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by 장지영

1.

제주도 올레길을 걷는다. 걸은 지는 3일 정도 되었다. 걷다가, 검은색 현무암이 총총 그리고 듬성듬성 나 있는 바닷가에서 우리는 멈췄다.

갈매기 떼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드라마 ‘도깨비’에 나왔던 풍경 같았다. 그쪽으로 다가가니까, 그들은 밀가루를 입으로 분 것처럼 날아갔다.

나는 생각해 놓았던 멘트를 했다.

“누나.”

“응?”

“나 죽기 전에 누나 한 번은 만나보려고.”

“어 왜?! 한 번만 만나게?”

어 이게 아닌데.

“어.. 아니 그게 아니라! 음…”

“…아? 나랑 사귀겠다고?”

“응.”



영국을 다녀온 이후로도 여행을 자주 다녔다. 대학교 동기 별장에 놀러 가기도 하고, 다른 지역에 혼자 가기도 하고. 영국에서 만났던 상준이 형을 만나려고 서울에 가기도 했다. 많이 돌아다녔지만 당시엔 뭔가 여전히 목말랐다.


‘목요일-토요일. 한라산 갈 사람 구함. 아무나.’

sns에 사람들을 구했다. 아직도 여기가 유럽인줄 아나... 이런다고 사람이 구해질 것 같은가?

구해졌다. 새로운 사람은 아니고, 나름 친한 친구 두 명이었다.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항상 게스트하우스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추천하며 이번에도 그렇게 했다.

3박 4일간 머물 장소를 무작정 골랐다. 함덕 해수욕장 주변에 있는 숙소였다.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제주도에 도착하고, 숙소를 찾았다. 입구로 들어서는데 일반 가정집 같아서 여기가 맞나 했다.

시골 대문이 있고 그곳으로 들어서면, 고기를 구워 먹으면 좋을 것 같은 평상 하나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날 반긴다. 안 쪽으로 투명 창인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공간 왼쪽에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1층 마루 바닥 침실 그리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2층 침실이 있다. 산속 대피소 같은 느낌의 침실이었다. 그리고 오른쪽 대각선 앞에 나무로 된 식탁이 있고, 좀 더 안쪽엔 부엌이 있다.

벽에 사진들이 엄청 많았다. 전체적으로 아프리카나 남미 분위기가 났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정면 앞쪽에 투명 창인 미닫이 문이 하나 더 있다. 그 앞으로 바다가 보인다. 거기가 정문이었다. 나가면 탁 트인 야외 테라스에 바다를 측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원목 나무 테이블이 몇 개 있었다.


우리는 전 날에 밤을 새우고 비행기를 타서, 도착하자마자 잠에 들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일어났다.


“저녁에 요리해서 술 마시려 하는데 같이 드실래요?”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던 중 눈을 마주쳐서 인사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했다. 나는 “너무 좋죠.” 했다.


요리를 돕고, 함께 술자리를 준비하며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모든 것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대본이 있는 것 같았다.

그분들의 나이대는 30대에서 40대였다. 나와 친구들이 스무 살이었는데도, 그들은 우리를 나이와 관계없이 온전히 존중해 주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는 허물없이 친해졌다.


둘째 날이다. 새로운 사람들도 몇 명 왔다. 그중 누나가 있었다.

그날은 누나의 생일이었다. 남자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그녀가 화장실 갔을 때 깜짝 케이크를 모두에게 부탁했다. 누나가 들어오고, 우리는 함께 축하를 해줬다. 그녀는 웃으며 촛불을 껐다.

처음 봤는데 세레나데를 불렀다. 분위기가, “노래 쫌 하는 애 있는데 너 축하 곡 한곡 해”였다. 누나는 잘 부른다며 나를 칭찬했다.

누나의 얼굴을 계속 봤다. 얼굴이 엄청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 단지 그 사람의 말투나 표정, 그 풍기는 뉘앙스가 되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왠지 가슴 안 쪽 깊숙이 많은 걸 담고 있는, 담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어봤다. “두 분 만나신 지는 얼마나 됐어요?”

알고 보니 그 형은 남자친구가 아니었다.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친한 오빠동생 사이였다.



2.

셋째 날엔 등산을 했다.

친구 한 명은 전 날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산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에서 토를 하고 나가떨어졌다. 숙소에 가서 쉬고 있겠다고 했다.

