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많은, 그러면서 전 날 밤에는 잠이 자기 싫어 끝까지 버티는 아이를 아침에 깨우는 것은 힘들다. 오늘도 삼십 분가량 실랑이를 하며 깨웠다. 그래도 더 나쁜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일어나 주는 것만 해도 다행이고 고맙다. 오늘은 간단하게 냉동 주먹밥을 먹겠다고 해서 시판 제품을 꺼내어 데워줬다. 어제는 조미 김에 밥 말고, 메추리알 장조림을 번갈아가며 떠 먹였다. 어제는 일 년 반 중학교를 다니면서 처음으로 아침에 양치를 못하고 가는 날이었다. 학교 가서 하라고 휴대용 치약 칫솔을 넣어주긴 했지만 습관이 되어 결국은 빼먹을까 싶어 "오늘은 집에서 양치하고 나가자." 했지만 오늘도 부리나케 나가느라 결국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치약 칫솔을 또 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제보다 3분 일찍 나와서 약간의 마음의 여유가 있다. 극단적으로 늦은 시간에 나와서 결국 아이가 지각을 한 적이 있다 보니까 이 아슬아슬한 시간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도로도 혼잡하지 않아서 무사히 학교로 향했다. 잔소리일 때도 있고, 대화일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이의 등굣길을 같이 하며 이야기 나누는 순간이 참 좋다. 오늘은 웬일인지 "엄마 나도 사랑해요." 하고 차에서 내린다.
집에 돌아오니 정신이 없다. 아이를 태워주기 전 나가면서 돌려놓은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고, 수건들을 모아 과탄산소다에 풀어놓은 것도 펼쳐져 있다. 후다닥 급하게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이불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린다. 머리를 감는다. 그러고 나니 세탁기가 다 돌아갔다. 빨래를 꺼내고, 건조대 두 개를 꺼내어 펼치고 널어놓았다. 그리고 수건 빨래를 또 모아 넣어 돌린다.
오늘은 미사 갔다가 미루던 은행일을 보러 가야 한다. 애매하게 남는 금액이 있어 백만 원을 한 두 달 예금해 뒀었는데 찾아서 정리해야 한다. 결혼해서 수없이 많은 적금과 예금을 들었지만 온전히 내게 쓴 것이 없다. 집 대출금을 갚고, 차를 바꾸고, 지금은 전세자금을 돌려줘야 하니까 돈이 생기면 또 거기에 뭉쳐 놓는다. 그런데 이 백만 원만큼은 내가 쓰고 싶다. 어제 여름옷 정리를 하는데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옷이 없었다. 가을 겨울 입을 바지가 두 벌. 그래도 때와 장소에 맞게 옷을 입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SPA 옷을 입어 예쁠 나이도 몸도 아니니까.
부리나케 나섰는데도 입당 성가 후 들어섰다. 아이고. 어제와 같이 제일 뒷자리에 앉았다. 미사 후 남아서 묵주 기도를 하고 일어섰다. 한 이주 가량 아이 학교 태워다 준 것 외에 멀리 운전한 것이 없어서 운전대가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 돈을 찾아서 결국은 또 다른 것들과 뭉쳐 놓고, 밖에서 사 먹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고는 집 와 냉동실에 있던 식빵과 치즈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했다.
목이 너무 아프다. 침을 삼키지 못할 만큼 아프고 몸살이 오는 것처럼 등도 쑤신다. 밖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집에서 혼자 있으면서도 마스크를 끼고 있다. 간단히 글 하나 쓰고, 시계를 보니 어느새 3시가 넘었다. 큰일이다. 오늘은 아이 정형외과 예약한 날. 학원 수업이 한 시간 뒤인 줄 알고 월요일에 갔다가 뒤늦게 학원 시간을 확인하고 진료를 보지 못하고 예약만 하고 왔었다. 계단을 올라가든, 내려가든 너무 아프다고 해서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확인하는 게 좋겠다 싶어 갔었다. 얼마나 아팠냐고 묻는데 아이가 이 년이라고 해서 괜스레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엑스선 촬영 결과 의사는 근육의 문제인 것 같다고 하고, 약간 뼈가 살펴볼 부분은 있지만 지금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성장판도 여유가 좀 남아 있다고 하고. 도수치료를 권한다. 50분에 14만 원. 내심 놀랐지만 받는 게 좋을 것 같아 도수치료를 신청했다.
아이가 진료받는 동안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병원을 나온 아이는 샌드위치를 먹고 싶은 눈치다. 구차하지만 그냥 그대로 말했다. 집에 군고구마 해놨으니 오늘은 그냥 집에 가자고. 어릴 때부터 작은 돈을 아껴서 조금 큰 덩어리, 조금 더 큰 덩어리를 만들며 살아온 나의 경제관념이 싫지는 않은데 가끔은 맞는지 의심스럽다. 아이가 자기에게 돈을 많이 썼다고 자책하듯 말해서 단호하게 말해줬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네 몸이 건강하길 바라니 그것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면 큰돈도 아깝지 않게 쓸 수 있다, 엄마가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구나 그러니 나도 내 몸을 소중히 여겨야지까지만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고.
이번 달은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아이의 학원비며 교재비로 마음의 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다. 오늘은 도수치료를 받았고, 이번 주 토요일에는 아마도 상담비 결재를 해야 하는 날일 거다. 이런 순간, 내가 내 마음을 잡지 못하면 남편이 미워진다. 자기는 바깥일을 하니까, 생계를 위해 일하니까 아이와 관련된 것과 살림은 모두 내가 처리하고 투덜거리지도 말라던 말들. 이번 달 내가 일하는 날이 적으니 당장 이렇게 지출에 타격을 받는데 내 일은 나의 사회적 자존감을 위해서 하는 거냐고 묻던 말들. 생각하지 않으려고 털어내려고 유튜브에서 묵주기도를 틀었다.
집에 와서 아이 군고구마를 까주고, 저녁 준비를 들어갔다. 이번 주는 야채 차가 오지 않는다. 무슨 일이지? 그 참에 냉장고에 있는 것들로만 꺼내어 먹어보기로 하고, 장 보지 않고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바닥을 다시 한번 더 쓸고서야 씻을 여유가 생긴다.
관계도, 마음도, 돈도 옹색한 이런 순간이면 나도 모르게 '사는 게 뭔가.' 하는 한숨이 깊이 나온다. 괜히 구직 사이트를 기웃거리고, 주부들이 많은 카페에서 12년 만에 재취업에 성공했다는 글을 한자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꼼꼼히 읽게 되는, 그런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