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사랑을 보게 만든다. 넓은 세상을 마주하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대학교에 가고 싶었다. 왠지 그곳엔 사랑이 있을 것 같았다.
캠퍼스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골 때리는 얘기지만, 한창 페이스북에서 웹드라마를 하고 있을 때 그걸 보고 대학교는 꼭 가야겠다 싶었다. 고등학교 때 자신 있게 열심히 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연애밖에 없는데, 그렇게 연애만 해대고 대학교에 가서 또 연애하려는 거다...그렇다고 꼭 연애 때문만은 아니었다. 연애를 포함한 여러가지의 관계, 하고 싶은 일, 나 자신에 대한, 애상(愛想). 여러 종류의 사랑들.
어쨌든 대학교를 가야 했는데,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난 5등급이었다. 5등급짜리 인간. 공부나 노는 거나 어중이떠중이.
공부를 해야 할 만한 동기를 느끼지 못한다.
스스로 엄청 가고 싶은 학교나 학과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정말 진심으로 가지고 싶은 직업이 있지도 않다. 보통 대부분이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워하는 습성이 있다.
난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존경했다.
그때는 그냥 어린 마음에 부럽다고 느꼈는데, 시간이 지나 보니 그것은 ‘존경’이었다. 많은 정보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 글이나 이미지를 저장할 수 있는 암기력, 그리고 원하던 원하지 않던 목표를 위해 해내고 말겠다는 그 인내심. 나는 그런 능력들이 없었다. 수업시간에 집중을 하려고 하면 집중이 수업 내용이 아니라 다른 생각으로 도망가버리거나, 그 생각을 하다가 꿈속에 잠겨버렸다. 정말 그것이 내 노력이 부족해서 그랬던걸까.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왠지 어른스럽고 멋있어 보였다. 나는 그들과 뭔가,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공부(工夫) :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
배움은 평생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공부는 그렇지 않다. 공부와 학습은 다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이러한 개념을 자세하게 학습하지 않았다.
호기심이 생기는 것, 본질적으로는 그것이 인간이 공부를 하는 첫 동기이었을 것이다. 그것에 대해 알고 싶어서 학습하고, 그 과정에서 기술이 생긴다. 그것을 모아 개념을 정리해보니 학문이 되었고, 유익한 팁들을 나누고 싶어 공유했더니 배우고 싶은 자들이 생겼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부를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위한 공부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물론 넓고 다양한 분야에 대해 많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좋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습관은 때로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노는 학생이었다. 학생 때 술도 마셔봤고 담배도 피워봤다. 하지만 나는 술 마시고 담배를 피워서 학생답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학생답지 못해서 그런 행동들을 했다.
단지 그 사실만이 부끄럽지 않다. 정말 내가 부끄러운 것은, 내가 아쉬운 것은, 뭐 하나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 무언가를 위해 진심을 다해 노력하지 않았고, 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 내가 만약 정말 술과 담배를 좋아했던 것이라면, 난 그것들을 공부했어야 했다. 난 내가 원하는 공부가 뭔지 몰라서 방황했던 것이 부끄럽다. 공부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단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만큼만 삶이 멋있고 미래에 무언가를 향유하는. 그리고 그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그걸로 된다...'
난 멋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공부도, 관계도, 심지어 노는 것도. 그것들 중 무엇 하나 진심을 다해 제대로 해보겠다는 포부도 야망도 없었다. 뭐든 잘하고 싶던 욕심이, 나를 이도저도 아닌 사람으로 만들었다.
학창 시절은 한 사람의 자아를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눈앞에 놓인 시험지는 숲을 막고, 오직 시험지 한 장과 다른 한 그루의 나무만을 바라보게 만든다. 하지만 언젠가 그것은 걷힌다. 시야를 얼마나 많이 막든 내가 살고 있는 숲이, 언젠가 보인다.
생각해보니 크게 상관 없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만들었던 수많은 과거가, 그 결핍들이 나중에 언젠가 드러나줄 수 있어서, 급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성인이 되고 나서 여행을 다니며 더 넓은 세상을 마주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갔고, 자연스럽게 공부하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후회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공부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후회를 생각하게 하지만, 그 후회 때문에 지금은 무언가를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아쉬운 것들은 언제든지 결핍이 되어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노력들로 바뀔 것이고, 내가 한 경험들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
사람은 공부하는 시기가 다르다.
그것은 결핍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