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
내가 누구더냐?
나는 동정하는 흡혈귀이지.
아름답고 싸늘한 푸른 추락을 보아.
파르스름히 식어버려도 달콤한 피여.
향기로운 피내음에 블랙홀이 되고픈 걸.
천상지하는 흡혈귀의 오랜 소원.
나는 선인장이 아니라구.
단 한 방울의 푸른 피도 놓칠 수 없지.
창백히 얼어버릴 때까지 푸른 피를 빨거야.
저런, 불쌍해라.
내 붉은 피를 주마.
죽음의 열을 띤 붉은 피를 넣어주마.
좀 더 내 놓아.
푸른 피, 푸른 피를.
텁텁한 잿빛 창으로 널 찔러줄테다!
나의 붉은 피로 오염된 너는
새까맣게 타버린 채
투명한 풀들의 뱀 같은 몸짓만 애타게 불러댈거다.
그럼 좋지, 아주 좋아.
그렇게만 해주면 흡혈귀는 행복해져?
행복이 뭐야, 배부름이 뭐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바닥 없는 사막인 나는 푸른 피를 원해.
간지러운 놈!
어이구, 무서워라. 이게 뭔고?
으이크, 숨막히는 손일세.
으아아, 깨진 손톱이로다.
우웩, 침 튀기는 입김이로구나.
어디 맘대로 해보아.
흡혈귀의 날갯짓만 앵앵거리지.
푸른 피를 원하는 나는 누구였더라?
나는 동정하는 척의 흡혈귀였다네.
끈적거리는 공기 속을 누비는 나는
푸른 피를 갈망하는 붉은 흡혈귀.
알겠냐고? 모르겠다고!
꼴깍, 푸른 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