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이십오년 십일월 십이일

by 아니

저녁나절 가족들은 모르게 술을 마시고, 일상을 마무리하고, 남편과 아이가 잘 때까지 일기 쓴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그들을 먼저 재우고, 유튜브를 보는 며칠을 보냈더니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정말 힘들다. 물 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겨우겨우 일으킨다. 아이의 아침을 챙겨주고, 태워다 주고, 집에 돌아온다. 집에 와서 머리만 감고 미사를 간다. 본당 신부님들이 지구 행사를 자리를 비우셔서 손님 신부님이 오셨다. 이웃 지구 신부님이신데 지난번 새샘 과제 관련으로 뵈었던 분이라 미사 마치고 인사드렸다.


오늘은 트레이더스에 가서 구입해야 하는 물품이 있었다. 어차피 아이가 찾는 간식이니까 체험단 신청을 했는데 자비 진행건이다. 걸어가서 제품을 구입하고, 마침 있는 모바일 상품권을 실물로 교환하고, 스타벅스에서 푸드바우처를 이용해 샌드위치를 사서 아이 간식과 내 아침을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계획은 계획일 뿐. 트레이더스에서는 체험단에 기재된 금액과 상품 금액이 달랐고(무려 이천 원이나!), 스타벅스의 푸드바우처는 제품 하나만 적용된단다. 에잇! 뜻대로 되지 않아 기분이 나쁘다. 이 정도의 일에도 내 뜻, 내 계획과 다르다고 맘 상해하는 내가 어리석게 느껴지지지만 그래도 기분 상한 건 상한 거다. 집으로 돌아와 환기하고, 청소하고, 세탁기를 돌린다. 1시가 다 되어서야 오늘의 첫 끼를 먹는다. 가까운 사람과 소통이 되지 않으면서 나는 우울감과 무기력감에 빠졌다. 그러니 나 자신에 대한 통제력도 잃은 것 같다. 그냥 굴러가는 대로 사는 것 같아진 내 삶을 느낄 때면 괴로워 또 술과 유튜브로 도피하고 만다.


아이가 올 때가 다되어 가면 또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들킬 때 들키더라도, 아이가 봐서 아는 건 아는 거라도 굳이 내가 먼저 아이가 어찌할 수 없는 내 고통을 노출하고 싶지는 않다. 망가지는 부모의 모습을 보는 것만큼 지금 저 나이 때의 아이가 두렵고 불안한 게 또 있을까.

귤과 군고구마로 아이 간식을 준비했다. 늦어서 학원에 바로 간다던 아이는 출출할게 염려되어 귤 하나, 고구마 하나만 먹어보고 가라고 하는 엄마 청에 마지못해 앉더니 맛있다며 눈이 동그래진다. 흐리멍덩하던 머리가,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치받아 올라오던 화가, 조금만 건들면 눈물이 툭툭 떨어질 것 같던 마음이 아이의 저 얼굴, 저 표정 하나에 활짝 개인다. 간식을 먹고 아이가 기분 좋게 학원을 가는 것을 보고는 저녁을 준비한다. 지출이 많아져 버렸다. 냉장고 속 재료들로 생활비 방어를 해 보려고 일부러 장을 보지 않았다. 있는 재료로 이렇게 저렇게 반찬을 만들려고 애써본다.


저녁을 준비하는 5시부터 설거지가 끝나는 9시는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간다. 좁은 부엌에서 내내 치워가며 저녁을 준비하다 보면 9시 이후에는 보상심리가 확 올라온다. 그럼 또 유튜브로 봤던 드라마를 또 보고 또 본다. 내 삶보다 힘든 삶들을 보면서, 아는 이야기라서 뒤가 불안하지 않아서 그렇게 나는 내 결핍이라는 구덩이를 대충대충 채워간다. 오늘만 이라고 하면서 또 유튜브를 켜고 술을 붓는 내가 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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