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Santiago
번아웃 : 어떤 직무를 맡는 도중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직무에서 오는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증상의 통칭
항상 일을 하면서 일이 하기 싫어지거나, 피곤하거나, 집중이 되지 않거나, 힘들 때 "나 번아웃인 것 같아"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바보같이 진짜 "번아웃"이 찾아오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워낙 일복이 많은 스타일이라 언제나와 같이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 아주 작고 사소한 사건이 하나 생겼고 직장 생활 10년 만에 처음으로 사무실, 그것도 내 자리에서 옆자리 짝꿍에게 "저 못하겠어요"라는 말과 함께 울먹이기 시작했다. 직장 생활 10년, 회사에서 리더라는 직책을 맡은 지는 4년이 넘었는데 후배, 동료들에게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 듣는 순간 100%의 확률로 혼냈던 그 말이 못하겠다는 말인데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오게 될 줄이야 상상이나 했을까? 그리고 꼬박 한 달을 "이상한"상태로 보내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찾아가는 본가에서는 혼자 있기 싫다는 이유로 자취방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했고, 무슨 일 있냐는 엄마의 질문에 아무 일도 없다며 엉엉 울기 시작했고,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생각의 회로가 돌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쓰러질 것처럼 숨이 막히는 증상을 경험하고 바로 신경 정신과로 향했다.
가장 먼저 했던 검사가 뇌파 검사였는데, 회사에서 주야장천 걸려오는 전화로 간호사 선생님께 핸드폰을 뺏기 고나서야 검사가 시작되었다. 검사 결과는 스트레스 최대치. 스트레스의 지수를 가리키는 화살표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끝까지 향해있다.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은 시작되자마자 눈물 콧물로 난리였고, 의사 선생님의 질문 하나에 이 "이상한"상태가 왜 생긴 건지 깨달았다.
일 말고, 취미라던가, 물건도 괜찮고 정말 포괄적으로 좋아하는 게 뭐가 있나요?
말문이 턱 막혔다. 분명히 나는 여행도 좋아하고, 등산도 좋아하고 취미도 많은 사람이었는데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게 뭐가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원래 일 말고도 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은 번아웃이 오지 않아요. 올 수가 없죠
일이 전부가 되어버린 33살, 그리고 지금 내 진단 명은 심각한 번아웃으로 인한 우울증 그리고 공황장애. 아마 결과주의적인 성향,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독이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날 저녁부터 온 가족이 나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고 그 첫 번째가 바로 산티아고 보내기였던 것 같다. 오랜 시간 묻어둔 내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며 다시 에너지 넘치는 나로 변화시키기 위해 언니가 기꺼이 본인의 카드를 내밀었다. 그리고 4월이 생일인 나를 위해 온 가족이 생일선물로 산티아고 순례길에 필요한 준비물을 구매해 주기 시작했다. 배낭도 침낭도 편안한 신발까지 산티아고를 향한 준비가 진행될수록 우울증과 공황 증상은 점점 나아졌다. 아마도 적극적인 가족들의 힘이 나를 다시 바꾼 거겠지.
그렇게 4개월간의 준비 끝에 나는 산티아고에 가기로 했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