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교과서처럼~
엄마(나)-
"너는 좌절하고 실패할때 어떻게 해?"
딸(지유)-
"애초에 난 그럴일이 별로 없어."
"근데 그럴일이 있으면
슬프지.
짜증나지.
내가 심각하고
내가 기분 안좋고
내가 터진 멘탈인데
왜 엄마는 자꾸 잊어버리라고 해."
그게 잊으라고 잊어지나?"
…..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는데
사실 난 그럴일이 거의 없어
"슬프잖아.!
내가 멀할 수 있는데?
머 어쩔건데?
단순하게 생각해!
그러면서 걍 넘어가."
"엄마는 생각이 너무 많아."
"내가 전에 단어 시험 준비못해서 엄청 울었잖아
그때 내 완벽주의가 발동됬었거든?."
"니가 멀 할 수 있는데,
니가 외웠어야지
너한테 시간 있었잖아."
"1시간 전에 준비했어야지."
"가서 혼나야지."
그렇게 생각하면
제3자의 시점으로 바뀌잖아."
"남탓이 아니라 내탓이 되는거지.
이건 내 잘못이니까."
그러면 나는
"합리적이었어."
"맞는 말이야.
일리있어.“
하면서
그냥 하는거지 뭐~~.
엄마(나)-
"그게 그렇게 쉽게 되?"
딸(지유)-
"대세 문제 없으면 난 불안감을 별로 안 느껴."
엄마 얼마전에 운전할때,
"주차 자리 없으면 어떻하니~~~
늦었다~늦었어~~~~~~
머리 치워봐. 미러 안보여 ~
신호는 왜 자꾸 걸리냐~~."
짜증을 막 내면서 안절부절했잖아~~.“
사실
대세 문제가 없음에도
엄마는 사소한거에 예민이 올라와."
엄마(나)-
"나는 뭔가 틀어지는게 싫은가봐.
내가 완벽주의라는걸 오십먹고 알았어."
딸(지유)-
"완벽주의 아니야
그거 그냥 강박이야
포장하려고 하지마." (쭈굴)
"엄마가 통제할 수 없는게 많은데
주차 자리정도는
통제할 수 있다고 희망하는거지
근데 막상 안되니까 짜증이 나는거지."
엄마(나)-
"내가 그 동안 통제하면서 살았나?"
딸(지유)-
"엄마 기준에서
내가 통제 안되잖아
나는 또 다른 인격체니까.!
나는 이제 통제가 안되는걸 아니까
너대로 알아서 살아라 ~~~ 한거잖아."
"근데 엄마 기준에서
통제할 수 있는게 얼마 없는데
사소한거마저도 통제가 안되면
유독 예민해 지는거지.“
엄마(나)-
"삶의 진리를 이야기할때
통제할 수 없는건 포기하고
통제할 수 있는거만 집중해서
에너지를 모으라고 하거든?"
근데 나는 통제하지 못하는거에
대해서 강박을 느끼는거네."
딸(지유)-
"어..상당히."
엄마(나)-
"왜그러는걸까?
안그럴려면 어떻게 해야 되?"
딸(지유)-
"저런 늦었구나."
"유감인걸?"
"거참 진실되게 미안하구만."
국어책 같은 시적인 표현을
쓰면 마음이 좀 놓여.
국어교과서처럼
전지적으로 말하는거지."
엄마(나)-
"아~~ 그럼 좀 차분해지면서
전지적인 관점이 되긴 하겠네.
어차피 국어교과서처럼
남의 일이 되니까."
딸(지유)-
"아 ~~~어떻게 어떻게~~~~
늦었다 늦었어.
어쩌냐 늦어서~~~
아 망했다"
그러면 경박스럽잖아..
교양 없잖아."
그러면
"내 스스로에게 공감을 하게 되는데,
공감은 감정과 감정이 이어지는거잖아."
"신호가 늦어서 슬퍼하는 나를
공감함으로써
또 다른 나도 슬퍼지게 되."
슬픔을 반으로 나누면
"슬"과 "픔"이 되야 하는데
슬픈 사람이 둘이 되는거라고!
슬픔슬픔이 되는거지."
그러니까,
어떻게~~~~ 어떻게~~~~
라고 오바하지 말고
걍 그렇구나
지장없구나
늦는다고 뭐 있나.
저런...
하고
국어교과서처럼,
남의 일처럼 하면 되는거지."
명상이나 코칭을 하면
감정의 객관화를 하며
아 짜증나가 아니라
내 안에 짜증이 왜 일어나는지,
관찰적자아를 통해 지켜보며
알아차림을 연습한다
백날 명상을 해봐도 안되는걸
오늘도 너를 통해 배운다
"엄마,,국어교과서처럼 생각해
슬픔을 반으로 나누면 슬과 픔이 되는게 아니라
슬픔을 느끼는 둘이 되지 말라고..."
(지유가 그려준 예민한 짜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