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간이 조마조마했지만 축구장에서 2주 너머 자전거 연습을 마치고 자전거 도로에 나섰다. 추월하는 분들에게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도로 가쪽 백선을 밟고 달릴 수 있도록 방향과 속도를 맞추려고 했다. 하지만 힘 불끈 주고 잡고 있던 핸들이 내 마음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초보 따릉이의 조작 미숙으로 급정거하거나 과도한 지그재그 운행을 할 경우도 있었으니, 내 뒤에서 달려오던 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했다. 얼마나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경우가 많았을까....
다행스럽게 따릉이 일주차 만에 뒤에서 달려오는 자전거들을 촉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촉이 온 다음엔 거의 대부분 소리가 들렀다. '지나가겠습니다'라는 말소리나 찌릉 하는 알림 신호가 들리면 초보 라이더는 습관적으로 속도를 줄였다. 한 주일만에 귀가 조금 열리고 눈도 살짝 떠졌다.
라이딩 길에 주위를 둘러보면 때로는 형형색색 날렵해 보이는 자전거들이 꽤 부럽게 느껴졌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 했는데.... 게다가 나를 추월한 자전거들을 따라잡아보려는 묘한 경쟁심이 싹터 한 번 힘껏 페달을 밟아 보아도 역시 따릉이는 따릉이였다. 결정적으로 어느 날 저녁, 여느 때처럼 신정교 아래에서 상태가 괜찮아 보이는 따릉이를 골라서 QR코드를 찍고 안장을 맞추고 라이딩을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 달리다 보니 뭐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명교 아래에서 멈춰서 점검해 보니 안장 바를 조절하는 레버가 흘거워서 안장이 푹 내려가 있었다. 화가 나기 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거니 가끔 점검이 완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다시 안장을 잘 맞추고 달렸는데 이내 안장이 슬슬 내려가고 무릎이 가슴 쪽으로 올라왔다. 돌아오는 내내 불안 불안한 마음에 내려서 끌고 갈까? 계속 타고 갈까? 고민하면서 라이딩을 마쳤다.
내걸 사야겠다는 생각이 확 달아올랐다. 따릉이로 가을까지는 버티려고 했는데 사야 될 이유들이 계속 계속 생겼다.
2.
자전거 구입을 위해 수많은 유튜브 채널과 블로그를 뒤졌다. 자전거는 로드, MTB, 하이브리드 등등 종류가 다양해서 이거 공부하기도 벅찬데 실제 사려고 뒤져보면 브랜드가 의류 브랜드만큼이나 많아서 자전거 하면 삼천리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나로서는 구매 시작점에서 덜컥하고 벌써 선택 장애가 왔다. 게다가 가격대도 천차만별이라 자전거를 좀 타는 선배한테 뭘 사면 되느냐를 물어보니 " 자동차를 살 때 티코 사야 돼요? 포르셰 사야 돼요? 하고 물어보는 거와 같다"라고 하면서 스스로 어떻게 탈 것이며 예산은 어는 정도 할 건지 기준을 세워보라고 조언해 줬다.
우선 자전거 종류를 결정하게 위한 기준을 세웠다. 여러 가지 챙겨야 할 변수 중에서 꼭 피했으면 하는 것은 과속으로 인한 부상과 몸에 착 달라붙는 자전거 전용 옷 등 두 가지였고, 꼭 있었으면 하는 것은 어디든지 갔다가 편하게 돌아올 수 있는 자유로움이었다. 다행히 이 기준들에 들어맞는 한 가지 종류를 발견했다. 접이식 미니벨로.... 미니벨로는 바퀴가 20인치 이하라 속도가 빠르지도 않고 시티 바이크라 평상복으로 입어도 어울린다. 게다가 접이식이라면 대중 버스는 열외지만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지하철이나 열차 등에는 접으면 무조건 승차가 가능하니 달리다 힘 빠지면 접어서 돌아오면 그만이다. 그래서 로드바이크, MTB 등 폼 나는 자전거를 뒤로하고 나의 첫 자전거는 접이식 미니벨로로 정했다.
하지만 자전거란 게 옷 사듯이 백화점 한 두 곳 돌아다니는 발품 정도로 대략적인 시장 가격이나 디자인을 알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 종류도 끝도 없이 다양하고 자전거 숍마다 파는 브랜드가 제각각이다. 그러다 보니 자전거 구매 정보를 유튜브나 블로그에 의존해서 얻을 수밖에 없었다. 며칠을 눈 빠지게 찾아보고 몇 개의 브랜드로 범위를 좁혔다.
우선 브롬톤은 영국 제품이다. 얄쌍하게 이뻐서 이거 타고 다니면 갱상도 할매 말로 '갈롱지인다' (꽤 멋 내고 다닌다)라는 말이 나올 거다. 게다가 안장이며 핸들 그리고 가방 등을 가죽으로 치장할 수도 있어 갬성 충만으로 핸드폰으로 치자면 아이폰으로, 영화 킹스맨의 소품으로 튀어나올 만함 놈이다. 근데 한 가지... 좀 비싸다. 영국 공장에서 장인의 손길을 팍팍 타고 만들어져서 한국에 수입 대수가 1년에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중고 가격이 잘 유지된다는 어느 유투버의 정보에... 그럼 몇 달 타다가 중고로 팔고.... 하면서 마음이 다시 슬~ 가다가도 아 너무 비싸다. 패스.
