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섬의 뱃노래가 들려오네"

오로라

by 하이디 준

[이 세계가 선택한 곡은 EnyaOrinoco Flow입니다.]




안녕!


창문을 열며 카야는 외쳤습니다. 산뜻한 밤바람이 볼을 스칩니다. 아이는 입으로 들어간 머리칼을 대충 빼내며 후닥닥 침대로 도로 올라갔습니다. 새하얀 솜으로 부푼 베개를 탕탕 두드리고 이불을 훌쩍 어깨 너머로 둘러 질끈 묶어냅니다. 침대 중앙에 당당히 선 아이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합니다.


선원들 모두 제자리로!


침대 위에 구석 구석 배치된 동물 인형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아이를 주목합니다. 아이는 한 번 더 확인하고, 과묵한 인형들을 위해 대신 답해줍니다.


모두 준비됐나? 네네 선장님!


카야는 마침내 풀쩍 뛰어 다시 창을 마주하고 한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가 앞으로 휙 내뻗었습니다.


출항!


창문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합니다. 아이의 망토 이불이 펄럭펄럭 깃발처럼 휘날리고 동물 인형들의 털이 나부낍니다. 창틀이 조금씩 벌어집니다. 보이지 않는 투명한 거인이 창을 서서히 휘어 비집고 들어오는 것처럼. 카야는 얼굴마저 날아갈 것 같다고 생각해 아주 단단한 표정을 지어봅니다.


모두 엉덩이에 힘 딱! 주고! 버티는 거야아?! 네네 선장님!


창이 늘어나고 비틀리고 결국 한 쪽 벽 전체가 열릴 정도가 되자 꿀럭꿀럭 검푸른 물이 넘쳐 들어옵니다. 금세 침대 주변을 에워싼 물줄기는 조류처럼 세차게 흘러갑니다. 어느 순간 방 전체가 스르륵 뒤로 물러나기 시작합니다. 방은 떠내려가고, 침대는 섬처럼 남았습니다. 카야는 다시 한 번 외칩니다.


바다가 거의 다 들어왔어! 모두 그물 준비해! 네네 선장님!


카야는 폴짝폴짝 뛰며 인형들의 작은 이불, 손수건, 담요, 엄마의 블라우스, 아빠의 테니스채를 각자에게 나눠줍니다. 다시 중앙으로 돌아간 아이는 뒤에 둘렀던 이불 망토를 멋지게 휘두르며 앞으로 돌려 풀러낸 다음 투우사처럼 들었습니다.


멀리 밤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수평선으로 새하얗게 빛나던 별들이 하나 둘 떨어졌습니다. 쉬익, 쉬익 하는 김 오르는 소리를 내며 물살의 흐름에 따라 실려 내려옵니다. 크기가 제각각인 빛 덩어리들을 향해 카야가 이불을 마구잡이로 휘두릅니다.


오오~ 오늘 물이 좋구나아! 모두 힘껏 끌어올려! 네네 선장님!


첫 번째는 낡아빠진 오르골입니다. 카야는 상자를 열어보고 타닥타닥 튀지만 아직 음악 소리가 난다는 걸 확인하고 흔들어서 물을 탁탁 털어냅니다. 뒤의 선원에게 하나 던져줍니다. 손수건 안에 정확히 착지하자 카야가 말합니다.


좋았어! 계속 그렇게만 해! 네네 선장님!


두 번째는 부들부들 떠는 뻐꾸기 시계입니다. 끝없이 울고 있는 걸 카야가 뺨을 톡톡 때려 정신을 차리게 합니다. 딸꾹질을 하듯 소리가 나다 멈춥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거리곤 다른 선원에게 또 던져줍니다. 인형 머리에 살짝 부딪혔습니다.


거봐! 조심하라니까? 만만치 않은 녀석이라고! 네네 선장님!


세 번째는 화려한 금 세공이 들어간 화병입니다. 모서리가 살짝 이가 나갔을 뿐 완벽합니다. 하지만 카야는 흔들어보고 안에 숨을 후 불어넣어도 보고 손끝으로 톡톡 쳐보기도 한 다음 도로 휙 바다에 던져버립니다. 순식간에 병은 둥둥 떠내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번쩍거리는 것에 속지마! 소리를 들으면 알아! 네네 선장님!


네 번째는 하와이안 춤추는 인형입니다. 수면 위로 춤추는 한 손이 올라왔다 가라앉았다 합니다. 카야가 다급히 외쳤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있다! 구조해! 네네 선장님!


카야는 춤추는 인형을 건져내 침대 위에 조심스레 올려놔줍니다. 허리춤을 탁 치자 인형은 자연스럽게 훌라춤을 춥니다. 아이가 엄지를 쑥 올려보이며 말합니다.


걱정 마세요! 섬이 떠내려오면 집에 보내드릴게요! 잘 모셔라! 네네 선장님!


그 이후로는 정말 작은 미니어쳐 섬들이 떠내려 옵니다. 하지만 위에는 코딱지만한 새도 날고 개미만한 사람도 살고 주위에 멸치만한 고래도 헤엄칩니다. 카야는 두리번거리며 섬들을 살피고는 독특한 화산섬 위에 춤추는 인형을 톡 던져줍니다. 인형은 즐거운 듯 허리를 흔들며 뒤로 멀어져갔습니다.


