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체험학습을 가는 날이다. 학교에서 신청서를 받을 즈음에 갈지 말지 고민이라고 해서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싸인만 해서 주고 안내지의 윗부분을 잘라두지 않았더니 일정을 몰랐다. 집에서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곳이라 아이는 불안했던지 전 날 하교해서는 "엄마 내일 데려다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쩌나. 나는 집 근처에서 강의가 있는 날이고, 차가 많이 밀리고 거리도 먼 그곳을 데려다주고 오면 나는 시간 맞춰 들어갈 수가 없다. 그래서 안된다고 했다. 아이는 수긍하고 받아들였지만 몇 번이나 내비게이션을 보며 무엇을 타고 갈지를 고민한다. 버스를 타고 한 번에 갈 것인가, 지하철을 환승하며 갈 것인가. 혼자 해보는 지하철 환승에 반대 방향으로 가지는 않을까.
아침, 집을 나서는 아이의 눈동자가 불안으로 흔들리는 것을 본다. 아이가 처한 상황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미뤄 짐작하기에 '같이 갈 친구 없니?' 같은 질문은 하지 않는다. 혹시나 점심은 (누군가와) 먹고 오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지만 아이는 슬프게 웃으며 그런 일은 없다고 한다. "그래 그럼 엄마랑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하니 뭐 먹고 싶을 것 같지 않다고 한다. 삼삼오오 자기들끼리 점심을 먹으러 흩어질 아이들 사이에서 혼자 돌아올 모습이 그려지면서 기분이 처지는 것 같았다. 어깨를 두드려 주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힘내자는 말을 했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하지 않는 말인데 그 말 밖에는 할 수가 없는 순간이 있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아이 앞에서는 평온한 표정으로 있으려 애썼지만 현관문이 닫히고는 마음이 미어질 듯 아팠다. 아이는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힘들까.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눈가가 시큰해지고 아렸다.
괴로우니까 나도 인터넷으로 도피했다. 그러다 어쩌다 보니 바삐 준비해야 할 순간.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친구가 카톡을 보냈다. 원래 오늘은 강의하고 친구를 만나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었다. 친구를 보고 싶으면서, 아이도 챙겨야 한다는 마음에 한순간 갈피를 못 잡다가 말했다. 너를 보고 싶은데 아마도 아이가 일찍 올 것 같아서 다음에 봐야 할 것 같다고. 친구도 시원스레 그러자고 한다. 학교에 도착했다. 규모가 크면서 놀이 공간도 다양하고 넓게 갖춰져 있고, 실내 공간도 넓다. 쉬는 시간엔 아이들이 뛰어나와 놀 때 지킴이 선생님이 아이들 주변을 지키고 서 있으면서 외부인인 나의 신분을 확인하기도 한다. 좋은 학교다. 마음이 약해져 있으니까 이런 부러운 환경에 아이가 생각나면서 미안해진다. 완벽과 통제의 욕구가 올라오는 순간.
집으로 돌아왔는데 차에서 내리기가 싫다. 몸이 부서질 듯 피곤한 기분. 집에 들어가서 자도 될 텐데, 차나 집이나 아무도 없긴 매한가지인데 왜 차에서 잘 생각을 하는지. 그렇다고 자는 것도 아니고 따끔거리는 눈을 멍하니 뜬 채로 내 상태를 살폈다. 나는..... 집에 있는 집안일들이 두려웠던 거다. 눈에 보이면 해야 하는 것들. 매일매일 해야 하는 아주 기본적인 침대 정리와 바닥 청소, 설거지, 화장실 정리가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아니까 그것들이 눈에 보이면 결국 자지 못할 걸 아니까. 부리나케 치우고 있는데 12시 조금 전에 아이로부터 마쳤다고 전화가 왔다. 밖에서 밥 먹을까 물어보니 그러자고 해서 지하철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시간 맞춰 나갔다. 과업 같은 현장체험학습을 마친 아들은 아침보다는 기분이 좋아 보인다. 새로 생긴 돼지국밥집에서 아이와 밥을 먹었다. 국밥에 고기까지 따로 나오는 메뉴를 주문했더니 아이는 배부르게 먹고 얼굴이 좀 펴진다.
