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현실편 - 말단 공무원 생존기
월급쟁이 직장인은 노비다. 이런 계급 간 불평등이 없는 평등한 자본주의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노비라니. 역사 시간에 배웠던 옛 시대의 계급 중 노비가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노비라고?
그렇다면 조선시대 노비와 우리를 비교해보자. 우리가 아는 노비는 항상 강제 노역에 끌려가고, 대감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고문도 당하고, 양반님들께서 먹고 남은 음식이나 먹던 그런 존재가 아니던가? 나무 위키의 자료를 가져와보았다. 다 읽기에는 많으니 밑줄만 읽어보자. (출처 : 나무 위키)
법제적으로 노비는 천민으로 일단 사람으로 인정받기는 했으며 나라의 백성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재산권이 법적으로 보장받았으며. (1) 재산을 매매하고 상속하며 양도할 수 있었다. 역모, 강상죄 외의 이유로 (2) 자신의 주인을 고소하는 게 금지되었을 뿐 남의 주인을 고소하거나, 민사 소송을 벌이는 것은 문제가 없어 다른 자유민에 대한 법적인 권리는 있었다. 주인과 재산상속 문제로 대를 이어 30여 년간 소송을 이어간 사례도 존재한다. 이런 법적인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으나 그것은 사회적 불평등과 권력의 문제지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리고 양반들이 노비들을 함부로 죽이거나 고문한 경우는 생각만큼 흔하지는 않았다. 우선 유교적 사회질서에서 노비는 재산이나 물건이 '아니라' 격은 낮지만 천성이 있는 사람으로 여겼고 또 노비의 가치가 많이 떨어진 조선 후기에도 양반가의 잡다한 집안일을 꾸려가는데 꼭 필요한 존재라서 노비들을 함부로 죽이거나 불구로 만드는 것은 못 배워먹은 인간들이나 하는 짓으로 치부되었다. 양반들에겐 사병이 없다 보니 노비들이 분노해서 자신을 죽이려고 들면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도 한몫했다.
(1)과 (2)만 살펴봐도, 노비는 사유재산도 가질 수 있었고 심지어는 상속과 양도, 매매도 가능한 꽤 괜찮은 계급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에서 자신의 주인은 고소하지 못한다는 내용도, 회사에서 일할 때 자신의 주인(사장님)뿐만 아니라 동료를 고소할 때도 우리는 동료를 고발한 내부고발자로 찍혀 그 회사에서는 거의 일하기 어렵게 되는 분위기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살펴보면, 법적인 권리는 있었으나 사회적 불평등과 권력의 문제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말은 현대사회의 우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법적인 권리는 분명 존재하지만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는 수많은 법들 말이다.
자, 이제 인정하자. 우리는 조선시대 노비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내 사업체 없이 노동을 제공하고 월급을 받는 사람은 모두 노비라고 보면 된다. 나라님께 소속되어 있는 공노비와, 사장님(대감님)께 소속되어 있는 사노비로 나뉠 뿐이다. 그나마 현재 대기업 사원, 즉 큰 대감님 집에서 일하는 사노비들은 사정이 좋다. 월급도 준수한 편이고 인상률도 훌륭하여 사유 재산 확보가 용이하다. 문제는 공노비들과 중소기업 사노비들이다. 공노비들은 나라님께서 안정성을 명목으로 공노비로 꼬셨으나 처우가 개선되기는커녕 임금이 오르지 않고 여전히 박봉이고, 중소기업 사노비의 처우는 예전부터 힘들기로 유명하다. 게다가 헬조선 시대의 우리 노비들은 엄청난 물가와 집값에 허덕이고 있다. 예전보다 오히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니, 우리는 자랑스러운 공무원인데 왜 공노비라고 인정해야 하는 것인가? 그 알량한 자부심 좀 버리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살아남기 위해서다. 쓸데없는 자존심을 버릴 때 비로소 현실이 보인다. 집값과 물가가 크게 상승하여, 연금조차 박살난 공노비의 얇은 지갑으로는 도저히 버티기 힘들어진 사회가 왔다. 어떻게 하면 헬조선 시대의 집값이나 물가를 극복하고 행복하게 사는 지혜로운 공노비가 될 수 있을까? 우리 말단 공무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살아가야 할 길을 함께 이야기할 때가 왔다. 돈 문제, 집값 문제, 직장에서의 고충, 연애, 결혼 생활 등 모두!
여기서 공무원이라 함은 일반 7급~9급 등 행정직, 사회복지직, 기술직, 교정직 등 다양한 직렬 분들 그리고 교사, 경찰, 소방직 등 박봉의 공무원이라면 전부 포함한다. 다만 연령층에 있어 나와 함께 살아남을 독자들은 20-40대 공무원들로 한한다. 50대 이상의 공무원 분들은 집값이나 물가가 지금처럼 비싸지는 않아 생활을 영위하기 좋았고, IMF 시대도 무난하게 보내셨으며, 공무원 연금도 토막나지 않고 많은 혜택을 보았다. 그분들은... 그저 부럽다. 이 글 읽지 않으셔도 된다. 물론 자제 분이 공직의 길을 걷고 있다면 함께 읽어주시고, 또 살아 남기 위한 지혜를 나눠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