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_1
사실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막상 지난날의 나를 기록하려고 보니 어떤 언어로 그때의 기분을 기록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막상 지금 또 돌아보면 별거 아닌 일들이, 그때는 왜 그렇게 큰 일이었을까? 남들과 다른 이벤트들이 발생했다고 생각하지만 한 자 한 자 키보드로 눌러 담으려고 보니 별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소소한 이벤트들이 있긴 했지만 나의 초등학고, 중학교, 고등학교는 평범했던 것 같다. 중학교 때는 무슨 일이었더라? 선생님의 부당체벌이 있다고 해서 친구들과 선생님의 사과를 받아내기도 했고, 그 시절 흔한 여중 선배님을 좋아한다고 쫓아다니기도 했고, 고등학교 때는 시험전날에 학원 안 가고 포켓볼 치러 다니기도 하고, 비 맞으면서 운동장을 뛰어다니기도 하고, 학교 앞 만화방에서 만화책을 빌려와서 수업시간에 몰래 만화책을 보기도 하고. 남들이 다 보냈을법한 평범한 고등학교를 보냈었다.
그러다가 나는 대학교에 올라오게 되었고, 인생에 한번 해봐야 할 재수를 건너뛰고 현역으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가고 싶었지만 성적이 간당간당해서 그냥 쉽게 집에서 가까운 학교로 진학을 했다.
우리 할머니가 늘 그러셨다.
“수지 너는 네 엄마 때문에 대학교 가는 거야, 잘해야 해.”
잠깐 다른 이야기인데 우리 엄마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극성 엄마이다. 나 대학교 가고 수능 본다고 할 때 안 가본 절이 없고, 매일같이 삼천배한다고 지금 무릎이 성하지 않은 평범한 우리 엄마. 나라면 껌뻑죽는 우리 엄마. 그래서일까. 어정쩡하게 머리 좋은 나는 어정쩡하게 좋은 대학교에 어정쩡하게 괜찮은 학교에 무사히 안착하게 되었다.
대학교에 오면 뭔가 새롭고 신기할 줄 알았는데 사실 별건 없었다. 그냥 교복이 사복이 되었을 뿐이고, 내가 좋아하는 예쁜 신발을 원 없이 신어볼 수 있는 정도? 엄청 미인형도 아니고, 몸매가 좋은 바도 아닌 나였지만 보그잡지를 사모았고, GQ잡지를 정기적으로 구매했었다. 그렇다고 지금 패션감각이 엄청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냥 내 지갑만 텅텅 비었을 뿐이지. 우리 엄마는 네 발이 지네냐. 제정신이냐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을 또 말리진 않으셨다. 네가 하고 싶은 거면 다 해라. 그런 엄마덕택에 난 정말 하고 싶은 건 사실 다하고 살았다. 여기서 빠지면 섭섭할 우리 아빠는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때는 그냥 너무 미웠던 사람이라 언급할 부분은 아니긴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 아빠는 아빠 나름대로 나에게 계속 사랑을 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뭐라고 하지만 가끔 엄마 몰래 용돈도 주었고, 나랑 맨날 대판 싸우고 삐쳐서 말도 안 하고 그러지만 내가 쓴 엽서나 편지에 늘 정성스럽게 답장도 해주었다. 그리고 항상 새로운 게 있으면 내 거랑 동생 거랑 같이 사서 싸우지 말라고 나눠주시곤 했었다. 너무 경상도 스타일에 독불장군이라 미워한 것도 있지만 지금은 다 이해가 된다. 나이가 든 탓이겠지.
새내기 MT도 가고 신입생 모임도 가고 과 선배들도 만나고, 과동기들도 만나면서 시험보다는 노는데 치중했고, 나의 첫 남자친구도 이때 생겼다.
세이클럽이라고 들어봤을까? 머 이건 내 이야기니까 내 기준으로 적어야지. 신입생 모임에 늘 보이던 복학생 선배가 있었고, 세이클럽 아이디를 교환하고 대화를 나누곤 했다. 지금의 카카오톡? 인스타 정도 되려나? 대화의 빈도도 늘어나고 점심도 따로 먹기도 하고 하다 보니 난 복학생 선배를 남자친구로 두게 되었고, 그 덕분에 시험 족보라든지 과에 대한 꿀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당시 4살 차이는 꽤 큰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그 선배는 내게 많은 걸 해주었다. 물론 술을 너무 많이 마셨고 너무 많이 놀러 다녀서 걱정이라는 것도 하게 했고, 또 나에게 별거 아닌 걸로 감동이라는 것도 많이 주었던 사람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근사한 것보다는 마음이 담긴 작은 게 더 좋은 사람이라, 시험공부한다고 힘들다고 사준 비타오백이나 지나가다 사준 장미꽃이나 이런 것들이 너무 고마웠다. 무엇보다 CC였기에 자주 만날 수 있었고, 학교만 가면 선배랑 놀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오빠라는 말이 낯간지러웠던 그때, 유일하게 오빠라고 부르면서 옆에 있었던 그 사람. 그리고 나의 처음을 지켜주었던 사람. 지금 생각하면 좀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그 덕분에 생애 단 한 번뿐인, 성년의 날에 받아야 할 3가지. 향수, 장미꽃, 그리고 남자친구의 키스 모두를 받을 수 있었다.
아마 그때 내가 시험을 치고 나왔던 때였는데 남자친구가 꽤나 오래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시험이 마쳤다는 말을 듣자마자 나에게 선물과 함께 뽀뽀를 해주었었지. 부끄럽기도 했는데 그가 아니었으면 내 생애 한 번뿐인 성년의 날은 그냥 지나갔을게 아닌가? 그때 향수가 무엇이었는지 사실 잘 기억도 안 나고 쓴 기억도 없지만 그냥 그 자체로도 좋았었다.
그러게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만이 남는다고 지금 생각해 보니 좋은 기억들 뿐이다. 날 향해 웃어주었던 그의 미소나 내가 우울해할 때 장난스럽게 우울함을 풀어주려고 했던 모습들. 그때의 나는 행복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