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이십오년 십일월 십삼일

by 아니

2026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날이다. 아이가 학교를 늦게 등교해도 등교 시간에만 신경 쓸 뿐 수능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오늘 미사를 가서야 생각이 났다. 올해 수능생들을 위한 초 봉헌이 있을 때 부모님이 해주시지 않으면 내가 해준다고 했던 주일학교 중고등부의 고3인 아이가.

혼자서도 성당을 다니는 모습이 정말 예쁜 그 아이. 실제로 외모도 예쁘지만 마음과 태도가 참 예뻐 이상하게 만나면 자꾸만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그 아이. 미사지향을 넣은 수능생들의 이름이 호명되는데 그 이름이 없다. 갑자기 정신이 확 들면서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사와 성체조배를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청소를 하고 후다닥 아침 겸 점심으로 한 끼 먹고 묵주기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5단을 할 생각이었는데 하다 보니 더 해야겠다 싶었다. 묵주기도 10단을 마치고는 오늘 강의가 있는 곳 근처 성당을 찾아, 일찍 가서 거기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려고 집을 나섰다. 도착했는데 성당 문이 잠겨 있다. 우리 성당이 잠겨 있는 일이 거의 없어서 이건 예상을 못한 일이다. 어쩔 수 없이 강의할 학교로 일찍 가서 차에 있던 묵주로 다시 묵주기도를 시작했다. 강의를 들어갔다가 나와서 또 묵주기도를 했다.


누군가는 시험 잘 치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을 기복이라고 했다. 우리는 기복신앙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수능 기도에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기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입장 차이가 있다는 생각도 한다. '시험 잘 치게 해 주세요.'가 아니라 '이 일과 결과물 역시 제가 잘 받아들이게 해 주세요.' 라면 마땅히 기도를 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그러고 나서 할 것은 기도다. 중요한 일에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자만이다.


오후 4시 조금 넘어 집에 도착해 아들의 도수치료를 위해 급하게 병원 예약 후 아들이 치료받는 중에도, 그렇게 수능이 마칠 시간까지 그 아이를 위해 묵주기도를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5시가 넘었다. 급하게 청소기를 돌리고,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어제 해 놓은 나물 두 가지가 있어서, 오늘 낮에 씻어놓고 나간 쌀이 있어서 한시름 덜었다. 간단히 국 끓이고, 떡볶이를 할 계획.


나의 주방일은 대부분 5~6시에 시작해 9시가 되면 끝이 난다. 오늘도 9시가 되어서야 설거지하던 앞치마를 벗고서, 몸을 씻는다. 이제 저녁 기도를 할 시간이다. 기도로 꽉 채운 하루 같아 왠지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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