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형에게
‘현실’은 ‘이상’이 태어났을 때, 동생이 생긴다는 사실에 기뻤다.
자신은 꼭 좋은 형이 될 거라고, 그를 행복하게 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이상이는 예뻤다.
밖을 다녀오면, 그가 있었다. 동글동글한 눈망울, 그 눈은 동그란 지구와도 같았다. 마치 그 눈에 작은 세계가 들어있는 것 같았다. 현실이는 이상이를 예뻐했다. 마치 자신의 자식을 낳은 것처럼. 그래서 일까.
너무 예뻐했던 탓일까, 이상이는 점점 지 멋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아니, 처음엔 그런 낌새가 조금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점점 갈수록 심해졌고, 그런 동생이 얄미울 때가 많았다. 조금 이기적인 면도 있었고, 내가 가르쳐 주었던 것들을 조금은 부정적인 면으로 활용하기도 하곤 했다.
그럼에도 현실이는 너무 착했다.
이상이를 너무 사랑했기에, 순간적인 감정을 그와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잣대로 들여 단정 짓진 않았다. 형의 존재가 뿌듯했고, 자신이 이상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그가 엇나가지 않게 항상 노력했으며, 이상이가 그런 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을 지레 짐작하면서도 그 노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한 삶 속에서, 점점 자신의 무의식 속에 ‘책임감’이라는 것이 스멀스멀 자라나고 있는 줄은 시간이 지나고서야 깨달았다.
‘이상’은 천진난만하게 살아갔다.
자신은 부족한 것이 너무나도 없었기에, 너무나도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다. 자신의 욕구만을 쫓아가면 그 욕구들이 너무나도 잘 충족이 되었기에, 가끔 생기는 결핍이 그에게는 ‘부자연스러운’것이었다. 세상은 자신의 손아귀에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손아귀에 있던 지구는 장난감이었고, 그 장난감을 바라보고 있는 눈도 지구가 아니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고, 그의 손 위에 있는 장난감 지구를 찍고 있던 카메라는 점점 위로 치솟더니, 푸른색 나무들, 바다. 결국 실제 지구를 찍을 수 있는 우주까지 가서 지구를 화면에 담았다.
이상이는 그 영화를 스무살이 되어서야 관람했다. 반지하의 작은 방 안에서, 어두 컴컴한 배경의 작은 노트북 화면으로.
당시 그는 자신이 꿈꾸는 무언가를 쫓고 있었다.
반면에 현실이는 이상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이상이로 인해 성격과 자아의 형성에 있어서 크다면 큰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은 무겁다면 무거운 짐이었다.
뭐, 그는 그것이 무겁진 않았다. 이상이가 보기엔 너무나도 무거운 중량이었지만, 그는 헬창이었다.
그들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같은 배에서 태어났지만 다르다면 너무 달라서 이질적이고, 같다면 너무나도 순수하고 깨끗한 영혼들이다.
현실이는 좋은 형이 될 거라고, 그를 행복하게 해줘야겠다고 굳게 다짐했었다.
그것은 애초에 그가 꿈꾸는 ‘이상’중 하나였고, 그것은 이미 이루어졌다.
20년이 조금 넘는 시간에 걸쳐서, 이상이가 작은 방에서 지구를 느끼게 되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