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50대 세 소녀 이야기

Hello, Santiago

by Hei 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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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날이 밝았다. 오늘은 용서의 언덕을 지나 푸엔테 라 레이나라는 마을로 가는 날이다. 용서의 언덕에서 내려가는 길의 내리막이 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프랑스행 비행기에 오르게 며칠 전 무릎을 다쳤던 터라 안전한 하산을 위해 오늘은 동키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동키서비스 : 짐 운송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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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플로나를 벗어나는 길이 꽤나 길었다. 가방 없이 걷는 것이 처음이었는데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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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물을 사 먹는 대신 수돗물을 페트병에 담아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어 나도 경비를 아낄 겸 수돗물 이용에 도전했다가 물갈이를 시작했다. 해인이와 성우오빠가 까딱하면 자연으로 뛰어들 것을 권유했지만 아직 자연인보다는 도시인에 가까운 나는 첫 마을이 나올 때까지 참기로 했다.

다만 가뜩이나 느린 걸음 평소보다 더 느리게 갈 수밖에 없었기에 첫 마을에서 일행들과 헤어져 혼자가 되었다. 뛰어들어간 바에서는 화장실만을 이용하기 미안해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가기로 했다.

한 2,30분 정도 쉬다 보니 아는 얼굴들이 슬슬 지나친다. 둘째 날 숙소에서 알게 된 서정 씨는 고새 발목을 다쳤다고 한다. 오늘 어떻게든 걸어보려 했는데 도저히 걸을 수 없어 다음 마을까지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고 다음 날의 일정을 준비한다고 하고, 첫날부터 물집과 상처로 온 다리에 반창고를 붙이고 다니던 정은 씨는 오늘도 밝은 얼굴로 지나쳐간다. 생장 숙소에서 만났던 세 자매 이모님들은 오늘 나처럼 내리막길이 걱정되어 동키 서비스를 신청하고 가뿐하게 걷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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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가볍게 만들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넓은 평원과 언덕이 펼쳐진다. 오늘따라 햇빛이 강렬하다. 나는 오늘 짧은 바이커쇼츠에 무릎보호대를 착용했는데, 무릎 보호대 아래쪽부터 햇빛에 타서 종아리 반쯤 탄 곳과 타지 않은 곳의 경계선이 뚜렷하게 보였다.

(글을 쓰는 지금은 한국에 돌아온 지 3개월이 넘었는데 아직 경계선이 사라지지 않아 짧은 옷을 입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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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화장실을 찾기 위해 일찌감치 바에 들러서인지 평소보다 본격적인 출발이 늦었다. 그래서인지 아침 일찍 길을 걸을 때 보다 더 많은 순례자들이 눈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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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또 한참을 걷다 보니 아까 바에서 나를 앞서갔던 정은 씨, 세 자매이모들이 보인다. 오색 빛깔의 끈이 묶여있던 십자가(아마도 누군가의 무덤) 옆에 있던 벤치에 앉아서 파프리카를 베어 먹으며 더위를 피하고 있다.

나는 아직 조금 더 걸을만해서 사진만 찍고 계속해서 길을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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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언덕까지 가는 길의 마지막 마을이 나왔다. 아침에 들른 바에서 카페콘레체를 한잔 비운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간단한 빵과 바나나, 콜라 한잔을 점심으로 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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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오르막길을 걸어 오르자 드디어 용서의 언덕, 산티아고 순례길의 유명 조형물을 만난다.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쉬고 사진도 찍으며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낸다. 물갈이로 고생 중인 나는 점심을 먹은 후 다시 꾸룩 거리는 배가 불안해 이 언덕을 벗어나 얼른 마을로 들어가고 싶어 사진만 잽싸게 찍고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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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탄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거친 내리막이 이어졌다. 발이 자꾸만 앞으로 쏠려 혹시나 넘어지진 않을까 무서웠다. 나는 등산을 좋아하지만 늘 등산화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접지력이었을 만큼 하산을 어려워하는 사람으로, 누군가는 다람쥐처럼 뛰어 내려가는 이 하산길을 한참을 걸려 내려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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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을 모두 다 내려와 평지에 다다르자 차가운 개울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세 자매 이모님을 다시 만났다.

발 장구를 치며 더위를 식히시는 모습이 마치 소녀같았다. 얼른 와서 발을 담가보라는 이야기에 나도 쪼르르 쫓아가 양말과 신발을 벗어보았다. 퉁퉁 부은 발을 차가운 개울 물에 담그자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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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매 이모님들은 쿨하게 발 닦으라며 손수건을 쥐어주시고 먼저 일어나셨다.


