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 교안을 쓰느라 새벽 두 시가 다 되어서야 잘 수 있었다. 이번 주는 아침에 힘들게 눈을 뜰 때마다 나중에 짬이 나면 꼭 낮잠을 자리라 생각하지만 시간이 허락하지도 않고, 시간이 있어도 자지 않는다. 아무래도 자유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잠이 오는 피곤함과 놀고 싶은 마음, 쉬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올라와 순위를 정해지 못해서인 듯하다.
금요일도 아이를 태워다 주며 시작했다. 집에 와 당일 상장하는 공모주를 하나 팔고, 레토르트 수프만 하나 얼른 데워먹고 바로 미사를 가기로 했다.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씻고 가고 싶지만 그럼 늦는다. 9시 30분쯤 집을 나서려는데 화장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꿀렁꿀렁하는 물소리가 들리더니 양변기 가장자리 물 막음을 해 놓은 곳으로 물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변기 속의 물이 마치 끓어오르듯 부글부글거리길 1분 이상 동안 했다. 놀라서 영상을 찍어 남편에게 보냈다. 그랬더니 변기가 역류할 수 있으니 관리사무실로 연락하라고 한다. 부리나케 아파트 관리 사무실로 연락을 하니까 사람을 보내겠다고 한다. 약 10분간 기다려도 사람이 오지 않는데 지하 계단 아래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현관을 나가 아파트 지하계단으로 갔다. 배관이 노후한 오래된 아파트라서 물을 흘려보내며 막힌 것을 풀고 있으니 우리 집의 변기는 한동안 더 시끄러울 수 있다고 한다. 역류할까 봐 전화를 했고, 그렇지 않다면 안심하고 외출하고 오겠다고 했다. 이미 그때가 9시 50분이었다. 부리나케 성당으로 종종걸음 쳐 갔고 역시나 입당 후 들어가 가장 뒷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이 날의 복음은 몇 번이나 들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사회적인 인식, 단어에 대한 느낌과 가치관, 정서의 차이가 복음을 이해하는데 더 어려움이 되는 것 같았다. 신부님께서는 "좋은 자리에 있을 때 남에게 잘 대해주는 것"을 강론으로 말씀하셨다. 한결 이해가 쉽다. 미사를 마친 후 주임 신부님이 평소 나오시던 방향이 아니라 반대편인, 내가 앉아 있는 곳으로 나오시며 잠시 나오라고 하신다. 그리고는 성전 통로 앞 테라스로 나가 문을 열어 두신 채 꾸르실료 다녀온 것을 물어보신다. 개인적으로 잘 다녀왔다고 생각하지만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나의 개인적인 경험조차도 타인의 평가를 신경 쓰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아들에게만 말했던, 꿈 이야기를 신부님께도 말씀드렸다. 신부님이 신기해하시며 그즈음 찍은 사진을 보여주셨다. 꿈과는 좀 달랐지만 선명한 무지개가 걸려 있는 내 꿈속의 바로 그 장면이었다. 신부님도 과정을 들은 그 당시에는 큰 감흥이 없었다고, 그런데 오 년 뒤 지도 신부를 하겠냐는 부름에 서슴없이 하겠다고 응답하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이제 첫 발을 떼었으니 잘해 나가 보자고 하신다. 이 주가 지나 조금은 색이 바래지고 있던 마음에 다시금 온기가 도는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집안일들을 처리했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모아둔 짙은 색 옷을 세탁했다. 그리고 보니 어느새 오후. 조금 일찍 나가서 오늘 강의 가는 곳 인근 성당 가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려고 했는데 유튜브로 듣고 있던 법륜스님 즉문즉설에 내가 계획했던 시간을 넘겨버렸다. 아이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부랴부랴 마저 머리를 말고서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애매한 시간, 어딘가 다녀오기엔 촉박하고, 대기 시간은 너무 넉넉하게 남은 시간. 어쩔 수 없다. 차 안에서 묵주기도를 하며 시간 맞춰 들어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일찍부터 차가 밀리기 시작하는 도로다. 거기다 금요일. 갈 때는 20분이면 되었던 길이 돌아오는 길은 40분이 넘게 걸린다. 출발하면서 아이에게 전화하니 벌써 학원에 갔다고 한다. 어제 다친 것 때문에 병원을 한 번 더 가볼까 했는데 토요일에 가야 하나보다.
주차하고 집에 들어섰는데 소리가 들린다. 오후 다섯 시, 아이는 학원에 있다고 했는데 대체 무슨 소린가 싶어 긴장한 채 발을 떼어 안쪽으로 갔다. 아들 방의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이 보인다. 서로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 말하지 않는다. 저녁 쌀을 씻으러 주방으로 갔더니 압력 밥솥에 씻은 쌀이 담겨 있다. 해동해 놓은 국거리 고기로 국을 끓여야 할 텐데 냉장고 속 재료를 생각하며 가방을 내려두고 재킷을 벗었다. 삶아 포장된 고구마줄기를 받은 게 있어 신맛을 제거하려고 포장을 뜯어 물에 담가 두고 집 앞 슈퍼로 가서 미역을 사 왔다. 부리나케 고구마줄기를 볶고, 미역을 불리고, 고기를 볶아 미역과 뜨거운 물을 넣어 미역국을 끓였다. 그 사이 엄마가 오늘 깍두기를 담갔다며 한 통 가져다주신다. 부모님은 딸과 사위 얼굴만 보고는 "우리는 저녁 먹었다." 하시곤 돌아가신다.
잠시 후 아이가 집으로 들어오고, 저녁을 먹었다. 랜선 캠퍼스 수업이 있는 날이었는데 멘티의 일정으로 다음 주 수요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조금 여유로워진 아이는 오랜만에 베이스 기타를 꺼냈다. 아이와 함께, 아이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