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십일월이라니.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말로 벽에 걸린 달력이 두 장 남았다. '시작이 반이니(?) 이번 달도 반은 흘러간 셈인가' 하는 이상한 계산법. 한 시간이, 반나절이,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그리고 일 년이 너무 빠르다. 빠르지 않은 시간 단위가 없다. 아쉬워서 서글퍼지는 늦가을과 초겨울의 시간.
오늘은 아들의 상담이 있는 날이다. 상담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상담사는 내가 아이와 물리적인 시간을 더 오래 보내길 바란다. 그래서 주일학교 교사를 그만둘 것을 강하게 요청해 왔었다. 상담사의 말을 전적으로 따를 수는 없었다. 그 점이 아이의 상담을 앞두고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부분이다. 아이의 어려움이 설사 과거에는 그랬다 할지라도 이제 와서 아이와 토요일 하루를 따로 보내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 내가 계속 붙어 있는 것을 아이가 원치 않는 것 같다는 나의 판단 그리고 손이 부족한 데다가 최근 한 명의 선생님을 잃어야 했던 주일학교의 상황이 있었다. 어쨌든 상담사는 아빠보다는 엄마가 아이와 함께, 대기실에서 대기를 하는 정도의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아이가 학원을 다니면서 평일 오후에 가던 상담을, 요일을 어렵게 토요일로 바꿨다. 그리고 지난주는 내가 집에 없어 아빠와 아이가 상담을 갔고, 오늘은 나와 가는 토요일 첫 상담이었다.
지난주 상담을 하고는 아이가 그만하겠다고 말했다고 상담사로부터 주중에 전화가 왔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분명히 다음 주부터는 엄마랑 토요일에 상담가 자고, 이번 주는 엄마가 없으니 아빠와 다녀오라고 했었는데, 아이도 상황을 이해하고 동의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왜 이런 상황이 펼쳐져 있는 거지? 아이와 다시 이야기를 하고 상담사께 토요일에 가기로 했다고 했다. 내가 같이 가려면 되는 시간이 오전뿐이라 오전으로 해 주셨는데 마치고 나와서 점심을 먹고, 또 성당을 가려면 마음도 시간도 바빴다.
아이와 버스를 타고 상담실에 도착했다. 생각지도 않게 오늘은 나도 함께 상담에 참여했다. 아이와 내가 자신의 장점을 말하고, 또 서로의 장점을 찾아주는 시간이었다. 어떤 점에서는 아이와 나의 장점이 매우 흡사하고, 내가 장점이라고 생각지 않았던 것을 아이가 찾아주기도 해서 민망하고 부끄러우면서 고맙고 감동인 시간이었다. 청소년기의 아이가 엄마와 함께 상담을 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완화하기 위한 시작이었나 추측해 본다.
돌아오면서 롯데리아에 들러 버거를 점심으로 먹고서 아이는 집으로, 나는 성당으로 왔다.
주일학교 초등부 교사회의를 하고서 뜻하지 않게 신부님과의 면담이 있었다. 연말이니까 내년도 교사회 구성을 고민하시는 것 같았다. 올해는 맡은 바 소임이니까 끝까지 하려고 상담사의 강력한 요청에도 계속해왔지만 상담이 토요일 오전으로 고정이 되면 오후 이른 시간부터 시작되는 교사 회의 일정에는 매번 조금씩 늦을 수밖에 없다. 오늘도 열심히 종종걸음 쳐 겨우 회의 시간에 맞춰 들어올 수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 점을 솔직히 말씀드렸다. 아이들을 만나며 행복한데, 내 아이를 챙겨줘야 하는 시간의 공백이 크다고. 그래서 마음이 갈팡질팡이라고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주일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정말 예쁘고, 내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저릿하다.
교리와 미사, 회의를 마쳤다. 중고등부 교리에 맞춰 온 아이를 만나고, 남은 초등부 간식을 하나 줬다. 그리고 기다릴까, 먼저 갈까 물어보니 먼저 가라고 해서 집에 와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집에 온 아이는 상담의 여운이 남아 있는지 나에게는 친밀하게 대하고 상대적으로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나가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남편에게는 화를 냈다. 아이가 전화를 하는데 거부로 돌려버리는 아빠라니. 십수 년 전 나도 남편에게 경험한 적이 있지만 참 저런 모습은 충격이다. 대체 몇 시에 들어오려나. 나와 아이는 내기를 했다. 아이는 12시에서 1시 사이, 나는 1시 30분에서 2시 사이라고 했다. 근접한 사람이 이기는 뽀뽀내기다.
아이가 이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