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이십오년 시월 십팔일

by 아니

남편이 없는 토요일이다. 아침에 주방에 서는데 예전에 아들과 둘이 지내던 순간이 생각났다. 아들이 4학년에서 6학년일 때 주말부부를 하느라 남편과 떨어져 있던 그때의 느낌. 둘 다 간밤에 늦게 잔 탓에 계획보다 늦잠을 잤다. 중간고사를 앞둔 아이는 토요일이지만 학원 보강을 가야 한다. 오늘은 영어, 수학 모두 보강이 있다.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학원 선생님들에게도 시험 기간이 예삿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탄단지를 맞춰 먹이는데 의의를 두고 간단히, 아이가 먹을만한 아침 상으로 얼른 한 끼 먹었다. 아이는 학원을 갔지만 그때부터 마음이 바쁘다. 몸의 기름기가 묻어있는, 남편의 침대커버도 씻어야겠고, 수건 빨래도 있다. 짙은 색상 옷 세탁도 기다리고 있고. 거기다 가장 마음을 바쁘게 하는 것은 토요일, 나도 주일학교를 가야 한다는 것.

공교롭게도 내가 주일학교로 출발할 시간과 아이가 집에 오는 시간이 동일하다. 점심을 어떻게 먹여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아이도 토요일에는 저녁을 잘 챙겨 먹지 못하니까 점심이라도 먹어야 하는데 이런 날 남편도 없으니 더 동동거리게 되고, 걱정에 마음이 무겁다.


아주 운 좋게 보강이 조금 일찍 마쳤고, 조금 더 하고 가라는 선생님의 완곡한 권유를 아이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하는 선택사항으로 이해하고는 집에 왔다. 간단히 소고기만 한 덩이 구워서 좋아하는 소스와 주고, 선생님 말씀이 오라는 뜻 같다고 하니까 "그런가?" 하면서 고기만 먹고 다시 간다. 부리나케 설거지를 하고, 성당으로 갔다.


성당으로 가는 길에서야 주일학교 교사회의 일에 떠올라 다시금 기분이 가라앉으면서 마음이 무겁다. 교리교사의 날을 앞두고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같이 일하던 누군가는 아파하는데 맘 편히 음식이 넘어갈 것 같지도 않고 새샘 수료를 축하받고 싶지도 않은 마음도 든다.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고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누구의 편도 아니라 그냥 이렇게 분열된 상황이 답답하고 편치 않았다. 역시나 회의 중 예의라는 이름으로 짧게 이야기가 되었다. 말하는 사람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건 아니지만 내 말이 어떻게 들리고, 내 태도가 어떻게 보여질 지를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나이가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닐 수도 없다. 결국 모든 사람은 다르고, 이 자리에 모인 이상 의도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내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서는 넓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회의를 하고, 교리를 하고 나면 정신없이 미사를 들어간다. 미사가 시작하기 전까지 1분도 아이들과 떨어져 있지 않으며 이것저것을 챙겼더니 정작 오후에 아들이 학원 보강 시간은 잘 맞춰 갔는지, 배가 고프지는 않은지 전화할 짬조차 나지 않았다. 미사 후 회의를 하고 있는데 아이가 학원 마쳤다며 전화가 왔다. 이번 주 복사단 회합이라고 자전거 타고 빨리 올 수 있냐고 했더니 쌩하니 온 아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자기에게 중요한 일정을 엄마가 미리 말해주지 않은 게 화난 모양이다. "엄마도 몰랐어."


아이가 간식을 먹는 것을 보고서 집으로 왔다. 아뿔싸! 빨래가 덩그러니 화장실에 있다. 오전에 애벌빨래하고는 세탁기에 넣어두고 예약해 둔다는 게 까맣게 잊었던 것. 급하게 빨래를 세탁기에 넣어 돌렸더니 남편이 온다. 아무 말 없이 들어와 화장실에 자동차 발판과 운동화만 두고 아이가 있을 중고등부 미사를 간다. 이불 빨래를 마치고, 색깔 옷들까지 넣어서 빨래 두 번을 마무리한다. 건조기에 넣고, 건조대에 널어두고 또 집을 나선다.


교리교사 회식이 있는 날이다. 마음이 무거운 일이 있다고 내 마음대로 할 순 없다. 밥 한 끼 함께 먹고 헤어져 집에 돌아왔다. 벌써 11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매 순간 열심히 살았는데, 남들과 맞추는 순간이 많았나 보다. 지치고 피곤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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