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다. 요즘은 주말 낮에만 간혹 라이딩한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가을이 그립다.
2021년 가을은 유난히 맑았다. 중국이 호주와 정치적인 마찰로 호주산 석탄을 수입하지 않아서 화력 발전을 덜하게 되었다는 말도 있고, 2022년 북경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북경 시 인근의 오염물질 배출을 대대적으로 단속했다는 말도 있고.... 하여간 맑은 가을이고, 요리조리 한강 변을 달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자전거로 달리니 하늘이 보이고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중랑천 수변 공원에서는 전동 리프트에 나란히 앉아 천천히 이동하는 80대 노부부를 보았다. 남편은 앞을 응시하고 조심스레 운전을 했고, 뒷좌석에서 페드라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곱게 화장해 나름 젊었을 때는 멋깨나 부린 느낌을 주는 부인이 고개를 살짝 들고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의 눈길은 가을 하늘과 닿아 있었고 나 역시 그녀의 눈길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깊고 푸르렀다.
2021.9.4. 염창동 합수구
2021.9.8. 한강공원 잠원지구
행주산성, 난지 공원, 여의도, 잠원, 성수동, 망원동, 합정역 등을 자전거로 다닐 만큼 다니다, 불현듯 좀 더 멀리 가고 싶어졌다. 미니벨로의 특성을 살려서 점프하고 싶어졌다.
춘천 의암호
용산역에서 청춘 ITX 청춘 열차를 타고, 춘천으로 갔다. ITX 청춘 열차에 자전거를 싣고 가려면 자전거 좌석을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데 좌석 수가 제한적이어서 주말에 춘천 여행을 가려고 하면 늦지 않게 예약을 잘해야 한다. 그런데 접이식 미니벨로는 접기만 하면 언제든 탑승이 가능해서 원행길에 점프(자전거를 차량 등에 싣고 이동)하기에는 한결 수월하다. 게다가 열차 칸의 맨 마지막 좌석을 선택하면 의자와 벽 사이 공간에 접은 미니벨로를 쏙~ 넣을 수 있다.
춘천역에 도착해서 우선 던킨 도너츠로 가서 달달이 하나랑 커피로 아침을 해결했다. 여긴 명소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패스하고 라이딩하면 당 채출 곳이 마땅치 않다. 역 광장으로 나가니 여느 자전거 명소들처럼 라이딩을 준비하는 분들 대부분이 동호회 분들이셨지만 그래도 낭만도시 춘천이라 부부나 연인으로 보이는 쌍쌍(?) 라이더들도 꽤 많았다. 어디로 가면 의암호 순환 코스 출발점일까 하고 고민할 필요 없이 많은 분들이 가는 방향으로 쫓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행여 길을 잃을까 봐 로드 자전거들 끝자락에 묻어 갈라고 나름 열심히 페달질 했는데도 미니벨로의 한계인지 내 허벅지의 한계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앞 뒤에 아무도 없는 싱글 라이더가 되었다.
어디가 의암호 순환 코스의 출발점인지는 알 수는 없었으나, 공사판으로 어수선한 4거리를 건너 안내판을 따라 다리 밑으로 쏙 들어가니 의암호의 명소인 수상 테크가 눈앞에 짠 나타나고 나에게는 거기가 출발점이 되었다. 그 뒤론 단 한 번도 다른 샛길이 보이지 않아서 오롯이 길만 따라가도 의암호 한 바퀴를 돌 수 있었다. 라이딩을 하면서 라이딩이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할 정도로 배가 차서 더 먹을 수 없음에도 보고는 젓가락질 멈출 수 없는 한정식 한 상 잘 받은 것처럼 의암호 한 바퀴는 눈앞의 풍경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라이딩 앤 라이딩의 연속이었다. 딱 한 번 쉬었다. 이후 공지천을 거쳐서 남춘천 앞 육대장에서 육개장으로 첫 원행을 마무리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라이딩 후에는 맛이 있고 없고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붓는다. 어쨌든 맛있다.
2021.09.25. 춘천 의암호
파주 라이딩
어느 가을 파주 출판 단지까지 가서 한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모양으로 행주대교와 한강 공원 강서지구를 거쳐 염창동 한강 합수부까지 올라오는 코스로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산역에서 경의중앙선으로 환승하고 일산을 지나 야당역에서 하자하였다. 네이버 빠른 길 찾기로는 파주 출판단지까지 30분이면 충분해 보였다. 그런데 시골길이라 공도로 다녀도 되겠다고 지레짐작하고 거리뷰를 확인해 보지 않고 라이딩을 시작했다. 그랬더니 길상태가 좋지 않아서 엉덩이에 노면의 구겨진 상태가 그대로 전달되는 통증은 그래도 참을 만했는데, 관광지와 대규모 쇼핑단지가 근처에 있어 도시 한가운데나 다름없이 수많은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어서 처음으로 라이딩 중에 가끔씩 "이를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고 눈앞에 파래지기도 했다. 겨우 파주 롯데 프리미움 아웃렛에 도착해서 얼른 짬뽕 한 그릇 했다. 원기회복과 심신 안정에는 탄수화물과 강한 MSG가 최고였다.
