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의 거울이 노래할 때"

오로라

by 하이디 준

[이 세계가 선택한 곡은 Sarah BrightmanBeautiful 입니다.]



나는 언제나 같은 공간을 걸어간다.

광활하고, 아득하고, 서늘하다.

심연의 호흡으로 자욱한 그 허공을 나는 가로지른다.

얕고 차가운 물이 고인 검푸른 바닥 위를

나는 이끌리듯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새하얀 별들이 하나 둘 타오른다.

멀리서부터, 밤의 짐승들이 눈을 뜨듯이.

수많은 눈들이 나를 지켜보고

선득히 아른거리는 성운의 옷자락 너머로

골수에 스밀듯한 푸른 인광의 웃음을 흘린다.

끓어오르는 혜성의 비명이 스치는 순간 눈이 멀어버린다.


문득, 눈앞에는 내가 있다.

나는 아니지만 나를 베낀 무언가가 있다.

처음은 물에 비친 그림자처럼 흐릿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몸서리치게 선명해진다.

모든 상처, 모든 구멍, 모든 벌레.

내장과 체액과 오물의 흐름.

상자에 포장돼 썩어가는 심장과

그것을 포위한 향기로운 쓰레기의 산까지.

나는 헛구역질을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멀어질수도, 돌아설수도, 쓰러질수도 없다.

나는 오로지 그것을 바라만봐야 한다.

내 모든 시간의 파편들을 장신구처럼 주렁주렁 건 그것을.


나는 묻는다.


왜 나인가.


그것이 비스듬히 기울며 여러 겹의 금속이 긁히는 목소리로 답한다.


아름다워서.


그 말을 삼킬 수 없어서 내 목은 조여든다.

나는 굳어가는 머리를 흔들며 말한다.


어째서 나인가.


그것이 서서히 손을 뻗어 날카로운 시간의 유리 조각으로 내 얼굴을 긁는다.

무감각한 피부 위로 한 줄기 피의 끈적함만이 생생하다.

그것은 생경한 발음으로 되풀이한다.


아름다워서.


그것이 닿은 부분부터 서서히 보석 같은 얼음 결정이 퍼져간다.

눈과 혀와 손톱 밑까지 살얼음이 서린다.

나의 말은 흩어지는 모양대로 멈춰버린다.


나는…


그것이 바짝 다가든다.

그것은 울고 있다.

그것이 나 대신 끝을 맺는다.


아름다워.


그것은 마침내 완성했다.

또 하나의 거울의 짐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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