나는 세 자매 이모님들을 생장 알베르게에서 떠나던 날 아침 처음 만났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피레네를 넘는 경로에 대해 열심히 토론하고 계셨는데 어쩐지 엄마와 이모들이 겹쳐 보여 "저기 혹시.. 자매세요?"라고 먼저 여쭤보며 친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도 경상도 출신으로, 2남 3녀이기도 했고 나이대도 엄마와 이모들과 비슷하셔서 더욱 겹쳐 보였던 것 같다)

나는 평소 엄마, 언니와 셋이 자주 시간을 보내는 편인데 나이가 점점 들다 보니 모녀보다는 친구사이 같은 느낌이 더 크다. 큰 언니가 아플 때 둘째가 짐을 들어주고, 막내는 마이웨이의 길을 걷는 것이 우리 세 모녀와도 닮아 보여 이렇게 멀리서 보이면 사진을 찍고 카톡으로 보내드리는 등 내가 거의 팬처럼 따라다녔다.


아무튼 쿨하게 길을 떠나던 세 자매가 갑자기 길을 멈추고 심각하게 머리를 맞대고 있다. 그러더니 왔던 길을 되돌아 아무것도 모른 채 발을 담그고 사진을 찍던 나에게 달려오신다.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나보고 통화를 한통 해달라며 전화기를 내미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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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동키업체 직원으로 알고 보니 어제 이용하셨던 숙소가 알베르게가 아닌 호텔이셨는데 이 호텔은 짐을 보낼 때 동키업체로 사전에 예약을 하고 보내야 하는 곳이었으나 호텔 직원의 실수로 예약이 되지 않아 오늘 이용할 숙소에 짐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택시로 짐을 보내줄 수 있는데 일정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그 내용을 보내주겠다고 한다. 나는 왓츠앱을 사용하냐고 물어보고 왓츠앱으로 비용과 결제 방법을 보내달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바로 메시지를 확인한 이모님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쿨하게 택시비용을 결제하고는 저녁에 다시 만나자는 말과 함께 다시 길을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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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매 이모들과 헤어진 지 얼마나 지났을까, 하늘 위로 먹구름이 자욱하다. 곧 비가 오렸는지 습한 기운도 몰려와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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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엔테 라 레이나에 도착했다. 빛바랜 색의 벽돌집들이 아기자기한 마을이었다. 오늘 예약해 둔 알베르게 앞에서 세 자매 이모님들이 손을 흔들고 계신다. 우리가 오늘 이 알베르게에서 머문다는 이야기를 듣고 같이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 같은 알베르게를 예약하셨다고 한다.


IMG_5912.HEIC 세 자매가 나란히 우비를 쓰고 걸으시는 모습이 좋아 보여 또 뒤에서 사진을 한장 찍었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한 뒤 밖에 나오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시에스타로 인해 식당들이 모두 문을 열지 않아 나와 해인이, 성우오빠, 세 자매 이모님들은 마트에서 장을 봐서 저녁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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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엄마들이어서 그런지 우리가 해 먹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저녁이 차려졌다. 마트에서 사 온 계란과 소고기로 한상 뚝딱 만들고, 한국에서 가져오신 멸치로 주먹밥까지 만들어 내일의 도시락을 싸 주신다.


세 자매 이모님들은 산티아고까지 아주 오랜 시간 걸을 예정이라고 하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을 정하지 않고 천천히 꼬박꼬박 성실하게 걸어 목적지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오늘이 지나면 우리가 더 이상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함께 식사를 하고 싶었다고 하신다. 선견지명이 있으신지 실제로 푸엔테 라 레이나를 떠난 이후 더 이상 세 자매 이모님들을 만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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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3일 뒤인 5월 9일 막내 이모님께 반가운 카톡이 도착했다.

세 분은 사실 처음이라 겁먹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기쁘고 감사하게 길을 걸었다고 하셨다. 실제로 가장 큰 언니는 다리에 통증이 계속되어 속도가 느렸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걸어오셨다. 세 분이 늘 같은 속도로 맞춰가며 함께 의지하셨던 것이 제일 큰 힘이었던 것 같다.

늘 빠르게 바쁘게, 감사보다는 조급함으로 살아왔던 나에게 세 자매 이모님들은 평온함 그 자체였다. 인생의 풍파야 당연히 겪으셨겠지만 늘 감사하는 마음과 여유, 성실함과 꾸준함이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사는 나와는 다르게 느껴져서 더욱 마음이 가고 닮고 싶었던 것 같다.


막내 이모의 마지막 인사처럼 멋진 청춘의 한 걸음을 조금은 뒤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며 잘 엮어가다보면 언젠가 나도 세 자매 이모님들과 닮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20년 뒤 언니와 함께 우리 두 자매도 이 길을 함께 걷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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