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는 죄 한 번도 안 지은 것처럼 남을 심판하고~"
아이는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온라인 수업에서 무릎에 해설지를 펴 올려놓고 선생님께 자기가 푼 것처럼 대답하고 설명했다. 나도 모를 뻔했다. 설거지하면서 '이상하다.' 생각하긴 했지만 슬쩍 봤을 때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여서 믿었었다. 그런데 이인용 책상의 아이 맞은편에 앉았는데 아이의 눈동자가 이상하게 움직였다. 수업은 그렇게 끝이 났고, 나는 아이에게 "답지를 보고 했니?"라고 물었다. 아이는 아니라고 했다. 엉덩이를 들어 아이의 무릎 쪽을 내려다보았다. 답안지가 있었다. 그제야 아이는 "알겠어요. 안 볼게요."라고 하면서 답안지를 던졌다.
아이가 답안지를 보고 문제집을 푼 건 벌써 여러 차례다. 혼자서 문제집을 풀 때도 그랬고, 서울시 교육청 지원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수업에서도 그랬다. 지난번에는 선생님께 들켜서 혼이 나는데 옆에서 듣던 나도 가시방석에 앉은 양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정해진 분량은 있지만 못했다고 혼내지도 않고, 수업 중 물어본다고 핀잔을 받지도 않는데 대체 왜 그랬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선생님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 뒤 분량도 줄이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물어보라고 했건만 아이는 또 그랬던 거다.
왜 그랬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반은 아는 거라서."라고 말했다. 반은 아는 거면 반은 모르는 거다, 틀려도 되고, 몰라도 되고, 물어보면 된다고 말했다. 짜증이 잔뜩 난, 그럴 때면 나오는 으르렁거리기 직전의 동물의 표정이 되어 콧잔등을 움직이며 "잘못했어요."라고 한다. 나는 저런 표정으로 나오는 잘못했어요를 늘 믿을 수 없어 힘들다. "알겠다. 네 행동에 화가 났고, 엄마도 화를 풀 시간이 좀 필요하다. 네 행동에 대해서 엄마한테 사과하기보다는 너 자신에게 좋지 않은 행동이니 생각해 보면 좋겠다."라고 했다. 그러는데 아이는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고는 스마트폰을 본다. 엄마로 인해 기분이 나빠지자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든 거다. 싸움의 불씨는 스마트폰으로 옮겨갔다. 스마트폰을 올려두고 자러 가라고 했다. 대꾸하지 않는다. 아이 스마트폰의 스크린타임을 본 지는 두 달, 스마트폰 내용을 본지는 몇 달이 흐른 것 같아 생각난 김에 보자고 했다. 그건 안 되겠단다.
이후에는 쓸모없는 소모전의 시간이었다. 비꼬고 비아냥거리는듯한, 지금의 분위기와 맞지 않고, 부모-자녀라는 관계에도 맞지 않은 것 같은 말들의 튀어나옴. 견디기 힘들었다. 엄마는 화가 났지만 소리치고 싶지 않다, 잘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말을 하지 않자 아이는 저렇게 말했다. 그다음 또 뭐라고 비난한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잊고 억울함만 남아서 아이의 상담을 가서 대화 패턴이 주제가 되면 알아봐야겠다 싶어서 녹음을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는 한껏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그만 말해야겠네라고 한다.
방에 있는 남편에게 가더니 산책을 가자고 한다. 남편은 "네가 무슨 말할 줄 안다. 지금은 늦었으니 자자."라고 했다. 그러자 남편을 긁기 시작한다. 부모의 위치를 위협하는 말, 단어, 억양을 쓰며. 그래도 오늘은 고맙게 남편이 상황을 회피하거나 아이에게 흠 잡힐만한 말과 행동을 하지 않으며 아이를 단호히 야단쳤다. 물론 그러기엔 너무 머리가 커져서 아빠의 단호한 태도에도 비아냥거림과 말도 안 되는 억지(이 시간에 산책을 가겠다, 집을 나갈 거니까 모텔비를 달라)는 이어졌지만 어쨌든 남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을 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덕에 내가 혼자 이 시간을 버티는 것 같은 외로움과 힘듦에 빠져 들지 않을 수 있었다. 남편은 감정과 상황과 표정의 부조화를 말하며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말하면 된다라고 간단한 메시지를 줬다. 나 역시 우리는 네 행동에 화가 난 거다, 네가 그렇게 행동하면 엄마는 네 마음을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네 마음을 알아주길 원하면 감정을 말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기로 며칠 전에 약속하지 않았냐며.
자러 들어간다는 아이가 자해를 할까 봐 아빠와 자라고 했다. 혼자서 잔단다. 남편이 그러려면 주머니를 보자고 했다. 아이는 잠옷 주머니를 절대 보여줄 수 없다고 한다. 잠옷 주머니를 두고 남편과 아이의 실랑이는 이어졌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만이 보호자가 아니다. 우리는 너를 보호하기 위해서 위험한 도구는 치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아이가 도로 방에 들어가서 부스럭거리더니 돌아 나왔다. 그리고 정신과 약으로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한다. "상태가 이러니 한 봉 더 먹어야겠네."라고.
결국 주머니를 비우고, 약을 약상자에 다시 넣고 아빠와 함께 침실로 가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마음이 착잡했다. 마침내 앞에 켜져 있던 노트북 속 열려 있는 파일에는 아이의 어린 시절 모습이 있다. 이 시절에 나는 이런 순간을 예상하지 못했지, 이 때도 아이는 아팠을까.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내색 없이 꾹 참았다.
자러 들어가는 것 같던 아이가 방에서 나오더니 내게 4장의 느낌 카드를 뽑아 올려놓고는 간다. 수치스러운, 겁나는, 샘나는 그리고 희망찬. 들어가는 아이를 다시 불러냈다. 그리고 꼭 안아줬다. "느낌을 잘 찾았네. 마음이 복잡하겠다. 오늘은 자고 내일 이야기 듣자."
알고 있다. 아이를 야단치고 나서 내가 평소와 같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대했다면 그 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나도 속상하다. 반복되는 상황에 실망도 염려도 된다. 그래서 시간을 좀 달라는 건데 이것 역시 보호자로서 적절하지 않은 걸까. 마음이 아프면서도 그래도 아주 작은 빛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가 뽑은 네 장의 느낌카드 중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희망찬'이 내 마음에도 있다. 슬프고 힘들다. 눈물 나고 억울하다. 그럼에도 다음엔 좀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