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의 이해

by 장지영

'소꿉놀이'를 어릴 때는 ‘엄마놀이’라고 불렀다. 난 아빤데 왜 그렇게 불렀는지 모르겠다. 하려면 엄마가 필요해서 그랬나? 아.. 내가 먼저 하자고 한 적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사촌 동생들이 많았는데 모두 여자였다. 내가 사촌들 나이 딱 중간에 위치해 있어서, 형 누나들과 어울리는 데에 조금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이 쪽 저 쪽 번 갈아가며 놀았는데, 그들은 나를 데리고 노는 느낌이었고, 나는 동생들을 데리고 놀았다. 그때마다 필수 코스는 ‘엄마놀이’였다.

재미있었다. 하고 싶어서 미치거나 환장하진 않았지만 시작하면 엄청 재밌게 했다. 단지 작은 놀이이지만 가족 단위로 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그 일상적인 말들을 하는 따뜻한 느낌이 좋았다.

뭐 딱히 할 게 없다, 시간이 뜬다 싶으면 “자자~” 하며 잤다. 일어나서 밥 먹고 또 “자자~” 하면, 엄마 역을 맡은 동생이 벌써 자냐고 물어본다. 그럼 “지금 벌써 밤인데?”하면서 내 마음대로 날씨를 바꿔 버린다. 동생들은 모두 수긍한다. “어! 벌써 밤이네~?”

엄마놀이가 아니라 히틀러 놀이를 하는 것이 재밌었던 걸까?


군대에서 어느날 몇 안되는 동기들이 하소연을 했다. 군대는 처음 겪는 꽉 막힌 환경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1년 넘게 지내야 한다. 심지어 능력과는 무관하게 상하관계가 정해져 있다. 일단 왠만한 것은 대부분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상식에 벗어나는 것들도 많고, 선임을 따르고 싶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어쨌든 힘들다. 훈련 도중 태도에 관련해서 실수하고 혼나면, 안 그래도 체력적으로 힘든데 정신적으로도 버겁다.


군인은 상명하복(上命下服)이 기본이다. 어찌보면 전쟁 중에 많은 인원을 통솔하기 위해서 그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전쟁의 승리와 수 많은 목숨이 달려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말 잘 들어야겠구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군대에서, 엄마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어떤 환경에 놓이면, ‘역할’이 생긴다. 그리고 그 역할에 따른 성격과 이미지가 형성된다.


그들도 그럴 것이다.

여기서는 나에게 한 없이 높고 멀어 보이지만, 가정에서는 누군가의 아들이었다. 또 다른 환경에서는 누군가의 친구, 또는 누군가의 연인.

단지 똑같은 사람이고, 그냥 ‘선임’이라는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다. 자신은 그 역할에 최선을 다 했을 뿐이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니까 선임들이 귀여워 보였다.

일시적인 역할을 부여받았는데, 그 역할이 너무 좋은 역할이라 신이 난 것처럼 보였다. 마치 내가 엄마놀이에서 히틀러가 된 것처럼. 여기서 재밌는 건, 멋있고 어른스러운 선임들은 관점을 바꿔도 그대로였다.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하는구나.’

가끔 권력에 취한 분들이 몇 분 계셨다. 나보다 나이도 많으신데, 군대라는 세상에 취해서 잘못된 방법으로 자신의 인정욕을 채우는 것 같았다. 그런 분들은 기본적으로 후임에 대한 배려는 아예 없었다. 빡빡머리인 것이 그렇게 큰 죄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 분들만, 귀여워졌다.

군대라는 환경을 빼고 나니,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나이에 따라 친구로 보이고, 동네형으로 보였다. 간부들도 형이나 아저씨로 보였다. 귀엽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기분 나쁘게 들릴 수 있지만, 나에겐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그들의 장점이 보이고, 내적 친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음 날, 건이(동기)가 내게 말했다.

“야. 네가 말한 거 자꾸 생각나서 웃겨 죽겠어..”

후후. 그들은 우리가 이렇게 생각한 줄은 꿈에도 모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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