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와 B라는 사람은 태어나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이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주어지는 다양한 환경에 따라 살아가며 배우고, 노력하며 시간을 보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의 내면과 외면적인 모습은 변해갔다. 또 그에 따라, 자신들이 세상에 작용하는 것은 다시 달라졌다.
엄마아빠는 지금 이혼하신 상태다.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아빠가 바람을 피운 적이 있으셨다 한다. 고등학교 때 이혼 이야기를 처음 들었는데, 당시 그 사실에 대해 엄청 괜찮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청 슬프거나 화나지도 않았다. 그 이후에도 많은 것들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왜 그런지는 몰랐다. 왠지 내가 아무것도 하면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아직도 자세한 이야기는 모른다.
일단 확신했던 것은, 엄마와 아빠는 부모이기 이전에 사람이고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갈 권리가 있었다. 두 분 모두 나에게 부모의 역할을 해줄 것이기 때문에 나 또한 그들의 관계를 존중해야했다.
‘나의 부모는 내 나이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었을까’
누구나 언젠가 해봤을 법한 생각이다. 난 그 시절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상상해보곤 한다.
엄마와 아빠가 처음 만났던 순간과 그 모습, 마치 내가 연애를 할 때처럼 설레어 하고, 상대가 영원히 인생의 동반자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모습. 싸우는 모습과, 그들이 감정적으로 즐거웠던 그리고 힘들었던 수많은 순간들. 그때 각자는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지.
그들의 첫 경험과 그 분위기… 숨소리, 호흡 소리. 이런 상상들은, 내가 그들 사이에서 ‘창조’되었다는 생각에서부터 발생된다.
내가 내 나이의 그들을 실제로 눈앞에 마주했다면 어떤 느낌일까.
가슴 한편은 아련해지고 몽글몽글해진다. 현재의 나는 그 나이 때의 그들보다 더 강할 것이라는, 당시 어리숙했던 그들에게 대화를 건네어 조금이라도 지켜줄 수 있지는 않을까- 싶은 근자감이 들고, 그들의 삶은 분명 지치고 힘들었을 것이라는 편견 또는 연민이 느껴진다. 이런 생각과 마음들은, 그들을 깊게 이해하고픈 나의 노력일까.
그들과 똑같은 길을 걷다 보면, 문득 그들이 떠오른다. 그 때는 몰랐던, 나의 행동과 그들이 했던 행동이 겹쳐지고, 단번에 그들이 했던 행동들에 정당성이 생긴다. 마치 그것들을 온전히 이해하는 느낌, 그것은 마치 머리를 한 대 맞은 것만 같은 얼얼함. 부끄러움, 감사함, 후회. 그들은 지금까지 나를 보며 무엇을 느껴왔을까.
난 느낄 수 없다. 그들이 지금까지 삶을 살아왔던 관점을, 나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온전히는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들과 같은 경험을 한다고 한들, 난 그들과 같은 과거를 가지지 않았기에 그것이 동일해질 수는 없다.
관점이라는 것은, 상대의 입장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 사람의 신체로 그의 인생을 1분도 살아보지 않았기에 남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똑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느끼는 점이 다른데,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수 많은 사건의 집합체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무조건적인 자만이다.
그렇기에 내가 감히 이해하고 판단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나의 최소한의 예의이자 존중이 아닐까. 창 밖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그들은 그 선택을 하기 위해서 수도 없이 다짐을 떨쳐 내고, 고민했을 거라고.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들을 신뢰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랄 뿐이라고. 그들도 서툴고, 모두 처음이었을테니까.
A와 B라는 사람은 태어나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아무것도 모른 채 주어지는 다양한 환경에 따라 살아가며 배우고, 노력하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의 내면과 외면적인 모습은 변해갔고, 또 그에 따라 자신들이 세상에 작용하는 것은 달라졌다.
그들은 처음부터, 언제나 A와 B였을 뿐인데.
엄마는 말씀하셨다. 이혼해도 엄마이고, 이혼해도 아빠임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애초에 나에게, 엄마도 아빠도 변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