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오늘의 일기를 썼다. 그런데 그전에 이 날을 먼저 쓰고 싶어 발행을 미뤘다.
아들과 향수 공방을 갔다. 교육청 프로그램을 통해 향수를 만들어본 적이 있는 아이는 그 시간이 즐거웠던지 또 해보고 싶다고 했었다. 원액을 맡으면 내가 머리가 아플 것 같아 좀 좋은 원료를 쓰는 곳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 가게 된 곳이었는데 집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어서 아이와 둘이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사장인 줄 알았던 분은 점원이셨고 예약한 시간에 맞춰 안내받은 자리에 앉았다. 사장님은 그 뒤에 오셨는데 매우 어려 보이는 외모, 그리고 그냥 외모가 아니고 잘 꾸며지고 아름다운 외모, 아주 세련된 옷차림, 앉아 있던 나와 서 있던 사장님의 높이 차이로 인한 비언어적인 표정의 잘못된 해석으로 선입견을 가진 채 시작했다. 아이랑 좋은 시간을 보내려 왔으니까라고 생각하며 시기와 질투로 만들어진 선입견을 애써 눌렀다. 그리고 향수 만들기를 시작했다. 향의 조합에 있어 고민이 되어 사장님께 물어봤다. "제가 모 브랜드의 **향수를 좋아하는데 고른 원료는 이렇게 세 가지를 골랐거든요. 제가 원하는 향의 느낌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장님은 고민 없이 시원스럽게 원료 두 가지를 골라주셨다. 향을 맡아보니 좋아서 망설였다. 향수 만들기에는 원액 두 가지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었는데 사장님이 향 하나는 서비스로 추가해 주신다고 한다. 그렇게 내가 고른 것 두 가지와 사장님이 추천해 준 하나로 총 세 개를 골랐고 아이도 역시 자기가 고른 원액에 원하는 향수의 느낌을 설명해 원액을 추천받아 세 개의 향수 원액으로 향수를 만들게 되었다. 안내해 주시는 대로 병을 골라 정량을 넣고, 라벨을 꾸며 붙였다. 그리고는 계산대로 갔다.
향수를 고르는 사이 아이는 원액 병을 떨어뜨렸다. 유리병이었는데 깨지지 않아 다행이거니 생각하고 제자리에 올려놓으려고 했는데 사장님이 보시더니 뚜껑을 열어본다. 스포이드가 상했다고 하신다. 당황해서 "아이고 저런. 나중에 계산할게요."이라고 말하고 옆에 있는 아이를 보니 표정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아이를 안심시키려고 "죄송합니다 말하고 변상하면 돼. 나중에 계산할 때 엄마가 계산할게." 했다. 나도 당황해 아이를 대신해 제대로 사과도 못했었다.
그리고 계산대에 간 거라서 죄송하다, 스포이드는 변상하겠다고 하니 괜찮다고 하신다. 그래도 변상해야 아이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하자 연거푸 별거 아니라고 하신다. 그리곤 오히려 예쁜 엽서 중 두 장을 고르란다. 거기다 미니 향수도 챙겨주신다. 아니 뭐 이런 천사 같은 분이 다 있어? 아까 젊고 예뻐 부러워하고, 세련됨에 가볍게 사업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선입견 가득했던 나는 어디 갔나.
그 순간 너무 궁금했다. 그 사람이. 하지만 내가 물어볼 수 있는 건 그냥 이 일을 하려면 어떤 공부가 필요하냐 정도였다. 아이가 이 분야를 궁금해한다고 말씀드리자 정말 상세하게 이야기해 주셨다. 화학과를 전공했고, 임용을 계획했었다고. 말하는 태도와 내용이 명확하면서도 정갈하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알려주듯, 부분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큰 그림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계속 들어와 북적이는 매장에서 사장님을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 미안했는데 아이에게 집중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리곤 아이가 향수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방향제를 두 개 더 골라가라며 선물까지 주신다.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아이가 하는 말 "나 요즘 주일학교 선생님 말고 좋은 어른은 처음 봐요.". 젊은 분이니까 주일학교 선생님 연배로 생각하고 그 세대를 중 만난 중 만난, 흔치 않고 귀한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그 말을 받아서 "그래, 참 좋은 어른이다. 그렇지." 그랬다. 흔히들 MZ라 불릴 연령대의 분이셨는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시간을, 에너지를, 돈으로 환산될 제품을 대가 없이 줬다. 아, 반짝반짝 빛나서 부러웠던 저 얼굴과 표정은 저런 마음과 시간으로 만들어졌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나 자신이 좀 부끄러웠다.
그분에게는 별 것 아닌 것들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아이는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고 기억했다. 저렇게 좋은 사람도 있구나, 그러니 너도 힘내서 자라서 어른이 되자,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태도로 대해주자 했다.
돌아오는 길은 자전거 페달을 밟아도 하나도 힘들지 않고 가뿐했다. 마음에 가득한 이 기분 좋은 느낌은 행복이었다. 참 행복했다. 아이와 연신 "우리 오늘 참 행복한 시간이었어."를 주문처럼 말했다. 행복하고 좋은 날이었다.
사흘이 지난 일기를 쓰는 이 순간은 아이와 갈등이 있었다. 나중에 돌아보고 힘들었던 순간들로만 이 시간을 기억하고 싶지 않아 좋은 사람을 만나 가슴 뻐근하게 행복했던 날도 기록으로 남겨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