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이십오년 십일월 십일

by 아니

아침 10시 강의가 있는 날이다. 신청한 곳이 아닌데 센터에서 배정했다. 11월 강의가 몇 개 되지 않아 그냥 받았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씻고 운전해서 집을 나선다. 예전엔 산이었을, 지금도 꽤나 경사가 있는 곳에 위치한 특수학교를 갔다. 무사히 잘 마치고 나왔지만 그래도 아침 10시, 아직 입이 다 풀리지 않은 시간. 나의 강의에 아쉬움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피로가 잔뜩 쌓여 있어서인지 얼굴 근육이 다 풀리지 않은 것 같다.

근처가 친구 집이라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친구가 생일이라고 어느 해 선물을 사줬는데 나는 선물은 고민이 되어 친구 생일에 밥 사주마 했었다. 그 뒤로 친구와 나는 서로의 생일이면 밥을 사줬다. 지난번에도 간 적이 있는, 돌솥밥과 반찬이 한 상 나오는 곳으로 갔다. 열심히 먹고 근처 카페 가서 커피 한 잔 마셨다. 아직 친구의 자녀가 초등이라서 아쉽지만 1시 40분에는 헤어져야만 했다. 늘 할 말을 다 하지 못하고 오는 것 같은 아쉬움이. 좋아서 느끼는 아쉬움이다.


집에 와서는 부리나케 청소를 한다. 수건 빨래가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세탁기도 돌리고 설거지도 한다. 오늘 저녁은 또 뭘 해야 하나. 냉장고에 남아 있는 알배추와 토막 무를 이용해서 알배추 된장국을 끓인다. 코스트코에서 장 본 것도 그대로 냉장고에 있어 양고기를 꺼내 소분하고 당장 먹을 것은 밑간을 한다. 요리할 때 프라이팬이 늘 말썽이라 이번에 새로 하나 주문했다. 혹시나 하고 닦았는데 무연마제라더니 연마제가 한가득. 교환을 신청했다. 여기에 시간을 40분이나 썼더니 저녁이 늦어버렸다. 부랴부랴 굽고 있는데 이번엔 동생이 전화가 왔다. 제부와 싸웠다며 씩씩거리는 동생.


그 순간 하루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으로 채워져 있던 시간이 잠시 멈추는 기분이었다. 집안일들은 몸이 먼저 움직여야 했던 것들이라면 동생의 전화는 듣고 생각하고 말해야 했으니까. 동생이 답답하겠다, 사소한 일들에 마음이 상한 게 차곡차곡 쌓여 있겠다 생각도 들었지만 동생이 보편성보다는 특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좀 아쉬웠다. 어쨌든 안 볼 사이가 아니라면 그냥 그 정도일 때 멈췄으면, 생각을 다르게 했으면, 마음을 바꿔 먹었으면 했다. 그 시간을 지나와 봤기에 이제야 아는 거겠지. 어쩌면 나도 또 다른 '그 시간'을 겪고 있을지도 모르면서, 내 앞가림은 못하면서 지나온 길이라서 아는 것들.


결론은 누가 멱살 잡고 결혼 안 하면 어찌해버리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왜 고른다고 고른 결과가 이런가, 왜 이렇게 내가 예상하고 계획했던 모습이 아닌 다른 형태로 살아 가는가 하는 한탄이었다. 동생에게는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이야기를 하고 마무리했지만 씁쓸하다. 좀 더 나은 모습이었을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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