로 유감이다. 그래도 이 와중에도 좋은 것을 찾았다. 이제 나는 힘든 일과 건강한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다는 거다. 예전에는 이런 일이 있으면 상대에 대한 비난은 물론이고, 아이에게도 "그러길래 평소 말 좀 예쁘게 하라고 했잖아." 등의 말을 했을 거다. 그리고 결국은 자책으로 이어져 "모든 게 내 탓"이라는 결론으로 갔을 거다. 그리고 분노의 불길이 높은 온도로, 꺼지지 않고 불타올랐을 거다. 지금의 나는 아무 일이 없었던 것과 같은 상태는 아니다. 생각하면 속이 좀 헛헛하다. 그래도, 그래도 괜찮다. 내 머릿속에 그녀를 계속 넣어두지 않았고, 내 아이를 비난하지 않았으며, 나를 탓하지 않는다. 그냥, 그런 일이 벌어진 거다. 그리고 그건 내 탓이 아니다. 내 안으로 가지고 오지 않는다. 어떤 것들은 그저 지켜본다. 이 시간이 나와 아이를 더 좋은 쪽으로 성장시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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