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이십오년 시월 십칠일

by 아니

아이를 태워 주는 것으로 시작하는 하루. 금요일도 흡사 레이싱 선수처럼 달려 아이를 학교 아래 내려줬다. 그리고 돌아와 그제야 밥을 먹는다. 아이가 아침을 먹을 때 함께 먹을 수도 있지만 "어서 먹고 등교 준비해라."를 연발하다 보면 제대로 씹지 않고 삼키는 것 같다. 먹은 후 체한 듯 더부룩한 느낌이 싫어 최근엔 아이와 아침을 함께 먹지 않는다. 목요일에는 갈까 말까 망설이게 되는 미사가 금요일 오전에는 서둘러 가고 싶어진다. 목요일은 마지못해 가는 사람이었다가 금요일은 마치 하루도 미사를 거르지 않는 신실한 신자인 듯 180도 달라지는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공복재 시간과 미사 전 여유 있게 성당 도착할 것을 고려해 적은 양의 밥도 반만 덜어 먹었다. 전날 빵을 먹었을 때보다 확실히 적은 양이라도 밥을 먹으니까 속이 편하다.


미사를 보고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한다. 이번 주 있었던 교사회의 오해와 다툼에 대해 도움을 청하였다. 기도하고 집에 돌아오니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 다음 주 나는 집을 비운다. 스마트폰 사용은 물론이고 외부와 연락할 수 없는 곳에서 3박 4일을 보내다 온다. 냉장고에 나만 먹는 것들은 정리해야 한다. 콩국이 많은 듯해서 국수를 삶아 콩국을 부어 콩국수를 해 먹었다.


택배를 정리하고 이부자리와 설거지의 소소한 집안일을 했다. 글을 하나 써 놓고 나니 아이가 올 시간이다. 하교한 아이가 오자마자 바쁘다며 부산하게 움직여 왜 그러냐고 하니까 4시까지 학원을 가야 한단다. 10월 초 다니기 시작한 학원을, 평일 시간표로 가는 건 이번 주가 처음이라 나는 아직 적응도 되지 않았는데. 아이는 그래도 자기 스케줄이라고 잘 챙기는 걸 보면 기특하다. 그제도 그러더니 이 날도 학원 가기 전 뭘 먹지 않으려고 한다.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면 먹는 것부터 줄어드는 아이다. 학원 일정과 숙제가 아이에게 버거운 모양인데 스스로 학원을 다니는 것을 결정했고, 시험을 앞두고 있으니 싫어도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아이를 보내놓고서 식사 준비를 한다. 오늘은 아이가 7시에 집에 오면 바로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 8시에는 비대면 수업이 있다. 급히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어 상을 차리니 그 사이 집에 와 샤워를 하고 나온 아이가 저녁상에 앉는다. 아빠의 밥이 있는 걸 보고는 "응? 오늘 아빠 출장 갔잖아요?" 한다. 일정표가 빡빡해서 오늘부터 내일까지 이어져 있는 일정 표시 줄인 것을 몰랐다. 새로 장만한 쌀로 지은 백미밥이 맛있는지 아이는 남편 몫으로 떠 놓은 밥까지 야무지게 먹는다.


아이의 수업 중 저녁 설거지를 하고 뒷정리를 하다가 수업이 마쳐갈 때쯤 잠시 집에서 나왔다. 집 앞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온, 잔뜩 불만인 표정의 아이와 마주쳤다. 요즘 아이는 연락이 되지 않는 것에 몹시 불편해한다. 아이의 기분을 풀어줄 겸, 집이 답답해서 들어가기 싫다고 하는 아이의 말도 들어줄 겸 해서 강변 자전거도로로 짧은 라이딩을 허락했다. 금방 돌아온다더니 20분이 넘어도 오지 않아 전화를 했다. 밤 11시 30분.


집에 들어와 잘 준비를 한다. 이 시간까지 약을 먹지 않은 아이에게 작은 타박을 하고. 아빠가 없는 밤이면 유난히 무섬증이 커지는 아이라서 평소보다 더 꼼꼼히 문단속을 한다. 은근히 피곤했던 하루, 묵주기도를 1단만 겨우 바치고 쓰러지듯 아이 옆에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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