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자리에서 mbti가 뭐야 라는 물음 받아본 적 많으시죠.
친구끼리는 물론 직장에서 동료들과 얘기할 때도 mbti가 빠지면 섭섭할 정도입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자리에서는 어색할 때 꺼내기 딱인 주제입니다. 상대에 대해 아는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mbti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듯 친근감을 느끼도록 하고 아이스브레이킹 역할을 하죠. 나와는 다른 의견을 보이면 '저 사람은 P니까. T니까.'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생깁니다.
불현듯 상사가 동료에게 'XX님은 istp라서 철벽남이신 것 같아요.'라고 얘기했던 게 귓가에 스치네요.
저도 한 때 만나는 사람에게 mbti를 묻고는 했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머리 위에 mbti를 써놓고 다니는 듯 저도 모르게 연상되곤 했습니다.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분류화하려 합니다. 사고에 편리함을 주거든요. 저도 비슷한 mbti를 가진 사람들끼리 분류해서 비슷한 성격이겠거니 함부로 판단했습니다.
점점 역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나 자신을 한계 지으면서부터였습니다. 상대를 바라보는 관점은 곧 스스로를 바라보는 관점과 같습니다. 저의 mbti를 알고 난 뒤부터 '나는 이런 mbti를 가졌으니까 이것밖에 못해. 다른 mbti가 가진 특징들을 갖지 못해.'라고 단정 지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S니까 상상력이 부족해. 창의적인 일은 못할 거야'라고 평가절하해 버립니다. 도전해 보기도 전에 말입니다.
가끔은 편안함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오히려 선택지가 많으면 이것저것 따져보고 생각할 게 많으니 피곤하거든요.
나를 가두는 것은 다름 아닌 나였습니다. mbti는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펜으로 점하나 찍은 정도로 내 일부만을 나타냅니다. 게다가 뜻밖의 상황이 나를 변화시키도 합니다.
그저 쳇바퀴 돌아가듯 요일만 다를 뿐 비슷한 일상을 이어나가다 보니 나라는 사람이 손바닥으로 가려질 줄 알았나 봅니다. 스스로를 바라보는 마음의 창을 점점 오려나갔죠.
나를 불확실성에 놓기보다 네 글자 유형의 사람으로 퉁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유형에라도 속해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나만의 색깔을 외치기보다 이미 만들어진 기준들 속 어디가 속해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입체적인 모습을 찾기 위해 더 이상 저를 mbti테스트지 위에 올려놓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개인의 서사를 궁금해합니다. 과거의 경험들이 곧 현재 개인의 모습을 형성해 나가고 그것이 더 진실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