나랑 다른 친구도 몇 시간밖에 안 자고 등산을 하느라 너무 힘들었다. 등산을 하는데 숙취 때문에 수분을 빼앗겨서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거의 서로 말없이 등산했다.


하지만 우리는 건강했다. 한라산 등반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보통 왕복 8시간~ 길게 10시간 정도가 평균이라고 했는데, 거의 뛰다시피 올라가거나 휴식을 많이 하지 않았더니 우리는 6시간 반~ 7시간 정도 걸렸다.

청춘의 힘은 대단하다.


어찌 되었든 우리의 여행 목적을 달성하고 나서(숙소에 돌아가니 패배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날 밤도 술판을 벌였다.

그리고 나는,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취소했다. 누나와 친해지는 과정에서 제주도에 더 있고 싶다는 이야길 했고, 그녀가 나의 비행기표 취소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친구들은 돌아갔다. 각자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이제 나는 돌아가는 비행기가 없고, 혼자이고, 언제 돌아갈지 모른다.' 그 사실이 마냥 즐거웠다.


그 게스트하우스에는 단골들이 많았다. 왔던 사람들이 재방문을 하고, 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연락을 취해서 같은 날에 맞춰서 놀러 오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모임들이 있는 것 같았다. 다음 날 도착한 누나의 지인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중 제주도에서 목수 일을 하는 형이 있었다. 딱 봐도 이미지부터 엄청 순하고 착한데, 박명수처럼 떽떽 화를 내면서 형들과 장난을 쳤다. 화를 내는데, 그것이 누가 봐도 애정표현이라는 것이 느껴져서 너무 매력적이었다. 나는 형이 너무 웃겼다. 그래서 “형 너무 웃겨요” 했더니, 형이 나한테도 떽떽거렸다. 나는 참외배꼽인데 수박배꼽이 될 뻔했다.


다음 날 목수 형 집에 도착했다. 집이 깔끔하고 좋았다. 우리는 동그랗게 앉아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사람들과 고기를 구워 먹는데, 그중 한 명이 오늘 잘 숙소를 정했는지 내게 물어봤다. “아 찾아봐야겠어요”하고 찾으려는데, 목수 형이 그냥 둘 다 여기서 지내다 가라고 했다.

그래서 얼떨결에, 며칠 동안 누나와 셋이 함께 생활을 하게 됐다.


다 같이 드라이브를 가기도 하고, 자장면 먹으러 가고. 또 하루는 함께 영화를 보기도 하고, 형이 출근하는 동안 누나와 나가서 돌아다니기도 했다.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내는 동안 형은 내게 돈 한 푼 못 쓰게 했다. 먹는 거며, 입는 것. 모든 의식주를 제공했다. 이 정도로 모든 것을 내어준다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호의의 정석'이었다.


형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솔직히 아직도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 나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뭐라 할까, 남에게 대가 없는 호의를 베푸는 기준치가 다르다. 아무리 생각해도, 얼마 보지도 않았는데 그 정도로 해줄 순 없다.


인간은 이득이 없으면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실이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어떤 부분에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든, 그 사람에게 배울 점이 있다고 느끼든, 사랑의 감정을 느끼든- 그 ‘이득’이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일지라도, 우리는 상대방에게 무의식적으로 무언가의 이득을 취한다.

하지만 그런 것이 없다면 관계는 점점 멀어진다. 스스로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을 찾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내가 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함에 있어서 그 사람은 나의 어떤 가치를 높게 사는지 알면, 나 스스로를 좀 더 잘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형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떤 이득을 나에게 취하려고 했을까…


그런데 별로 알고 싶지가 않다.


물론 형은 나에게 이득을 취했을 것이다. 베푸는 것으로 행복해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단순하게 나랑 있는 시간이 재밌어서 그 시간을 즐기고 싶어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마치, 내가 선한 에너지에 짓눌리는 듯하다.



3.

눈을 떠보니, 이제 막 다 같이 잠에 드려는 듯하다.

막걸리를 너무 많이 마신 탓에 내가 어떻게 거실에 누웠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내 양 쪽으로 누나, 형.. 아 잠이 온다.

어. 그런데 누군가 내 종아리를 건드린다. 잠꼬대를 하나보다, 하는데 다시 한번 더 건드린다. 나는 왼쪽 다리를 오른쪽 다리 쪽으로 좀 더 치웠다.

스-윽.

발로 내 종아리를 또다시 간지럽혔다. 이것은 백 퍼센트 의도된 행동이었다.

