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_28
우리 아빠는 말을 하지 않는다. 화는 내는데 말을 하지 않는다. 본인이 무슨 생각인지 어떤 연유인지 말을 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계속 의견충돌이 났던 이유가 아빠는 말을 하지 않고 나는 마음을 표출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화가 나거나 슬플 때 일단 감정을 표출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부딪히곤 했다. 사실 나는 아빠의 마음을 잘 모른다. 이해한다 이해한다라고는 하지만. 나는 사실 아빠의 마음을 모른다. 아빠는 아빠 마음을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루는 꽤 우리에게 큰일이 있었었다. 아빠가 말을 하진 않았는데 나에게서 꽤나 서운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뭔가 서로 표현의 방식이 달랐던 거겠지? 아빠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다가 아빠가 조용히 혼자 살겠다고 했던가, 그때 내가 굉장히 화가 났던 것 같다. 뭔가. 그래서 왜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하냐고, 왜 내 마음을 제대로 받아주질 못하냐고 소리를 쳤었다. 아빠는 무슨 상관이냐고 화를 냈었다. 지금은 이렇게 글자로 적으니 큰일 아닌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그때는 엄청 고성이 오고 가면서 서로 다투었다. 둘 다 씩씩 거리면서 밤잠을 제대로 못 이뤘고,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서 다음날 조금 안정된 상태에서 화를 억누르면서 서로 미안하다고 했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른다. 아빠는 늘 그렇듯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우리 아빠는 남자는, 한 가족의 가장은 아픔을 표현하면 안 된다 배워왔고, 우리 앞에서는 강해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래서 아빠는 어렸을 때도 지금도 힘든 걸 말하지 않는다. 퇴임을 하고서 집에서 허전함을 느낄 때도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외롭고 무력감을 느끼는 그 과정에서도 혼자서 끙끙 앓고만 있었다. 무심한 나는 그것도 알지 못했고, 그렇게 나만 힘들다 칭얼거리기만 했었다. 아빠는 지금 아프다. 병원에서 통원치료도 받고 입원도 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상태라 집에서 일상인처럼 살고 있지만 독한 약을 먹고 아프고 또 아픈 채로 지내고 있다. 나는 그저 한 달에 한번 내려와서 아빠를 보는 게 다지만. 하루하루 달라지는 아빠의 모습을 보는 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오늘은 다시 입원을 하는 날이었고, 아빠는 스스로 입원해서 사용할 짐을 쌌다. 그 와중에 본인이 또 짐을 가지고 가겠다면서 나한테는 무겁다고 짐도 들지 않게 하는 우리 아빠. 자꾸 약한 소리 하는 모습을 보면서 허튼소리라고 일축하곤 하지만. 옛날의 아빠가 아니어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내 뒤에 아빠가 있듯이, 내가 아빠뒤에 있고 싶은데 아직도 나는 부족하기만 한 걸까? 사랑한다고 하루에 열 번도 더 말할 수 있는데. 사고뭉치이고 잘난 거 하나 없지만 맨날 미운쇠만 하는 딸이지만 정말 아빠 사랑하는데 우리 아빠가 다시 까랑까랑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왜 아픈지 왜 속상한지, 그리고 왜 외로운지. 가족이기에. 아빠와 딸이기에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그래도 말하면 더 쉽지 않을까. 난 다 이해할 수 있는데 아니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