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Santiago
더는 걷고 싶지가 않아 점프를 하기로 했다.
나는 대부분의 산티아고 여정에 오르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아웃 티켓을 조금 빠른 일정으로 예약해 두었다. 보통 프랑스길을 걷는 데 걸리는 기간은 30일~40일 정도라던데 그보다 짧은 27일 일정으로 산티아고를 걸어야 했기에 내 체력에 맞춰 걸을 수 있는 만큼의 거리만을 제외하고 점프를 하기로 계획하고 출발했다. 내가 점프하기로 했던 구간은 로그로뇨에서 부르고스까지, 레온에서 폰세바돈까지 총 두 구간으로, 200km 정도였다.
애초에 목표도 어떤 방법으로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자라는 것이었지, 모두 걷는 것은 아니었기에 큰 고민 없이 오늘은 버스를 타고 로그로뇨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오늘의 이동 거리는 50km로 걷는다면 이틀을 나누어 걸어야 할 거리였지만, 버스로는 한 시간 반 만에 빠르게 도착한다.
아침에 일어나 해인이와 성우오빠를 떠나보냈다. 오직 그만 걷고 놀고먹고 쉬고 싶은 나와 다르게 꾸준히 걷는 그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오늘은 아파트에서 일정을 시작했기에 10시 체크아웃시간에 맞춰 나가 보았다. 편한 공간에서 늦잠 자니 아팠던 몸이 싹 나은 느낌이었다.
구글 맵을 따라 버스 터미널로 이동했다. 다리를 다쳤던 서정님을 다시 만났다. 꾸역꾸역 걸어보았는데 점점 더 붓는 다리 때문에 순례길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한다.
서정님 외에도 몇몇의 한국인 순례자들이 보인다. 신기하게도 모두가 어딘가 다쳐 절뚝이던지, 나와 함께 연신 기침을 쏱아낸다. 한국 병원이 따로 없다.
원래 내 일정은 에스떼야에서 걸어서 산솔로 이동해 1박을 하고 로그로뇨로 돌아가 1박을 한 뒤 버스를 타고 부르고스로 이동하는 것이었는데, 하루 빠르게 도착하게 되어 로그로뇨에서 2박을 해야 했다. 오늘은 로그로뇨에 예약해 둔 숙소가 없어 무니시팔(공립알베르게)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다행히도 버스에서 만난 서정님과 젊은 한국 부부가 이곳에서 묵을 예정이어서 길을 헤매지 않고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12시쯤 도착했음에도 일찍 도착한 순례자들의 가방이 줄지어 나열되어 있다. 나는 22번째쯤 되었던 것 같은데, 다행히 마지막 남은 침대의 1층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문 바로 앞이었지만)
버스에서 만난 한국 순례자들과 로그로뇨에서 유명하다는 양송이타파스를 먹으러 향했다. 다들 어딘가 아파 보였지만 클라라(레몬맥주)까지 야무지게 주문했다.
오늘 처음 만난 순례자 B는 나와 같은 날짜에 생장에서 출발해 피레네 산맥에서 1박을 했다고 한다. B가 매고 있던 까만색 배낭은 내 배낭의 두 배는 되어 보였는데 이것저것 주렁주렁 매달려있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B의 배낭 안에는 텐트도 들어있었는데 첫날 피레네 산맥에서, 둘째 날 론세스바예스 앞마당에서 사용했다고 한다. 피레네에서 1박할 때는 바람이 너무 많이 불었고, 사람 한 명 없는 넓은 산속 평야에서 혼자 자야 했지만 다시는 볼 수 없을 만큼 많은 별들에게 압도당해 무서움도 잊고 황홀한 밤을 보냈며 다시 산티아고 순례길에 도전하더라도 피레네 산맥에서의 1박은 꼭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다.
B는 론세스바예스를 지난 후 산세바스티안으로 넘어가 다른 여행을 하고, 양송이 타파스를 먹어보기 위해 잠시 로그로뇨에 들렀다. 그는 오늘 로그로뇨의 몇몇 핀초바에서 양송이 타파스를 먹은 후 바로 다시 버스를 타고 다른 근교 도시로 이동한다고 들었다.
B는 걷다가 근교의 아름다운 도시에 들러 여행을 하고, 다시 걷고를 반복하는 B만의 일정으로 잘 짜인 여행이었다.
궁금하지 않아? 어디까지, 얼마나 갈 수 있는지?
B의 여정의 테마는 [발 길이 이끌리는 대로].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버스표를 끊고 떠나고 되돌아오는 그런 여정이다. 한국 역시 발 길이 이끌릴 때 돌아간다고 한다. 감탄하는 나에게 계획에 대한 압박을 내려놓으라고 조언한다. 이 길을 통해 얻기를 원하는 것이 마음의 평안이라면 압박과 강박을 내려놓는 편이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어디까지 얼마나 갈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냐며 승부욕을 자극하던 B는 지금도 고작 하루 분량을 점프하면서도 불편한 마음이지 않았냐며 정곡을 찌른다.
하긴, 버스도 택시도 기차도 타고 산티아고까지 가려고 했다는 생각으로 나 자신과 타협하긴 했지만 지금 나는 혼자만의 대결에서 패배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B의 조언을 여러 번 곱씹으며 꿈같은 쉬는 날 이틀이 지났다.
나는 물집이 잔뜩 생겨 점프를 고민하고 있다는 경환님을 우연히 만나 함께 버스를 타고 부르고스에 도착했다.
버스에 내려 부르고스에 새로 생겼다던 한식당에 방문했다. 김치전과 제육볶음, 등갈비가 들어간 시래깃국을 주문했다.
오랜만에 먹는 한식으로 배가 터지기 일보 직전일 때, 경환님과 헤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부르고스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먹고 싶었던 추로스와 피순대 같은 스페인 음식도 먹어본다.
그리고 작은 바에 앉아 내일부터 다시 걸을 일정을 점검해 본다. 내일 가야 하는 마을은 오르니요스 델 까미노. 부르고스에서 21km 떨어진 마을이다.
갑자기 B가 생각났다.
일정표를 한참 꺼내 보며 내일의 계획을 복기하던 나는 숙박 예약 어플 키고 예약한 숙박을 취소했다.
하루 25km가 한계일 거라고 생각했던 내 체력이 혹시 30km는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