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의 관점을 가지고 살아간다. 여기서 말하는 ‘관점’은, 어떠한 정보들을 바라보는 입장이나 시각이다. 자신의 눈으로 보는 세상.
우린 결코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보지 못한다. '예측'할 뿐이다.
우리가 상대방을 이해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만이나 자만이다. 그의 모든 과거, 생각과 모든 오감을 정확하게 나와 일치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관점은 어떻게 형성이 될까?
한 영상을 봤다. 운동선수가 사람들이 많은 곳 앞에서 자신의 아들을 한 손으로 안고 이야기한다.
“이 아이는 당신들에게 영향을 받습니다. 다 같이 박수를 쳐보실래요?” 사람들이 박수를 치니, 아이도 덩달아 친다.
이런 식으로 인간은 어릴 때부터 작고 사소한 것들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온다. 자신은 많고 작은 영향들로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그 작은 영향들이 하나씩 모여서 점점 커지고 굳어져서, 살아가는 관점이 되었다. 그것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을 바꾸면,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가진 채로, 세상이 말하는 ‘당연함’, 즉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관점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라,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고, 좋은 질문을 통해 그 생각의 질을 높여라. 그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발전시켜 나가라.
나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새로운 세계를 만난 듯했다. 똑같은 세상에서, 남들과 다르게 볼 수 있다면 정말 나의 삶이 바뀔 것만 같았다. 따져보면 그것이 실제로 정답이었다. 아무 ‘다름’없이, 나의 노력을 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살면 조금 더 평범에 가까운, 사회적 통념에 맞춘 삶을 살 가능성이 커질 것이었다. 다르게 보아야 삶이 달라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말이었다.
“Connecting Dots”
이어진 점들. 과거, 현재, 미래가 어떠한 점이라고 했을 때, 그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점과 ‘미래의 어느 순간’이라는 점은 긴밀하고 정확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지금 하는 행동과 현재 보내고 있는 시간이 미래의 어느 순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적인 이야기다.
'운동을 하면 -> 몸이 좋아진다.', '밥을 먹으면 -> 체중이 늘어난다.'와 같다.
과거의 시점과 현재의 점은 연결이 되어 있다. 즉, 현시점의 시간은 ‘실제로’ 미래에 어떤 순간과 관련이 있다. 지금 5분 동안 운동을 하면, 고작 그 5분 때문에 나의 미래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물론 어떻게 달라질지는 모른다. 5분이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와 더 큰 긍정적 효과를 초래할지, 5분 운동하려 했다가 심정지가 올지.
순간이라는 점이 존재하고, 그것이 긴밀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정말 현실적으로 깨닫는다면, 시간의 흐름은 다르게 보인다. 시간이라는 것은 단지 휴대폰 속 시계가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어떠한 '상태'와 같이 느껴진다. 언제, 어디에 존재하는 단순한 '상태'. 그것은 차원의 개념이다.
우리는 미래를 보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의 시점(時點)은 언제나 한 시점(視點)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를 보는 관점은 때로, 미래의 어느 시점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현시점 나의 관점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과거의 영향들로 인해 형성되었다. 수많은 시간(시점)들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고, 그들과 영향을 주고 받았으며, 나의 세상을 형성했다. 나는 나의 과거로 인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지금 현재의 내가 어떤 영향을 받는지에 따라, 미래 나의 관점이 달라진다.
이 내용을 정리했던 공책을 다시 한번 읽어봤다. 방금 또다시, 과거의 점과 현재 점들이 연결되었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행동은, 앞으로 미래의 어떤 점과 연결될까. 지금 이 순간은 이후에 어떤 역사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