난 눈을 감은 채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연상은 유혹하는 방법도 다른 가보다. 근데 내가 누나에게 호감이 있는 것이 티가 났나? 직접적으로 표현을 하진 않았는데 역시 연상은 눈치도 빠른가… 어? 잠깐만. 누나는 오른쪽에 있다.

….



형의 집에서 생활하던 중에, 목수 형이 아는 사람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지인 중 카라반에서 생활하는 형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곳으로 다 같이 놀러 갔다. 넓은 바닷가, 그 한쪽 편에 흰색 카라반이 있었다.

차 앞에는 엄청 큰 개가 있었다. 흰색과 검은색 털로 뒤덮인, 뭔가 설인 느낌이 나는 삽살개였다. 개가 먼저 보이고, 우리는 카라반 형과 인사했다. 형은 장발에 이탈리아 사람처럼 높은 코를 가지고 있었다. 자연인 같다.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인상이 확 풍겨졌다. 형은 안으로 들어가자며 우리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차 안으로 들어서서 왼쪽 안 쪽으로 들어가니, 빨간색 직사각형 테이블과 그 양 쪽으로 여닫이 창문이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반대편에는 침대가 있다. 가스레인지도 있고, 화장실도 있다. 카라반이 처음이라 너무 신기했다.

우리는 막걸리를 마셨다. 그렇게 맛있는 막걸리는 처음이었다. 무슨 노래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노래가 너무 좋았다. 노랫소리, 양 쪽 창 사이로 솔솔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 카라반형이 프라이팬에 요리를 하며 음식이 달궈지는 소리 그리고 우리들의 웃음소리. 순간을 만끽하며 현 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갑자기, 창 밖으로 안경을 쓰고 있는 누군가 날 멀뚱멀뚱 쳐다본다. 지나가는 행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카라반 형의 지인이었다.

“지나가다가 들렸어요.”

그는 합석했다.

이자카야를 운영하고 있는 분이었다. 되게 아저씨처럼 생겼는데, 성격이 정말 온순하셨다. 특이한 캐릭터라 술자리의 재미는 배가 되었다.


날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졌다. 처음엔 한 두 방울 떨어지더니 점점 많이.. 소나기가 쏟아졌다.

“혹시 지금 바다 들어가면 같이 갈 사람 있어요?”

이자카야 형이 말했다. 갑자기 뜬금없이 지금 입수를 한다고? 정말 어이없이 좋았다.

나와 형은 팬티만 입은 채로 음주입수를 했다. 음주를 한 채로 물에 들어가는 행위는 정말 위험하다. 심지어 소나기가 올 때는 더, 그러니 절대 따라 하면 안 된다. 들어가서 심장이 멎을 듯한 냉기를 느끼고, 난 바다 안에서 오줌을 싸 버렸다. 정말 너무 추웠는데, 행복감은 그 추위에 비례했다.

“오늘 정말 잘 왔네~”

카라반 안에서 수건을 두른 채로 난로 앞에서 몸을 녹이고 있던 중, 카라반 형이 말했다. 뭔가 순간, ‘말죽거리 잔혹사’의 떡볶이 아줌마 같은 뉘앙스를 풍겼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 상황이 온 거다.

나는 배 아픈 척 끙하며 화장실로 갔다. 변기 앞에 서서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주마등처럼 우리가 나눴던 얘기들, 그 형이 했던 말들과 눈빛, 목소리 이 모든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동성애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 새끼 게이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참고로 난 성소수자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이 전혀 없다. 오히려 멋있고 개성 있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근데 이건 성추행이잖아.

정말 무서웠다. 이 상황에 닥치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그래도 내가 겁이 많은 편은 아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트라우마가 생겼을 거다.

난 변기 물을 내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설마 또 그러겠어.

그런다. 진짜 미칠 것 같다. 다시 화장실로 간다. 이번엔 대사 하나를 추가했다. “아.. 배야.”

변기에 앉아서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어차피 사람들 다 있으니 날 어떻게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용감하게 나가서 이불이 안 깔려 있는 왼쪽 끝 가장자리, 목수형 옆에 누웠다.

누워있는데 잠시 뒤에, 그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저벅저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다가 내 발 밑에서 소리가 멈췄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그는 소리 내서 웃었다. 실성한 듯이 웃었다. 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고 그는 밖으로 나갔다.


우리가 술을 자기 통제가 안될 정도로 정말 많이 마시긴 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조금 특이하긴 했지만.

어찌 됐든 난 특별한 경험에 감사했다.



