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지금 그리고 내일_44

지금의 나_32

by 쑤라이언

우리의 관계가 건강한가? 그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내가 원했던 건 내 일상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 잠깐씩 내가 아니라 그가 필요할 때 만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가 필요한 게 있을 때만 연락이 온다. 거절을 못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피해를 본다는 자각을 못하는 탓에 그냥 그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곤 한다. 내가 나를 잘 다스리지 못하는 탓이겠지. 아니면 될 대로 되라는 것이거나, 혹시나 정말 만약에라도 그가 좀 더 건강한 관계를 원하는 것일 거라고 착각하는 것일 수도.


진지한 관계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만약에 이렇게 말없이 잠수 타는 일은 하지 말아 달라고. 그렇다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는 역시나 잠수를 탔고, 그는 거기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그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건 적도 없고, 이제는 먼저 연락하지도 않는다. 내가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고, 내가 그를 믿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언젠가 아주 언젠가 그가 나를 유혹할 때, 나에게 말했다.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하라고 자기가 들어주겠다. 나는 또 바보 같아서 홀랑 그런 말에 넘어갔었다. 그때 내게 사기치고 간 녀석도 그랬다. 나에게 힘이 되어주겠다는 둥 그런 말을 했었다. 믿었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했었지. 하지만 그렇게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이내 곧 알게 되었다.


이럴 때면 내가 뭔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나는 뭘 잘못했을까 싶다. 내가 잘못한 건 없다. 내가 잘못 살아온 것도 아니다. 하지만 워낙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보니 내 탓이라도 하고 싶었고, 내가 움직일 없는 무언가에 의해서 이렇게 어려운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인간이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고통만 준다고 한다고 한다는데 종교를 믿지 않지만 이런 내게도 견딜만한 고통이 주어지는 건가 생각하게 된다.


모든 인생이 남자로 이뤄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친구와 연인관계 그리고 가족은 정말 무엇보다 특별한 유대관계가 아닌가. 특히나 믿음이라는 구조로 이뤄진 관계라 이 관계가 삐그덕되면 정말 너무 힘이 든다. 가족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관계이다. 사실 나는 꽤나 다정하고 단란한 가정에서 자랐고, 부모님도 다정한 말을 못 하실 뿐이지 절대적인 믿음이 있는 집이다. 그리고 친구관계도, 적어도 내 평생에 손에 꼽을 절친한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연인관계는 자꾸 실패하고 미끄러지기만 한다. 믿을 만한 사람을 만난다는 게 이렇게나 힘든 건가 싶다. 하루하루 시간은 흐르고 나는 나이가 들어가는데 뭔가 힘들고 아프기만 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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