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Santiago
부르고스에서의 휴식이 끝났다. 이제 다시 걸어야 할 시간이다. 함께 걷던 친구들은 모두 헤어져 오늘부터 나는 혼자 걷기 시작한다. 혼자가 되기 위해 시작한 산티아고 순례길이지만 함께 모여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을 친구들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니 괜히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무릎 부상에 족저근막염, 약한 체력으로 한국에서 내가 정한 나의 한계는 25km. 오늘 내가 걸을 길은 부르고스 대성당부터 혼타나스까지 총 31.6km로 구글 맵 기준 7시간 15분이 걸리는 여정이다.
지금껏 걸었던 거리보다 5km는 더 걸어 야했기 때문에 아침 7시에 일찍 걷기 시작했다. 한국 순례자들은 보통 빠르면 새벽 4시, 늦으면 7시에 출발하지만 보통 내가 걷기 시작하는 시간은 아침 7시 30분에서 여덟 시 사이었다 보니 늘 남들보다 한참 늦은 시간에 숙소에 도착하곤 했다. 그래봤자 30분이지만 조금은 이른 시간에 숙소에 도착하길 바라며 씩씩하게 걸었다.
산티아고데 콤포스텔라까지 남은 거리는 501km. 무려 100km나 점프를 하다 보니 뭔가 야매 순례자가 된 느낌이다.
부르고스는 아주 큰 대도시 중 하나로, 길을 벗어나는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부르고스를 벗어나면 한참을 숲길을 걷게 된다는 후기가 있어 마지막으로 보이는 바에 들러 카페콘레체와 또르띠야로 아침 겸 점심을 먹기로 했다.
도로 한편에 위치한 테이블에 앉아 한참 멍을 때리던 중 둘러보니 한국 순례자들이 꽤나 보인다. 그중 한 분이 감사하게도 먼저 말을 걸어주셨다. 역시나 첫인사는 "한국분이세요?"
오늘 처음 만난 켄 오빠의 오늘의 목적지는 나와 같은 혼타나스인데 혼자만의 여정을 시작하고 싶어 일행들과 헤어졌다고 한다. 이름과 나이 같은 기본적인 인적사항들로 인사를 나누고 먼저 식사를 마친 켄 오빠가 출발했다. 게으름뱅이처럼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던 나도 슬슬 식사를 마치고 다시 걸어본다.
길을 걷던 중 한 마을에 위치한 작은 성당에 들어갔다. 봉사자로 보이는 할머니께서 쎄요를 찍어주시고는 작은 목걸이를 선물로 주셨다. 방문하는 순례자들 모두에게 나눠주시는 듯했다.
잠시 앉아 기도를 드렸다.
순례를 시작하고 나서 기도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침에 출발해 가장 먼저 보이는 마을의 성당에 들어가 오늘의 여정을 순탄히 마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도착하기 5km 전 즈음부터는 도착하는 순간까지 시도 때도 없이 기도한다. 제발 마을이 보이게 해 주세요, 제발 끝까지 갈 힘을 주세요, 제발 택시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해 주세요 하고.
짧지만 정성스러운 기도를 끝내고 나니 목걸이를 선물로 주신 할머니가 다가오신다. 영어는 전혀 못하시는 듯했고, 내가 스페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 또한 개의치 않는 듯, 그저 옆에 앉아 손을 꼭 잡고 기도를 해 주시고는 선물로 주신 목걸이를 손수 목에 걸어주신다.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에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목에 걸린 목걸이를 한번 쓰다듬어보고 다시 길을 나섰다.
부르고스부터 레온까지의 구간은 공포의 메세타 구간이라고 불린다.
끝없이 펼쳐진 메세타 평원은 작은 마을조차 찾기 힘들고, 아무리 걸어도 보이는 같은 풍경이 순례자의 힘을 쭉 빼놓는다. 실제로 많은 순례자들이 순례자 권태기를 이 구간에서 느꼈다고 한다.
오늘은 이 메세타를 시작하는 날인데 펼쳐지는 풍경이 마치 윈도 바탕화면 같아 멈추고 사진 찍고를 반복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금방 한계가 올 것 같았다. 오르막은 없었지만 이 넓은 평원에 그늘 한 점 없는 길을 걷자니 마치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걸어 저 멀리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라는 작은 마을이 보인다.
