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의 이해

by 장지영

육식동물들 사이에서 경계하는 초식동물처럼 무언가 신경을 곤두세운다. 경계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인정욕. 열등감. 자존심. 이들 중 하나이거나, 비슷한 것일테다. 언제 어디서부터 왔는지 이 감정들은 나를 조금씩 갉아먹더니 결국 날 망가뜨려 놓는다.


학생 때부터 였다.

남자들 사이에서는 왠지 모를 긴장감이 있다. 이 놈은 나보다 강한 사람인가. 강하다는 것은 물리적인 힘 뿐만이 아닌 그 사람이 가진 능력, 기세 등 여러 가지가 합쳐져서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라는 결과값을 말한다. 여자들의 기싸움과 비슷한 형태인 이것은 흔히 ‘자존심’이라고 불린다.

남자 학생들 사이에서는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을 했다. 서로보다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거나, 가장 웃긴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쎄 보이고 싶은 것은 그렇다 치고, 개그맨 지망생도 아닌데 가장 웃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남학생들의 독특하고 고유한 특성이었다. 짓궂고 수위 높은 장난을 많이 치는데, 웃기고 싶은 와중에 우스워지기는 싫은 그들은 삐끗하면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자존심이 긁히니까 조심해야 한다.

나보다 우위에 있거나 강한 상대 앞에서는 겸손하게 행동해야 한다. 함부로 행동했다가는 내가 우스워질수도 있으며, 만에 하나 그에게 지는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보이기라도 한다면 나의 품위가 무너진다. 좀 찌질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이 작은 사회에서 생존하는 방법이다.

자존심을 지켜가며 드디어 학교라는 환경에서 벗어나 사회로 나왔다. 일하는 곳, 지인의 지인들, 군대 등 수많은 집단들에 속해졌다. 하지만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일 뿐이었다. 상황은 언제나 똑같아지고, 난 헐떡거리며 속한 집단에서 발악했다.

인간은 자신이 의식하지 않고 행동한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무의식이란 그런 것이다. 모르는 사이에 나의 객관화를 잡아먹고 잠식해 버리는 것. 학창 시절에 아무도 알려준적도, 배운적도 없지만 스스로 학습했던 모든 행동들은 악습관이 되었고, 날 자존심 덩어리로 만들고 있었다. 모두 학창 시절부터 존재했던 것이었다.


자존심은 ‘남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본질적으로는 ‘안전’이라는 의미 하에 있다. 과거에 낯선 종족을 마주할 때 자신의 안위를 걱정했던 것처럼, 품위를 유지하는 것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그들보다 강해 보여야 하기 때문에,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우듯 여러가지 태도를 취함으로 자신을 감춘다.

하지만, 자존심이라는 의미의 역설적인 면이 있다. 남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분명 본인의 의지지만, 보호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본인이 안전해지지 않는다. 공격권은 애초에 다른 사람에게 있고, 자신이 안전해질 수 있을지의 여부는 언제나 상대에게 있다. 물론 나의 보호가 강력하면 안전은 확보되고 그 실질적 보호와 품위유지는 자신이 행할 수 있지만, 결과적인 안전은 외부적 요건에 달려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자존심은 수동적이지 않다- 실질적인 자존심은 집단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지켜준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단지 내가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 뿐인가, 아니면 정말 못난 사람인건가. 정말 생각들은 내 안에서부터 오는 것인가.


처음엔 겸손해지기로 했다. 처음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겸손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어릴 때부터 배운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부터 열까지 겸손하게 행동했지만 그런 시간이 지속될수록 사람들은 날 만만하게 보기 시작했다.


내가 바라본 겸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통제 가능한 겸손과 통제하지 못하는 겸손. 힘을 가진 자의 통제 가능한 겸손은 멋있다고 느껴지지만, 무력한 자의 생존 게임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연극과도 같았다. 난 분명 후자였다.

품위 있는 사람들은 겸손했으며, 자존심을 부리지 않았고, 이미 외부로부터 안전해 보였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여유가 머리끝에서부터 흘러넘쳤다. 그들은 굳이 에너지를 써가며 불필요한 행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 힘을 가진척, 자존심을 부려야하는 것인가? 갱생(更生) 해야하나? 집단에 따라 한 사람의 품위는 변하고, 환경에 따른 그 사람의 이미지는 달라진다. 자신이 집단에서 하는 역할과 위치,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집단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집단에 속한 사람들과 본인을 잘 파악하지 않으면 자신의 역할을 잃어버리고, 무리에서 쓸모 없는 존제가 된다. 그래서 자존심은, '자기 객관화'와 관련이 있다.


알고 보니 내가 다른 이들에게 취했던 것은 겸손이 아니었다. 무조건적인 겸손을 '가장한' 태도를 취했을 뿐이었다. 태도는 겉으로 드러나지만, 존중은 정확한 실체가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존중은 태도를 따라오도록 만들지만, 태도는 존중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사람들은 모두 태도를 보고 겸손하다고 판단하지만, 태도가 존중으로부터 우러나온 태도인지, 단지 살기 위해 몸을 사리는 태도인지는 사실 오직 본인 만이 아는 것이었다. 겸손은 태도가 아니라 마음이었다.


인정욕, 열등감, 자존심. 그것들은 애당초 내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기 연민, 나 스스로를 계속해서 동물의 왕국 속으로 집어 넣고 있었다.

내면의 목소리는 본인에게만 들리고, 자신도 모르게 느낀 것들은 어느새 관념들로 자리 잡힌다. 수많은 객관적 사실들 속 특정 관념들은 ‘틀린’것이라 확신하고, 자신의 경험 속 부정적 사실들에 대해 무조건적인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자기객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서의 자존심은 때로 개인의 성장을 막는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스스로가 부족한 부분에 대해 인지하고, 남들보다 잘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자존감을 높이고 자연스럽도록 겸손하게 만든다. 남들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더 정확하게 소통되도록 만든다. 나의 가능성을 좀 더 정확하게 인지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한다.

어느 순간 나 자신에 대해 기특하다 칭찬할 만한 계기가 생긴다. 그 일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평가와 비슷할 만한 위치에 있다.

자존심을 버린다는 것은, ‘사회화’가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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