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이해

by 장지영

환경에 함께 있는 누군가를 동료라고 여긴다. 그 사람은 보통, 그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판단한 최적의 인간이다. 그 인간을 선택한 이유는 ‘현재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계는 맺는 이유의 시작과 끝은 대부분 ‘필요에 의해서’이며, 그것 또한 결국 나라는 존재의 결핍과 관련이 있다. 나에게 없는 것에 대한, 순수하게는 '선망', 나쁘게는 '욕망'에 대해서.


그는 싸움을 잘했다. 거짓된 명성(2통)으로 초등학교에서 지내던 어느 날, 그가 정말 내가 싸움을 잘하는지 의심된다고 소문을 냈고, 그 명성에 취해 있던 난 왜 뒷담을 하냐며 그를 찾아가서 밀치고, 시비가 붙고, 맞짱을 뜨게 됐다. 겁이 났지만 나는 이미 2통이라는 최면에 걸려 있었다.


<말죽거리 잔혹사>같았다. 비록 ‘옥땅으로 따라와’처럼 옥상은 아니었지만, 학교 운동장에서 주변에 구경꾼들이 원을 그리고 영화처럼 싸웠다.

운동장에 있던 아이들은 구경하기 위해 개미떼처럼 모였다. 링 위에 있는 복싱선수들처럼 움직이면 그들은 그에 맞춰 움직였고, 움직일 때마다 운동화에 긁히는 모래 소리가 긴장감을 증폭시켰다.

곧 몸싸움이 시작됐고, 몇 초가 지나지 않아 한 대 맞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최면상태였다.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한 채로 한 손은 모래바닥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입술에 난 피를 스윽- 검지로 닦아 확인했다. 난 고개를 들어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그리고 그 뒤로는 굳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렇게 그와 친해졌다. 그 뒤로 정말 많은 시간을 그와 함께 보냈고, 그것은 학창 시절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때 처참히 패배한 이후로(울진 않았으니 따져보면 엄청 진 것은 아니다), 치고받고 싸우진 않았지만, 그 이후로도 많이 싸우기도 싸웠고, 함께 웃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나쁜 놈이긴 했다. 싸움에 져서 이러는 것이 아니다. 그는 틈만 나면 싸움질을 해댔고, 이기적이었고, 자존심은 엄청 셌다.

사람은 알고 보면 관계를 형성할 때 상대방이 나쁜 사람이고 아니고는 크게 인식하지 않는다. 단지 그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되면, 적어도 ‘나에게는’ 좋은 사람이다. 그 사람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스스로는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합리화한다. 그는 자신이나 소중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대신 싸우는 용감한 사람이었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가 있어서 때론 이기적이고, 자존심을 부리기도 하는 연약한 사람이었다.

관계에 있어서 선과 악을 따지는 것은 사실 크게 의미가 없다. 어차피 그것이 둘 사이의 관계를 결정짓는 요소가 아니니까. 그것은 아마 그 시점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라서, 그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정당성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일테다.


모든 관계는 필요에 따라 유지된다.

모든 관계는 애초에 그 관계가 시작할 때부터 ‘필요’에 의해 발생되었고, 그것이 둘 중 한 명이라도 유지되고 있기에 그 관계가 유지된다. 오래전부터 그랬다. 인간은 무리 지어야 생존에 유리했기에 모였고, 그 유전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에게 전해졌다. 이 세상에 인간이 이루고 있는 모든 관계는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우리는 ‘의리’나 ‘우정’ 정도의 명분으로, ‘정(情)’이라는 옥에 갇힌다.

추억은 지나간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현재에 존재하는 나에게 혼란을 야기한다. 상대는 분명 당시엔 필요하고 도움이 되었던 기억을 주었던, 날 위로해주고 외로움을 달래주었던 그 기억은 결코 대체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난 그를 찾지 않게 된다. 분명 난 그를 미워하지 않는데, 내가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인정하기 싫다. 필요한 사람만을 주변에 둔다면 그 땐 정말 내가 너무나도 이기적인 사람이 될 것만 같다. 하지만 나는 상대방을 필요로 하지 않는데 곁에 두고, 그에게 억지 웃음을 보이며 가면을 쓴 채 광대처럼 웃음 짓는다. 의미 없는 에너지를 쓰고, 그 모든 에너지는 거짓된 말과 행동을 향한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때로는 이기적인 선택이다.

모든 사람은 평생 많은 관계를 ‘선택’하며 살아간다. 새로운 환경이 주어졌을 때 그 환경에서 누군가를 선택했고, 또 시간이 지나면서 선택한 그 관계를 지속시킬지 선택했다. 상대방과의 관계가 이루어진 순간부터, 관계는 언제나 스스로 선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택에 대한 책임감도 언제나 본인의 몫이었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내가 스스로 정하고 구축해 나가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큰 용기다. 서로의 인생을 존중하며 상대방을 선택하고, 관계를 지속시키고, 또는 끊어낸다. 그곳엔 언제나 서로에 대한 존중을 향하는 마음이 있다.


관계는 필요에 따라 선택되고 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날 부정했다. 내 주위의 사람들을 부정했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이 차갑게만 느껴졌다. 너무 추워서 슬펐다. 하지만 한 켠으로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 돌이켜보면 모든 행복은 그곳에서 시작했다.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로 작용할 때 감사했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언제나 그러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삶에 대한 노력이 필요했다. 내 주변 관계가 나를 필요로 하기 위해서, 나를 떳떳하게 주변에 소개하기 위해서, 내가 떳떳하게 소개받기 위해서는 나의 삶이 좋아져야 했다.

관계가 필요에 따라 유지되는 것. 어쩌면 그것은 노력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이자 동기였다. 냉정하고 부정적인 의미보단 모두의 삶에 원동력을 제공하는, 언제나 날 일으켜주고 상처를 아물게하는 사실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애를 쓴다. 사람들이 가족을 위해서, 연인과 친구를 위해서. 나를 열심히 살아가게 만드는 이 순리는 참 아름답다.


관계는 필요에 따라 유지된다. 관계의 지속에는, 그 사람의 삶의 태도, 그의 인생과 노력이 들어있다.



ps. 아, 싸움꾼 친구는 일단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가끔 고향에 내려가면 만날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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