다음 버디는 독일산인데 앞 뒤로 자동차로 치면 쇼바가 있어서 산악자전거처럼 안정감 있는 승차감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독일산 답게 심플하고 튼튼하게 보인다. 이놈도 탐은 나는데 비싸다. 게다가 버디 가격을 찾아보니 다시 브롬톤이 어른거린다. 너무 비싸다. 만약 이 돈 주고 샀다가 흥미 급 하락해서 비좁은 집에 진열품으로만 존재하게 되다면.... 한동안 밀어닥칠 잔소리와 따가운 눈총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예산 리미트를 결정했다.
그리고 턴으로 결정했다. 턴의 가격도 초보에게는 만만찮은 결정이었다. 비슷한 제품으로 다혼이라는 브랜드도 있었는데, 어떤 유튜브가 "턴은 다혼의 고급 사양으로 다혼은 생산 공장이 중국에 있는데 비해 턴은 생산 공장이 대만이 있다"라고 한 설명(분명 뒷 광고였을 거임)이 이상하게 설득력 있게 꽂혔다.
그런데 턴을 구입하고 몇 번 탄 뒤에 턴 홈 페이지에 정품 등록을 하려고 차대번호를 찾다가 자전거 아래쪽에 아주 작게 적혀 있는 출생의 비밀을 확인했다. made in china.... 턴을 구입했던 자전거 숍 사장님께 확인해 보니 턴의 저가형 모델은 중국 공장에서 만든다고 한다. 어디 탓할 사람은 없으나 살짝 속은 기분이었다.
3.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퇴근 후 밤마다 2~3시간은 라이딩의 시간이었다. 또 라이딩 후에는 다가올 주말에 떠날 원행 행선지 결정을 위해 자료 조사도 하고, 카카오 맵과 네이버 빠른 길 찾기로 이동 경로도 거듭 확인했다. 한마디로 푹~빠졌다. 비록 로드 자전거나 MTB 자전거보다 바퀴가 작은 미니벨로였지만 따릉이를 타던 나에게는 거의 신세계가 열린 느낌이었다. 따릉이를 탈 때는 신정교 근처에서 출발하면 염창동 한강 합수부까지 대략 4km, 부끄럽지만 이것도 갔다 오기 힘들었는데, 새로 산 놈은 시쳇말로 밟는 대로 나갔다. 집에 출발하여 한강 여의도 공원 3 주차장까지 거리가 12km 남짓인데도 횡~하니 갔다 지칠 것도 없이 돌아왔다.
초가을 밤 안양천 자전거 길을 달려 한강 합수부에 도달하면 왼쪽으로 가양대교가 멀리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월드컵 대교가 가깝게 눈에 들어온다. 월드컵 대교는 북한산을 배경으로 왼쪽으로는 강과 초록 벽, 하늘이 절묘하게 3 분할되는 난지공원을 끼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다리 빗살 뒤로 상암 월드컵 경기장이 얼굴 들고 있어 밤낮 어느 때고 장관이다.
이런 월드컵 대교가 눈에 들어올 쯤에 다시 자전거 머리를 오른쪽 여의도로 돌려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 온 얼굴로 맞아주면서 달렸다. 성산대교 양화대교 당산철교 파천교까지 스스로를 발광하다 빛이 넘쳐 강물 위 어른대는 모습까지 한 눈 가득 들어왔다. 이어 여의도에 들어서면 서강대교, 마포대교의 화려함에 새로 생긴 파크원 빌딩의 빨간 네온 와꾸(?)가 이쁜 건지 중국 너낌(?)인지 살짝 혼란스러울 때쯤 목적지 한강 여의도 3 주차장 근처에 도착하곤 했다.
여의도 주차장에서 한강을 건너 멀리 보이는 남산은 보스포로스 해협에서 보는 이스탄불의 갈라타 타워나 롯폰기 모리 빌딩에서 보는 도쿄 타워 등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대도시 서울의 아이콘이다.
4.
서울에 산 지도 30년이 넘었다. 늘 보던 곳이었고 늘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자전거를 타면서 마치 잊고 있었던 통장에서 한 100만 원쯤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된다. 자전거길을 통해 한강이 그리고 한강을 품은 서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십 년 동안 월급에서 뭉툭 뭉툭 빠져나가던 세금이 때때로 아깝다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도림천 안양천 한강으로 연결되는 자전거길을 달리다 보면 생각이 좀 바뀌게 된다. 한강은 세느강, 테임즈강, 허드슨강, 에도가와 그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유니크한 매력과 멋을 쌓아가고 있다는 걸 뒤늦게 발견한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