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

-나의 이야기

by 장지영

코로나19가 시작되었다. 1월 23일, 우한 공항이 폐쇄되었다. 우리의 비행기 날짜는 23일이었다.


돌아갈 때가 되어서야 그 소식을 접했다. 처음 경유할 때 만났던 형들은, 그 때문에 다른 나라 공항에 갇혀 있다가 돈 100만 원을 더 쓰고 그 나라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샀다고 했다.

우리는 다행히 돌아가는 비행기가 우한 경유가 아니었다. 티켓을 예매할 때, 중국 구경도 하고 싶어서 굳이 오는 비행기는 광저우 경유를 선택했다. 그래서 코로나를 피해 무사히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뭐 신종인플루엔자 그런 거 아냐?”

안전불감증을 앓고 있던 나는, 공항이 폐쇄되었다는데 이 따위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오랫동안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불편함 만을 호소하고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결함이지만, 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방 사람의 단점이라고 여기는 부분이 있다.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관심을 가질 만한 기회가 적다. 그래서 대체로 그 문제들에 대해 공감을 잘하지 못한다. 뉴스를 봐도 그냥 먼 나라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에 오고 나서는 다양한 문화를 접하기 쉬웠다. 광화문 길거리에 나가기만 해도 시위하는 것이 흔히 보이고, 지하철 1호선 사람들도 자주 볼 수 있다. 1호선 빌런 문화는 사회적 문제에 질문을 던지곤 한다.


물론, 실제로 보기 이전에도 뉴스나 영상으로 많이 봤다. 하지만 심리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그 환경에 존재하는 것과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생각과 느낌을 준다.

조금 극단적인 예로, ‘살인사건 현장에 있는 것’과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이런 이야길 하면 내 친구 중 한 명은 이렇게 말한다. “그건 다르지. 그건 실제가 아니잖아.”

지금까지 이 세상에 살인사건 피해자가 몇 명이고 ‘스릴러 영화 같은’ 상황에 처해진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데 이 따위로 얘기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현실이 무엇이고 가상이 무엇인가?

제발 그가 살인자와 술래잡기를 하는 상황이 왔으면 좋겠다. 좋은 예를 제공해 준 친구에게 감사를 표한다.


사람이 공감을 왜 할까? 자기 인생만 잘 살면 되는데 말이다. 어차피 혼자 사는 인생 아닌가?


공감은 ‘자기 인생을 잘 살기 위해’ 한다.

공감(共感)은, ‘상대방 입장에 서서 상의의 경험한 바를 이해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행위’라고 위키백과에 정의되어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접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그 덕분에 우리가 유사한 경험에 대비할 수 있다. 엇비슷한 상황이 내 인생에 언제 닥칠지 모른다.

‘감기’ 영화가 처음 상영되었을 때, 코로나19 같은 팬데믹 현상이 우리 인생에 실제로 닥칠 줄 생각이나 했을까? 만약 우리가 과거에 존재했다면, 팬데믹 현상을 영화로 만든다는 그런 상상조차도 못 할 시대였다면, 코로나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빼앗겼을 것이다.

공감을 함으로써, 남의 경험을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만들어서 그것이 나의 자양분이 되도록, 내가 더 잘 살도록 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공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1차원 적으로 생각해 봐도 공감을 하는 사람이 확실히 잘 살아간다. 그렇지 않은가? 여자친구한테 공감을 잘해줘야 혼이 나지 않는다.


‘혼자 노는 방법. 함께라는 감사함. 거리두기 정도의 배려가 적당하다. 마스크는 불편하다…’


내가 코로나19를 통해 배운 것들이다. 그리고, ‘내 인생’을 잘 살기 위해 ‘사회적인 공감’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통해, 사회와의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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