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이십오년 시월 이십칠일

by 아니

23일부터 어제인 26일까지 꾸르실료를 다녀왔다.

푹신한 침대와 내가 원하는 높이의 베개가 있는 내 집을 떠나 모르는 사람과 2인 1실로 방을 쓰고, 단단하다 못해 딱딱한 침대에서 자는 것은 불편함 그 자체였다. 정해진 시간에 함께 움직이는 단체 활동을 한다는 것과 내용 중 어려운 부분 역시 긴장감을 내내 유지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이 3박 4일로 끝나는 일시적인 것이라는 점과 오직 내용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다른 불편함을 최소화하려는, 온몸으로 느껴지는 봉사자들의 섬김 덕분에 잘 마무리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하느님의 은총을 먼저 느끼고 서슴없이 베푸는 선배 봉사자들이 감사하다.


기대를 하고 갔었다. 여기라면 온몸이 뜨거워지는 어떤 은총을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 내 발로 찾아간 성당, 신앙생활을 14년 하고 있지만 이랬다 저랬다 갈피가 잡히지 않는 생활에 '한마디만 하소서'라고 얼마나 기다렸던가. 따지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하고, 옷자락을 붙잡고 우는 심정으로 온몸으로 운 시간도 있었다. 주임 신부님과의 면담을 거치면서도 '나에겐 꾸르실료만이 남았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었다. 같은 본당에서 가신 분은 둘째 날이 지나고 셋째 날 만났을 때 "어제 어떤 느낌이 왔어."라고 하시기도 하고, 룸메이트는 가족에게서 온 편지를 받기도 했다. 누구에게서든 어떤 형태로든 응답을 받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나만 감감무소식, 무응답인 것 같았다. 신부님과 이야기하며 이런 마음을 털어놓자, 아직 1/3이 남아 있고, 집에 가서 받기도 한다며 기다려 보라고 하셨다.


그날 밤 옆 방도 우리 방도 룸메들끼리 이야기 꽃이 피었다. 내일이면 내 집으로 돌아간다는 기쁨에 들떠 있기도 했다. 모두들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거나 마음 편하게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도 룸메와 이야기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응"하는 소리가 내 입에서 나와 내가 그 짧은 사이에 잠이 들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며 깼다. 괜히 민망해 룸메에게 꿈을 꾼 이야기를 했다. 파견미사에 신부님이 오셨는데 머리에 알록달록한 상자를 쓰고 계셨다. 상자를 벗기니 또 다른 상자가 나오는 꿈이었다. 그리곤 다시 잠들었고, 뜻밖의 순간을 지나 무사히 수료의 순간을 맞았다. 그 순간에도 나는 덤덤했다. 덤덤해서 아쉽고 실망이었는데 갑자기 오전의 진행 내용이 확 스쳐가면서 '내 곁에 계셨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상자의 알록달록함이 무엇이었는지도 확 깨우쳐졌다.


그 느낌은 집에 돌아와서 더 강해졌다. 드디어 제대로 잠을 자려고 내 침대에 누웠는데 자면서도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지.' 생각했었다. 꿈을 꿨는데 정작 아침엔 까맣게 잊었다가 그날 오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을 읽는데 갑자기 꿈이 생각났다. 꿈속 배경은 우리 성당 앞에 있는,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였는데 그 다리에 색이 선명하고 큰 무지개가 떠 있었다. 너무나 크고 선명해 그린 것 같던 무지개.


하루 종일 감사하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20대 후반까지 지극히 냉소적이며 비관적이고 시니컬했던 나, 무정부주의자에 비혼주의자였던 내가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다. 그런 내 곁에도 계셨었구나 라는 생각이 그냥, 마음에 그냥 떠올랐고, 새겨지듯 남았다. 다짐한 대로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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