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내 몸이 긴장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전엔 마사지를 받으러 가면 몸이 딱딱하다, 긴장이 높다고 해도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알아가고 있다. 몸의 긴장을 인식하며 알게 된 것이 마음의 긴장이다. 긴장을 하면 그냥 그 상태로 굳어버린 것 같다. 식탁 다리에 언제 묻어있는지 몰라 닦지 못해 볼록하게 솟아오른 채로 굳어 있는 치약처럼. 어젯밤은 그렇게 잠들었다. 쉬 잠들지 못해서 늦게까지 유튜브를 봤고 자야 하니까 자고 누운 그대로 꼼짝하지 않고 몇 시간이 지나 눈을 떴다. 아이를 깨우고 아침을 먹이고, 비가 와 평소보다 밀리는 도로를, 평소보다 늦게 나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레이싱해 아이를 태워다 줬다.
집에 돌아오니 서두르면 미사를 갈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갈 힘이 없다. 미사를 본다고, 성체를 영한다고 어제의 일들이 사라지지 않는데. 24시간 전화상담을 하는 정신건강상담전화번호를 눌렀다. 우울증이 있는 중2 아들이 커터칼을 들었다고 말했다. '무서'웠다고 말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 상황에도 자기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 남편도 얘기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상담원은 잘 대처했다며 신고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고 한다. 내가 상담을 받고 있다면 반드시 빠른 시일 내 전문가에게 해당 상황을 이야기하라고, 아이의 병원 내원 시에도 담당 의사에게 말하라고 한다. 울지 않을 줄 알았는데 무서웠다고 말하는 순간 눈물이 왈칵 났다. 담담하게 칼을 넣을 것을 말했지만 나는 무서웠구나.
전화를 끊고 잠시 슬펐다. 그러다 순간 정신이 들었다. 며칠 연달아 들었던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내가 선택하는 거라고.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괴로워하며 고통스러워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안한 것을 선택할 것인가. 상담사의 말대로 올라온 나의 불안을 잘 관리하는 것이 필요한 하루였다.
힘을 내서 밥을 먹었다. 바닥 청소를 한다. 손대기 싫었지만 그래도 설거지를 했다. 드립백 커피를 한 잔 내렸다. 어제 쓰지 못한 결과보고서를 정리하고, 계획서와 범죄회보서를 요청한 곳에 메일을 보냈다. 집에 있는 식빵에 피자 치즈를 잔뜩 올려 에어프라이어에 구워 먹었다.
어느새 오후 세 시가 다 되어 간다. 오늘은 아이의 병원 진료가 있다. 씻으려다가 늦을 것 같아 그냥 머리를 대충 올려 고정하고 뛰다시피 병원으로 갔다. 예약시간과 별개로 기본 20분은 기다려야 하는 정신과 병원에서 아이는 시험공부를 하고, 나는 묵주기도를 했다. 아이가 먼저 들어가고, 이후 내가 들어갔다. 아이는 간 밤의 일을 말하지 않은 듯했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갈등은 있지만 아이가 반 내 남자아이들과는 잘 지내는 것 같다며 의사 선생님의 얼굴이 밝다. 아이의 어제 행동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말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나왔다.
다음 예약을 하고 잠시 기다려 처방전을 받아 약국으로 내려왔다. 오늘은 아이랑 외식을 하기로 했다. 병원이나 상담을 다녀올 때는 티 나지 않게 소소하지만 좋아하는 일들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다. 예방 접종한 고양이의 츄르처럼. 지하철을 타고 대학가 앞에 가서 아이가 좋아했던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입에 맞는 음식을 먹은 아이는 기분이 좋다. 집으로 돌아와 한 시간 가량을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겨우 책상 앞에 앉아 40~50분 정도 시험공부를 했다. 그 사이 남편이 와서 저녁을 차려주고, 여행 가이드 북을 읽었다. 좀 더 용감하게 혼자 여행을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가 와서 산책을 가자고 한다. 50분가량 동네를 돌고, 구석구석 골목길을 걸었다.
오늘은 이렇게 무사히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