어어 물색이 바뀐다! 전투 태세! 네네 선장님!


별은 이미 다 떨어져 하늘은 검기만 한데 바다는 스르르 밝아집니다. 물밑에서 다채로운 형광빛 덩어리들이 빠른 속도로 부상합니다. 카야는 또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인형들에게 여러 펜과 국자와 밀대와 길다란 문진과 플라스틱 자까지 쥐어줍니다. 자신은 장난감 골프채를 야구 방망이처럼 쥐고 칠 준비를 합니다.


바다가 터질듯이 환해지는가 싶더니 사방에서 수십개의 화살처럼 뼈다귀만 남은 생명체들이 수면을 뚫고 허공을 가로지릅니다. 슉슉 쇄도하는 소리와 수면을 박차고 나오는 거친 파도가 침대 위를 뒤덮습니다. 갖가지 형광색으로 빛나는 뼈의 생물들은 주변을 날치처럼 날아가면서 텅 빈 턱을 꺼떡거리거나 닳아 문드러진 발톱을 덜걱거려 보입니다. 물고기도 있고 상어도 있고 호랑이도 있고 공작새도 있고 심지어 껍데기만 남은 빛나는 풍뎅이들도!


히야아아압! 모두 힘내! 금방 지나간다! 네네 선장님!


카야는 또 마구잡이로 골프채를 휘두릅니다. 그 와중에 작은 벌새 뼈다귀 하나가 기막히게 채의 머리에 맞고 슝 별똥별처럼 날아갔습니다. 아이는 이마에 손을 올리고 시선을 따라가며 마지막까지 지켜보고는 환호합니다.


홀인원! 멋지세요 선장님!


뼈다귀 무리들이 모두 흘러간 자리엔 살짝 쓸쓸한 고요함만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카야는 다시 기세 좋게 외칩니다.


밤은 아직 길어! 모두 파티다! 네네 선장님!


하늘과 바다 모두 깜깜해진 속에서 어느 순간 은은한 한 줄기 빛이 멀리서 번져옵니다. 둥그렇고 커다랗고 노란 달이 침대섬을 향해 둥둥 떠옵니다. 양쪽 어깨로는 푹신한 양떼 같은 구름 무리들을 이끌고. 은근한 밀물처럼 섬으로 들이닥친 손님들은 카야와 인형 선원들을 따뜻하게 안아줍니다.


어서 오세요! 오늘도 반가워요! 저도 안아주세요 선장님! 오 그래그래~


몽실몽실한 구름 덩어리들과 카야와 인형들은 커다란 노란 달을 풍선처럼 머리 위로 굴리고 주고받습니다. 구름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쿠릉쿠릉하는 낮은 천둥 소리가 박자를 맞추고 노란 달이 구르며 방울 같은 소리를 냅니다. 소박한 음악에 맞춰 모두가 춤을 춥니다. 춤이 절정에 이른 순간 구름들이 번개를 쏘아보내 노란 달을 터뜨려버립니다. 달이 산산조각나며 사방으로 불꽃처럼 깜빡거리는 작은 반딧불들로 흩어집니다. 파밧파밧 작게 튀는 소리를 내는 그것들을 손으로 받으려고 카야가 이리저리 뛰어댑니다.


안녕히 가세요! 내일 또 만나요! 전원 다시 제자리~! 네네 선장님!


반딧불들은 바다로 녹아 사라지고 구름들은 모두 물살을 타고 다시 순례길에 오릅니다. 카야는 당당하게 앞을 보며 장난감 골프채를 거꾸로 잡아 지팡이처럼 짚고 섭니다. 다른 한 손으로 앞을 가리키며 외칩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선원들! 모두 수고했다! 너희들은 역시 최고의 뱃사람들이야! 네네 선장님!


깜깜하기만 하던 바다와 하늘의 색감이 슬며시 변하기 시작합니다. 수평선에서부터 번져오는 희미한 푸르름과 달궈지는 공기의 향. 카야가 눈을 번뜩이며 골프채를 던져버리고 다시 한 번 폴짝거리며 모두에게 천 종류를 뒤집어씌웁니다. 인형들은 침대에 얌전히 누워 잠든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카야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불을 또 망토처럼 두르고 이번엔 한 팔에 이불자락을 감아 드라큘라 백작처럼 얼굴 앞을 가리고 외쳤습니다.


모두 눈부심에 주의하라! 네네 선장님!


머리가 띵하게 울릴 듯한 새하얀 섬광을 뿌리며 태양이 심해에 가라앉았다 불쑥 떠오르는 공기방울마냥 하늘에 떠올랐습니다. 카야는 얼굴을 가린 그대로 침대섬 위에 풀썩 쓰러집니다. 태양이 떠오른 자리의 구멍으로 물이 도로 빨려가듯 물살의 방향이 반대로 변했습니다. 섬 주위의 수위가 서서히 낮아집니다. 밀려갔던 방이 슬금슬금 원래 위치로 돌아옵니다. 남은 썰물마저 창문틀을 붙잡고 매달리는 바람에 창이 다시 점점 좁아집니다. 뒤에서 휙 불어온 바람이 창까지 닫아버리고 나갑니다.


카야는 새근새근 웃으며 잠들어 있습니다. 잠꼬대처럼 중얼거립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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