아이스크림 라떼로 당까지 보충한 다음에 카카오 맵을 따라서 행주산성 쪽으로 향했다. 원래 예상은 카카오 맵이 한강변을 따라서 인도할 줄 알았는데, 그 길이 없었던지 시골 논밭 한가운데 길로 나와 내 자전거를 끌고 가고 있었다. 농로가 논밭 주인들이 서로 양보를 안 했는지 꼬불꼬불한 시멘트로 만들 길이었다. 심한 코너링과 축사 근처에서 솔솔 날아오는 질퍽한 냄새가 아... 괜히 하는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이내 길이 익숙해 지 내 눈이 열리고 가을이 들어왔다. 북쪽에서부터 가을이 내려와서 논들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아 지금도 아 생각나... 시골길은 마음에 고향"이라는 노래 가사가 뒤죽박죽 입으로 튀어나왔다.
행주산성 옆을 돌아 행주대교로 가는 길에 예전에 군사용으로 쓰였던 철조망과 초소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불현듯 군에 가야 할 둘째를 생각하면서 먹먹해졌다.
잘 버틸 수 있을까??? 답을 낼 문제는 아니었다.
행주대교를 지나 이내 익숙한 한강 자전거길로 접어들었다.
2021.10.2. 파주
2021.10.02. 고양
신시모도
한 번 만에 가지는 못했다. 아무 생각 없이 나의 자전거 턴 D8을 접어서 트렁크에 잘 넣고 인천 국제공항으로 한참을 달려가다 영종대교를 건너 표지판을 따라 제2 터미널 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삼목항이 보였다.
음... 저기서 자전거를 배에 싣고 끼룩끼룩 갈매기들에게 새우깡 좀 던져주면서 10분만 가면 삼 형제 섬 (신도, 시도, 모도)에서 섬 라이딩을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거기까지였다. 바람이 심해서 그날은 갈 배가 없단다. 차를 돌려서 오이도로 가서 오이도 박물관에 차를 대고 자전거를 꺼내서 시화호 제방을 타고 대부도로 들어갔다. 바람이 사람 잡았다. 맞바람에는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내가 몸무림치고 있다는 느낌만 받았다.
다행히 그다음 주는 무사히 입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대한 대로 삼 형제 섬 라이딩은 힐링의 끝판왕이었다. 자전거 전용 길은 전혀 없지만 시골마을 평범한 동네길과 차가 거의 없는 아스팔트 길을 번갈아 달리면서 숨은 관광지 찾기 놀이를 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신도의 구봉산을 살짝 돌아 오르막길에 내리막길을 더하고 빼면 신도에서 시도로 넘어가는 다리가 나오고 여기서 한 참을 달려 표지판은 수기해변으로 되어 있지만 도무지 해변이 없을 것 같은 마을을 지나 뒷산을 다시 오르락내리락하면 시야에 펜션이 확 들어오고 이내 시선을 오른쪽으로 살짝 돌리면 아주 넓은 모래사장 해변이 나온다. 아... 서해 섬에 모래사장 해수욕장이었다.
다시 달려 시도에서 모도로 넘어가는 다리에 도달하면 다리를 하나 더 놓는지 대규모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고 다리를 지나자마자 몇 개의 관광지스러운 횟집이 눈에 들어왔다. 삼 형제 라이딩의 극적 효과를 위해 이 부분은 기억에서 편집하고 싶었지만 사람의 기억은 기분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여간 해안도로를 따라 쭉 달리다 보면 이내 MODO라는 대형 알파벳 조형물이 여기가 포토존임을 명확히 선언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 언덕을 끼고돌아 들어가면 배미꾸미 조각 공원이 나왔다. 둘 다 볼 만하고 괜찮은데 왠지 MSG가 살짝 많이 들어간 쌀국수 같은 느낌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시도의 굴뚝 빵집과 신도의 짜장면집을 들렀다. 역시 단짠은 진리였다. 시도의 굴뚝 빵집은 황량하게 느껴지는 섬의 가운데서 과하게 않게 스윽 나타난 동화의 집 같았다. 굴뚝 빵에 크림, 아이스 아메리카로 카페인과 당 게이지를 좀 올린 다음 신도에 있는 이름 역시 짜장면집인 짜장면집으로 가서 짜장면을 시켰다. 주인아저씨의 원산지를 강원도로 밝혀 놓은 이 집은 5천 원의 착한 가격에 짜장면에서 짜파구리 맛이 났다. 맛있었다는 기억보다 한 번 더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씩 난다.
2021.10.24. 신시모도
그리고
그 외에도 인천 아라뱃길, 갯골 공원에서 물왕저수지까지 7.5km를 왕복하는 시흥 그린웨이, 바람에 날려갈 뻔했던 대부도 제방길, 팔당역에서 양수리 두물머리까지 달렸던 남한강 자전거길 등을 달리면서 나는 이 가을이 좀 더 머물러 있어 주길 바랬다. 나에게는 매주 가슴 설레는 주말을 맞이하는 것이 얼마만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또 라이딩에 푹 빠진 덕분에 두 달 만에 7kg이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