부르고스에서 21km 지점에 위치한 이 마을에서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1박을 한다. 더위에 지쳐 나도 여기서 숙소를 구해볼까 고민하다 더 있으면 정말 이 마을에 정착하게 될 것 같아 서둘러 출발했다.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를 지나고 나니 사람이 정말 없다. 없어도 너무 없어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가장 무서운 것은 걸어도 걸어도 마을 같은 형태가 보이지 않는 것..
분명 구글 맵에서는 혼타나스까지 1km도 남지 않은 것으로 보였는데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평원에 홀로 외롭게 위치한 알베르게가 보였다. 나중에 이 알베르게에서 머물렀던 분을 만나 들어보니 새로 생긴 알베르게라 시설도 좋고 조용하고 사람도 없는 데다 한국의 시골집 평상 같은 것이 있어 그곳에서 바라보는 별이 그렇게 예뻤다고 한다.
작은 언덕을 넘으니 마을이 보인다. 언덕 밑에 있어서 코 앞에 닿기까지 마을이 보이지 않았었던 것 같다.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 이곳부터 미리 예약해 둔 알베르게까지는 걸어서 3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알베르게에 도착하고 체크인을 묻는 직원에게 콜라를 먼저 마시겠다고 대답했다. 충분히 휴식한 후 얘기해 주면 안내해주겠다고 한다. 시원한 얼음컵과 콜라를 챙기니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먼저 도착한 켄오빠가 다른 한국분과 함께 있었다. 혼타나스의 숙소에서 처음 만난 존오빠는 모로코에 살고 있는 한국 분이다. 짧은 인사를 끝으로 씻고 정비를 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의 숙소는 무려 수영장과 사우나를 보유한 알베르게다. 한 층을 2층 침대로 가득 채운 구조로 조그만 소리도 울리는 것이 아쉬웠다. 나는 오늘 늦게 도착하여 2층에 자리를 잡았고, 대각선으로 보이는 자리가 켄오빠와 존오빠의 자리였다.
더위를 하도 먹어 저녁을 먹고 싶지 않아 샹그리아와 과일을 사서 마당에 앉았다. 마당을 자유롭게 활보하는 어린 청년이 보였다. 한국사람인가 싶었지만 혼자서 너무 잘 노는 모습에 말은 걸지 않고 나도 조용히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
저녁을 먹고 잠시 방으로 돌아와 빨래를 정리한 뒤 다시 한잔 더 하기 위해 알베르게 마당으로 나갔다. 자리를 잡은 켄오빠와 존오빠, 아까 그 마당을 활보하던 한국인 청년이 보인다. 와인을 한잔하고 있길래 나도 감자칩을 구매해 슬쩍 자리에 끼어 앉았다.
하루 40km 이상을 걷는다는 효상 군과 손목에 워치를 제외한 모든 피부가 벌써 새까맣게 탄 조오빠를 만났다. 아직 20살인 효상 군에게 우리는 사실 이모, 삼촌이었지만 형, 누나로 불리며 살아온 얘기와 살아갈 얘기를 나누었다. 와인을 한병 다 비우고 또 한 병을 사서 다른 테이블에 앉아 진지하게 각자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있는 존오빠는 올해 9월 모로코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딸에게 외국어 시험을 보게 하겠다고 했다. 공부를 잘하거나 대학을 가는 것은 중요하지 않지만 하고 싶은 일에 밑바닥부터 온전히 집중해서 해 나가는 것은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존오빠는 내가 생각했던 멋진 아빠의 모습 그 자체였다.
모두가 존 오빠의 조언에 합류해 효상 군에게 힘을 준다. 어린 나이에 혼자 타국에서 그저 걷는 일을 하는 것이 대견하다고 칭찬했다. 그때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켄 오빠가 한마디 한다.
나를 위해 한번은 좋아. 그렇지만 두 번, 세 번은 "도피"야
나중에 더 나이가 들고 삶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을 때 다시 와도 늦지 않는다며 지금은 나 자신과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투자해야 한다는 여러 의미가 담긴 한마디 조언이었다.
30대, 40대, 50대의 우리는 모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나조차도 도피를 떠나왔기 때문이었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잠시 언덕에 올랐던 켄 오빠가 기가 막힌 석양이 있다며 우리를 부른다. 언덕에 오르자 그림 같은 빨간 석양이 펼쳐진다.
하루가 끝나고 석양과 함께 밤이 되고, 다시 아침을 맞이하는 것처럼 도피 중인 내 삶도 이제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타나스의 언덕에서 나는 나의 순례 여정 후반부를 함께 할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평생 잊지 못할 순례길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