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4일
전 날부터 엄청나게 쏟아진 비가 새벽까지 이어졌다. 아침에 일어나 분주하게 하루를 준비하면서 애써 주방 옆 뒷베란다는 보지 않았다. 안 본다고 비가 새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확인한들 속만 상할 것 같아서.
싸늘한 것도, 따뜻한 것도 아닌 판정이 보류된 온도의 공기. 그 속을 남편이 걸어 나온다. 알람에 일어난 남편이 샤워하려고 보일러 켜러 뒷베란다를 갔다가 "히익-"하고 놀라 내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재건축을 기다리는 오래된 아파트, 외벽을 타고 들어오는 빗물이다. 조금 내리는 비는 뒷베란다 천장에 곰팡이를 만들고, 많이 내리는 비는 바닥에 홍수를 이룬다. 문제는 비가 새는 위치에 전기가 있고, 김치냉장고가 있다는 거다. '빨리 김치냉장고를 비우고, 어차피 김치 냉장고도 15년이 넘었으니까 버리고, 저 자리를 비워둬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마음은 급한데 김치 냉장고는 쉽게 비워지지 않는다. 세 식구 사는데 먹을 건 왜 이렇게 많이 필요한 건지.
아무튼 남편은 쓰고 버리려고 모아둔, 찢어진 수건으로 바닥에 고인 빗물을 닦는다. 흥건하게 고여 쉽지 빨리 마무리되지 않을 텐데 그래도 군소리 없이 닦는다. 김치냉장고를 꺼내고 밀어가며 바닥을 닦고 또 닦는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저런 장면 하루에 하나씩은 있지 않을까. 변화를 요구하고, 기대하고, 기다리다 지쳐서 그냥 내려놓고 싶은 우리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래도 아이와 단 둘이 살아가는 것보단 셋인 게 나은 이유로 이 텅 빈 마음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나와 주변 사람의 관계를 그릴 때면 당연히 가장 가까운데 있다고 그렸던 사람이었는데 그 마저 내 욕심이었다는 걸 알았다. 저 사람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옆으로 당겼다가, 저 멀리 밀어내려고 했다가 갈등하다 다 타버린 내 마음이 서글펐다. 자식 때문에 갈라서지 않고 산다는 엄마의 말을 비겁한 변명이라고 했는데 내가 지금 그러고 있다. 엄마의 그 말이 변명이라 생각했던 것은 그냥 살기만 했으니까, 아빠와의 관계가 나아지지는 않았으니까. 내 말이 똑같은 변명이 되지 않으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던 철없던 시절의 뜨거움은 되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 차갑지만 않다면 뜨겁지 않아도 미적지근한 온도만 유지되어도 괜찮으리라. 그래서 하루 하나씩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도 한 존재가 없는 것보단 나은 이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