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_31
문득 꿉꿉한 거리를 거닐다 보니 온몸이 피로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털썩 주저앉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과 함께. 이대로 하루하루를 보내면 정말 끝은 있는 걸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손을 잡으면서 거닐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생 때 잠깐 만났던 남자가 있었다. 사귄다고 표현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직도 헷갈리는 그런 남자. 꽤 오래 만났던 친구와 헤어지고 이대로 있을 순 없겠다 싶어 학교 관련 소개팅 어플을 통해서 만났던 사람이다. 몇 번의 채팅을 하고 나서 직접 만났었다. 서로 관계도 깊어지고 잘 만났다고 착각을 했었다. 나는 왜 만나는 사람마다 회피형의 사람을 만나는 건지, 아니면 내가 회피형을 부르는 사람인건지, 그럼 내가 문제인가?
거리도 사실 멀었지만 서로 스타일도 많이 달랐다. 뭐든 표현하려고 하는 나와 그냥 지금에 충실하고자 하는 그 남자와는 많이 달랐다. 게다가 나는 대학원생이었고 또 그는 일하는 직장인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의 연락이 끊겼다. 카톡을 아무리 해도 전화를 아무리 해도 그는 받지 않았다. 소위말하는 잠수이별. 내 탓을 정말 많이 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울기도 수백 번을 울었고 어떻게든 그와 연락을 하고 싶어서 다른 번호로 연락도 해보고 정말 내 방식의 노력을 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진절머리가 났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으니까. 그러다가 어떻게 다시 그의 연락이 왔고, 나는 그와 다시 만났지만 늘 한편이 불안했다. 그가 다시 잠수 탈까 봐. 다시 그와의 관계가 끊어질까 봐. 그땐 그 라는 사라 보다는 관계가 사라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컸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때는 정말 한번 맺은 관계는 끊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두 번째 만남도 그의 잠수로 또 끝이 나고 말았다. 나는 차단을 당했고, 더 이상 그와 연락할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고, 뜬금없이 회사 메신저로 그가 연락이 왔다. 그렇게 나는 다시 그와 연락을 하게 되었다. 내가 속이 없는 것인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나는 지금 전남자친구라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했었고, 외로웠고 어딘가 기댈 곳이 필요했다. 그는 예전처럼 처음은 매우 다정했다. 연락하는 게 즐거웠고, 언젠가 또 사라질 사람이라는 걸 머리로 계속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지금 당장은 좋았다. 또 누군가를 새로 만나서 관계를 형성하고 눈치 보고 그런 것들을 생략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다시 그를 만났다. 하지만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그는 또 잠수를 탔다. 이번에는 달랐다. 아팠지만 마음이 아팠지만 어차피 없어질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어서 그래도 덜 아팠다. 궁금했다. 왜 없어졌는지 왜 사라졌는지 또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고, 더 연락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또 가나보다 했는데 몇 개월이 지나서 또 등장했다. 그렇게 지금 3년째 그를 만나고 있다. 이게 연인관계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또 언젠가 사라지겠지 생각하면서 내가 나를 계속 상처 내고 있을 뿐이다. 만나면 좋고, 편안하기도 하고 대화하는 그 순간은 좋은데 막상 또 떨어져 있으면 그도 나도 그렇게 연락에 집착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연락에 꽤 집착하는 타입이지만 그에게는 연락하지 않는다. 연락을 하면 그가 사라질 것 같아서. 그러다 보니 우리의 관계는 철저의 그의 위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