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복을 입고 그녀와 걷는다. 익숙한 일이라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야자를 마치고 집에 가는 학생들이 많고, 내 여자친구에게 잘 가라며 인사를 건네는 아이도 있다.
길을 걷다가 늘 그랬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며 손을 잡는다. ‘손 잡아야지’ 하지 않았는데 내 손이 이미 그녀의 하얀 손에 깍지를 끼고 있다.
난 그녀와 사귀는 사이다. 성격이 엄청 여성스럽지는 않지만, 그런 점이 좋다. 말을 재밌고 매력적으로 해서 처음 대화를 할 때부터 관심이 가다가 어느새 크기가 커졌다. 그리고 겉으로 표현하는 것과 달리 속에 여린 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더 많이 좋아하게 됐다.
난 어릴 때부터 엄마와 뽀뽀하는 것을 좋아했다. 뽀뽀를 하면 맞닿는 그 입술이 좋은 게 아니라, 눈 깜짝할 새에 엄마의 얼굴이 내 코 앞까지 와서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얼굴이 멀어지고 나더니, 엄마가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일 때가 너무 좋았다. 우리는 하나라는 그 눈빛.
오늘도 그녀의 집 앞에 무사히 에스코트해 줬다. 그런데 그녀는 엄마와 비슷하게 나를 쳐다본다. 난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녀와의 키스는 엄마와의 뽀뽀와 다르다.
나는 새로운 사랑을 배우고 있다.
2.
나는 학교에서 유명해졌다.
sns에서 어느 부부의 게시물을 봤다. 남자는 아내와 함께 보낸 사진과 함께 달콤한 글로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로맨틱하다고 생각했고, 난 따라 했다.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나서 사진과 함께 좋은 멘트들을 생각하여 페이스북에 올렸다. 내가 좋은 말들을 내뱉으면 내뱉는 대로 그녀는 좋은 사람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무엇을 사랑했던 걸까. 그게 무엇이든, 내가 느끼는 감정과 경험들은 사람들이 말하는 첫사랑이랑 유사해보였다. 무의식 속에 그녀는 나의 가슴에 너무 깊게 들어와 버렸고, 그녀가 하는 사소한 말과 행동들조차 나에게 중요한 것들이 되어버렸다. 그녀의 삶을 가지려 했다.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갖는다는 개념이 틀린 것인데도 가지려 한다. 누군가는 애인을, '만나고' 있다고 표현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말한다. 결핍은 없는 것을, 가졌으면 좋겠고 생겼으면 좋겠다고 속삭인다. 애정결핍은 사람들에게 흔하게 발생한다. 가족이라는 단위를 만들도록 부추기는 세상 때문일까.
우린 서로 이성인 친구들과 말하는 것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이성과 소통하는 것이 싫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우리가 했던 약속 때문이었다. 서로 그러지 않기로 ‘약속’을 했다는 것이 가장 컸다. 그녀가 그 약속을 어기면 그녀와의 신뢰를 전부 잃는 듯한 느낌이었고, 당시 내가 느끼기에 바람피운 것과 똑같았다.
질투는 연인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느끼는 이 감정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이다. 온라인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댓글을 보면 흔하게 볼 수 있다. 미워하는 감정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사랑해야하는 사람을 의도와는 관계없이 미워하게 된다면 그 원인에 대해 자세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질투는 개인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또는 자신이 잃게 될 것에 대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어, 나는 장난감 자동차 척척박사인데 저건 내가 못 보던 트랜스포머잖아?'라고 그에게 가치있는 것을 생각한다거나, 또는 연인 사이에 ‘그가 나를 떠나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스스로의 가치를 보존하거나 상실을 방어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의 가치를 보존하거나 상실을 보존한다면 질투라는 감정은 무뎌질 수 있다.
1. 가치 파악
가장 먼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연인과 헤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내가 그 사람과 헤어지면 어떤 가치를 잃게 되는지. 그것이 무엇이고 나에게 꼭 필요한 가치인지,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나 대안이 있는지. 만약 있다면, 극단적으로는 그 사람을 잃어도 된다- ..라고 생각한다면 질투라는 감정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2. 상실을 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당연히 상실하지 않는다면 가장 좋다. 하지만 오류는, 상실을 판단하는 기준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질투라는 것은 온전히 본인의 감정이기 때문에, 그것이 사랑이라는 크고 거대한 감정에 섞인다면, 상실에 대한 판단 기준이 흐려질 수 있다. 그래서 인간 관계에서는 보통 ‘신뢰’라는 것으로 서로 관계의 존속을 약속한다.
3. ‘상실’으로 인해 스스로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다.
모든 가치는 본인이 없다면 그 가치를 잃어버린다.
4. ‘상실’을 언제든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을 갖춘다.
‘나이가 들 수록 단단해진다.’
지하철 1호선 빌런(villian)들은 단단한가? 그들은 나이에 불문하고, 지하철이라는 ‘공공장소’에서 돌멩이를 빼내려고 노력한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다른 방법으로 내면을 발산하기 위해 노력하지, 적어도 지하철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진 않는다. 나이를 먹었다고 무조건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실질적인 노력을 하면서 살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가치는 다르다.
근육은 찢어지고, 회복하며 성장한다. 정신은 힘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이겨낼 때 더 단단해진다.
경험은 느낀 점으로부터 얻은 지식이나 기능이다. 힘든 상황을 겪은 후, 얻은 지식이나 기능이 없으면 경험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3.
“나 걔랑 잤어.” … “미안하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나의 첫 번째 사랑은 그렇게 완전히 끝났다.
상실은 때로 불가항력처럼 찾아온다.
맹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주를 어느 정도는 믿는다. 사주를 믿는다고 해야 할까,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는다. 왜냐하면 우린 이 세계를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인간이 쌓아온 정보를 토대로 만들어져 있고 그곳엔 한계가 존재한다. 법은 나라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정한 것'이고, 우리가 말하는 언어들은 잘 소통하기 위해 '약속한' 발음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대부분 ‘보편적 사실’이다. 통계로 이루어져 있는 사주처럼.
당연하게 믿는 것들은 조상들이 쌓아온 경험이고, 우리는 자손들에게 새로운 것들을 알려줄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이 세계의 얼마나 많은 것들을 더 알게 될까? 그중 무언가는 사주팔자와의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인터스텔라(2014년 SF영화)’처럼 우리의 시공간은 정해져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말하는 운명이라는 것은 그런 것일까? (여기서 말하는 운명은 무조건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마무리가 아름답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와의 시간들과 추억들을 사랑한다. 나에게 많은 것을 알게 해 주어서 고맙고, 그를 통해 앞으로 더 잘 살아갈 수 있게 해 줘서 감사하다. 그녀 덕분에 나의 이후 시공간은 조금 더 가치 있어질 것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을 만한 선택에 가까워질 것이고, 내가 원하는 사랑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선택을 할 것이다. 앞으로 내가 만나는 사람에 있어서, 그녀의 덕이 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변화한다. 하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가치는 보존된다. 그 가치는 변형되어, 또는 훗날 합쳐져서 결국 한 사람의 가치가 된다.
그녀의 시공간도 나를 만났으므로 인해 조금은 나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