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
환절기에 찾아오곤 하는 끈질긴 감기처럼, 가끔 저를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병이 있답니다. 그건 감기처럼 증상이 눈에 띄는 것도 아니죠. 그리고 그건 절대 자신이 온다고 예고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암의 종류일지도 몰라요. 어느새 그 병에 먹혀버린 몸을 발견하고 놀라게 되니까요. 그 병의 이름을 뭐라고 붙이면 좋을까요. 아아, 어떤 책에서 본적도 있는 것 같아요. ‘지루함’이었나?
모든 게 무의미해져요. 그 무엇도 하고싶지 않습니다. 그 무엇도 흥미를 끌지 못해요. 뭘 한다해도 마지못해 하는거죠. 소원은 단 하나. 깊게, 깊게 잠드는 것. 포근한 이불과 푹신한 베개만 찾게 됩니다. 어떤 감정도 일지 않아요. 모든 걸 공허한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예전엔 그토록 감동을 주던 것도 메마른 먼지덩이를 보는 듯 하죠. 웃는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즐거운 것, 내가 좋아하는 것. 그게 다 뭐였죠?
그래요. 사람이 아니라 선반에 진열된 인형인 거네요.
누군가 저를 자신의 인형극에 올리기라도 할까요?
의지라고는 없는 줄에 매달린 못생긴 인형.
제게 활기를 불어넣어주세요. 병마를 이길 수 있도록.
점점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무엇이 내게 소중했죠? 무엇이 나를 살게 할까요.
저를 놓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