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아이와 친구들은 다툼이 있었다. 처음에는 아이는 친구들의 다툼에 직접적으로 관여된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이후 A가 아이에게 전화해 B가 자신에 대해 뭐라고 했냐고 묻자 아이도 상황에 잔뜩 짜증이 난 어투로 B가 한 말을 내뱉어 버렸다. 나는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셋 다 화가 난 것으로 보여 곁을 떠나 주방에 있었다. 거실에 있던 아이가 A와 통화를 할 때 잠시 물리적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 아이의 입막음을 하지 못한 이유가 되었다. "말을 왜 전하니!" 하고 아이를 야단했지만 이미 물은 엎어져버렸다. "물어봐서 대답했다고요!" 아이는 아이대로 화를 냈다. 아이가 샤워를 하러 들어간 사이 A에게서 두 번 전화가 왔었고, 아이가 나와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했을 때에는 전화기 너머 A와 그의 엄마 사이에서 벌어지는 힘겨운 상황이 전해졌다. 통화는 하지 못하고 전화는 끊겼다. 이후 두 친구 모두 다음 날 볼 수 없었고, 아이는 A에게 문자를 남겼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아이는 일이 있었던 금요일에는 친구의 말과 행동에 화가 났지만 일요일이 되니 또 보고 싶은 눈치였다. 주말을 보내고 평일에는 여느 때처럼 그 친구와의 지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웃기도 했다. 아이는 친구들과 다시, 대수롭지 않게 만나서 놀고 이야기를 나눌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불안했다.
문자에 답을 하지 않는 A도, 아이가 전화해도 콜백이 없는 B도 어떤 상황이고,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A와 B 사이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아이가 전한 말로 싸움이 더 커진 건 아닌지. 이 상황이 되려 아이의 탓이 되는 건 아닌지. 처음에는 A의 엄마에게 연락해 차라도 한 잔 사주며 속상할 마음을 위로할까 하던 선의도 내 불안이 커지자 그런 행동이 옳은 것인지를 자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토요일을 앞두고 있는 금요일, 아이와 먹을 저녁을 차리던 나는 온몸을 덮칠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내 불안과 공포는 나의 과거에 있었다. 과거는 힘이 세다. 정리되지 않은 과거는 더욱더.
갈무리되지 않은 내 어린 시절의 경험과 감정은 이 상황을 순식간에 20년 전, 30년 전으로 끌고 갔다. 남들과 잘 지내고 싶었던 나, 약했던 나, 나에게 상황을 전가하고 다시 맺어지던 내가 배제되었던 연대. 평판, 내 뒤를 떠돌던 소문들. 그게 내 불안이었다. 당시의 내 고통을 아이가 똑같이 느끼면 어쩌나 하는 것이 공포가 되었다.
아이에게는 담담한 척 다음에는 그런 일이 있을 때 조금만 더 먼저 적극적으로 연락해 보라고 했다. 비밀이 아니어도 한 말을 그대로 전했어도 사람과 사람 사이 말은 전하지 말라고, 친구 사이에 나서서 중재를 하겠다는 아이에게 그것 역시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 수도 있으니 조금만 친구들 각자에게 시간을 줘라고 했다. 어른인양, 담백한 척 말을 했는데 그렇게 말을 하자마자 정말 놀랍게도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불안을 뒤집어썼다. 내가 예상하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상황이 다를 수 있다고 일주일간 내색 않고 눌러뒀던 것이 증폭되었다. 설거지를 하고, 주방을 뒷정리할 때쯤에는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소리 내어 "내가 불안해. 이런 게 걱정돼."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달랐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불안감이 높은 아이 앞에서, 내 생각의 오류로 불안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하나.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하나. 친한 사람들에게 물어볼까? 나의 안전지대인 그들과의 톡방에 '이 불안을 어찌해야 하냐.'라고 올려볼까? 고민을 하다가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게 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데 내게는 너무나 힘든 일. 그래서 이런 내가 나조차 싫은, 아니 혐오하게 될 정도의 것들. 나는 그동안 이런 것을 해결하기 위해 애써왔다. 그러나 지금, 바람 앞의 등불 같은 내 마음을 무엇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걸까. 인간이 할 수 없는 거라면 그분에게 기대야 했다.
앉아서 조용히 묵주 알을 돌렸다. 마음이 시끄럽게 날뛸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의 문장을 띄어 넘지 않고 빠트리지 않고 순서대로 조용히 해나가는 것뿐이었다. 내 모든 불안과 두려움을 바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저를 도와주세요.
기도가 끝나갈 때쯤 집채만한 파도 앞에 돛단배 같던 내가 단단하고 야무진 범선이 되어 있는 것을 본다. 있는 자가 더 가지려 하는 기도는 들어주지 않으시지만 죽고 사는 문제는 반드시 도와주신다고 했다. 아주 작은 돌마다 걸려 넘어지는, 이렇게 약한 나도 살아내고 견뎌낼 힘을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