4.

그다음 날, 나는 집에서 나왔다. 절대로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근데 정말 아니다. 형 집에서 지낸 지 몇 일정도 지났을 때, 이제 나가야겠다 생각했다. 언제까지 형 집에서 기생충처럼 지낼 순 없었다. 누나와 같이 여행하고 싶어서 어떻게 말할까 고민할 즈음, 누나가 먼저, 본인은 이제 나가서 여행할 건데 넌 어떻게 할 거냐며 물어봐 줬다.

누나와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설레었다.

우린 주로 올레길을 걸었다. 둘 다 걷는 것을 좋아했다. 걷고, 걷고, 또 걷고… 중간중간 발이 아프고 힘들다는 생각을 했지만, 정신적으로는 하나도 그렇지 않았다. 누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친해지고 있어서 그랬을 것이었다.

우리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누나는 이야기를 나눌수록 배울 점이 많고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누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다. 해외는 거의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이 다녔고, 그러다 어떤 위험한 사건의 계기로 해외는 잘 다니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는데도 여전히 다양한 사람들과 인연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모든 경험과 시간을 소중하게 대했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난 누나가 점점 좋아졌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나를 완전히 동생 그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좋아하는 마음을 굳이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정말 만에 하나 누나도 나에게 마음이 있다고 해도, 그래서 잘 된다고 해도, 나는 몇 주 뒤에 군대를 가야 했다.


‘나 누나한테 표현하고 싶어.’

하지만 고백 아닌 고백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같이 다니면서 스스로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 밖으로 꺼내려다 계속 막혔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고백’이다. 내가 편해지기 위해 정말 온전히 상대방의 답에 상관없이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것은 순수함일까, 욕심일까. 어찌 됐든 고백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중요했지, 다른 것은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고백을 했다. 나의 당돌한 고백을 받은 누나는 웃었다.


그 뒤의 시간으로부터 나는 계속해서 표현할 수 있었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나는 대로 했다.

“나중에 카라반 같은 거 하나 사서 여행 다니고 싶다.”

“내가 사줄까?”

“네가 어떻게 사.”

“한 15년 정도만 기다려줘.”

누나는 빵 터지며 말했다.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아니야?”

“나 지금 진지해. 되게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신중하게 대답한 거야.”


누나는 나에게 점점 마음을 열었다. 우리는 서로를 점점 더 좋아하게 됐다. 하지만 난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 스킨십은 하지 말자. 나 군대 가서 어차피 우리 못 만나는데, 마음 더 깊어지면 서로 힘들어질 것 같아.”


나는 ‘곰신’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연인 사이에 오랫동안 못 보는 것도 힘든 상황인데, 심지어 남자가 군인이라면 남녀는 각자 나름대로의 엄청난 심리적인 부담감이 생긴다. 여자의 노력은 시간낭비가 되지 않아야 하고, 남자는 그 노력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한다. 심지어 여기서 의심이 싹트면 파국이다.

물론 누나도 군대를 기다릴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 같았지만, 난 내가 군인 신분에서 여자친구가 있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스킨십을 통제한다는 것은, 관계에 선을 긋는 것이었다.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알지만 합의하에 서로의 욕구를 통제하는 것은 신선하기도, 어렵기도 했다.

그래서, 그럼에도, 우리는 스킨십을 했다. 서로 좋아하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하루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좋아하는 마음을 참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절제를 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랬다.

하지만 스킨십을 떠나서, 단지 함께 하는 시간들이 연인 같고 좋았다. 장난치고, 배려하고, 시장에서 유치한 잠옷을 커플로 사서 입기도 했다. 그 추억들은 떠올리면 따뜻하고 아련하다.


우리는 며칠 뒤, 비슷한 시간대의 다른 비행기를 타고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육지로 간 그 이후에도 몇 번 만났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이 비슷했고, 평소에 머무르기 좋아하는 온도가 비슷했다. 난 그녀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입대가 다가왔다.


나는 전화로 거짓말을 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전역하고 나서도 누나를 많이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항상 후회를 잘하지 않는다고 합리화한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신중하게 선택한 것이고, 그것이 부족했다면 온전히 나의 실수다. 그 실수를 통해 다음번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당시에 내가 그녀와의 관계를 끊어낸 것은, 스스로 멋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나에 대해 관심을 끊어내야 하는 누나를 배려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배려가 아니고 단지 그 관계를 책임질 용기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냥 비겁한 사람이었구나.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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