오후에는 정신과 정기 검진이 잡혀 있어서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병원으로 바로 갈까, 집에 들렀다 갈까 의논하다가 짐도 있고 자전거도 타고 싶으니 집에 가는 걸로 했다. 집에 들어온 김에 아이랑 15분가량 같이 누워 눈을 붙였다. 아이가 어릴 때처럼, 여전히 우리는 같이 나란히 누우면 가장 아늑한 상태로 잠에 든다. 물론 잠에 들 때만의 이야기다. 깊이 잠들까 봐 알람을 맞춰 뒀다가 결국 알람 소리에 겨우 일어나 냉장고에 있는 밀크티를 마신다. 아이도 나도 밀크티를 좋아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메뉴를 먹고, 같이 눈을 붙이고, 또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는 것까지 모두 다 아이를 위로하는 나의 방법이다. 이렇게라도 조금이라도 수면 아래의 아이가 수면 위로 올라오길 바라는 내 간절함.
정신과 진료는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역시나 예약한 시간을 넘겨 진료를 본다. 내키지 않는 곳이라 앉아서 기다리는 것도 즐겁지 않은 시간이다. 아이를 먼저 상담하고, 아이가 나오면 내가 들어가는데 의사는 아이의 상태가 많이 안정된 것 같다고 한다. 아이가 말해도 될만한 것만 추려서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하다가 며칠 전 일을 이야기했다. 아이가 감정이 쉽게 잘 상한다고 한다. 그래서 사건으로 말을 해도 감정으로 받아주라고 한다. 일단 대답은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약국에 가서 약을 찾았다. 약은 성분도, 용량도 그대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아이가 다쳤다. 나보다 앞서 가던 아이가 저만큼 멀어졌는데 어느 순간 눈에서 보이지 않았다. 잠시 페달을 밟으며 주위를 둘러보느라 아이의 뒷모습을 놓친 사이, 아이는 자전거에서 낙차 했다. 보통 아이를 만나는 횡단보도 앞에서 아이가 없어 두리번거리니 익숙한 형체가 바닥에 누워 있다. 아들이었다. 주변은 금세 어르신들이 둘러쌌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갔더니 눈은 뜨고 있다. 일어날 수 있다고 해서 일어나 집으로 들어왔다. 아이의 턱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졌다. 헬맷을 쓰고 있어서, 또 한 번 다행이었다. 남편에게 전화하니 하루 두고 보고 내일 병원을 가자고 한다. 그럴까 했는데 피가 나는 볼과 턱의 반대 방향의 광대도 아프다고 한다. 겁이 덜컥 났다. 집에서 가까운 정형외과로 가서 양쪽 어깨와 머리를 엑스레이 찍었다. 다행히 뼈도 성장판도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 근육 안에서 이상이 있다면 엑스레이로는 알 수 없으니 상태를 살펴보자고 한다. 상처는 소독하고 거즈를 붙였다.
집에 와 저녁을 준비했다. 아이를 혼자 두고 장 보러 나갈 순 없어서 전 날 사둔 양배추를 찌고, 아주 적은 양의 차돌박이가 남아 있어 구워 아이만 챙겨 먹였다. 현재로서는 이상이 없는 것 같으니 엄마는 저녁 미사와 성시간을 가겠다고 했다. 아이도 따라간다고 한다. 학원 쉬는 목요일이라 성시간을 가지고 했었는데 아이가 다치니까 데리고 갈지, 말지 망설여졌다. 아이는 컨디션이 좋지 않지만 가야 한다고 생각돼서 갈까 봐 절대 강요하고 싶지 않고 곧 오실 아빠와 집에서 쉬고 있어도 된다고 했더니 가겠다고 한다. 온몸이 굴러 아플 텐데 어떻게 걸어가겠다는 건지. 중간에 힘들어하면 남편을 불러 차를 태워 보낼 생각으로 같이 다녀왔다. 성시간까지 잘 마치고 특별히 안수를 부탁드렸다. 잊을만하면 자전거를 타다 다치니 솔직한 내 심정은 못 타게 하고 싶다.
아이는 혼자 씻지 못해 남편이 샤워 시켜줬다.
유난히 길고, 힘든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