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배려하면서도, 배려하지 않는다.
배려에 대한 흔한 말들. 배려의 본질은 무엇일까.
나는 여태 상대방을 엄청 배려하며 살아왔다. 아니, 그렇게 믿고 살아왔다.
누구나 그렇다. 의도가 어떻든, 최선을 다해 ‘남들을 위한 행동’을 한다.
남자와 여자가 있다.
둘은 만난 지 세 시간 정도 되었다. 서로의 지인의 소개로 1주일 만에 만났다.
“저녁은 뭐 드실래요?” A가 말한다.
“아 저는 아무거나 다 잘 먹어요.” B가 대답한다.
“음.. 그럼 제가 맛집 찾아볼게요!”
"좋아하시는 걸로 드셔도 돼요!"
겉으로 보기엔 전혀 문제가 없는 이 대화는 사실, 문제가 있다.
일단 A와 B의 서로의 호감 정도에 대해서는 배제하자. 사랑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니.
먼저 ‘아무거나’라는 말이 문제다. A는 못 먹는 것이 있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물어봤다. 그런데 상대방은 자기 식습관을 이야기했다.
A는 B를 위해 질문을 건넸다. 그리고 맛집을 찾았다.
하지만 B는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성의가 없거나, 그 책임을 자신이 부담하기 싫은 것이다.
‘아니 정말 아무거나 잘 먹어요. 이렇게 말해야 상대방이 메뉴 선택에 부담이 없죠.’
더 부담이 생긴다.
배려의 대부분은 이런 식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이 배려는, 겉보기에 남을 위한 행동 같지만 결국 자신이 편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다. 자신이 당장에 불편한 상황이다 보니 눈치를 보며 남에게 책임을 돌린다.
이것을 본인도 모른다. 스스로는 불편함을 건네면서, 스스로 그 행동을 배려라고 믿는다. 배려의 본질은 '상대방을 위한 마음을 쓰는 것'인데, 흔한 배려를 따라가다 보면 그 본질을 잃는다. ‘눈치를 보는 행동’과 ‘배려’는 비슷한 모습이다.
배려는 최종적으로 ‘둘 다 편안한 상태’를 향해야 한다. 상대방을 편하게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자신이 조금 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고, 자신이 이미 불편하다면 자신의 불편함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다. 서로 그 불편함을 책임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이상적인 배려다.
“내가 낼게.”
“아냐, 내가 낼게.”
“야, 저번에 네가 냈잖아. 오늘은 내가 낼게.”
“야 이 자식아, 저번 크리스마스 때 네가 냈잖아. 내가 낸다니까.”
“이 새x가 진짜!”
… 상대방과 나의 편함과 불편함 사이, 그 중간 지점을 찾는 것이 배려일까.
사실 배려는 너무 어렵다. 정답이 없어서다. 사람마다 성격도 다 다르고 표현방식도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것이 배려이고 배려가 아닌 지에 대한 기준은 사람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눈치나 센스도 있어야 하고, 자존심도 버릴 줄 알아야 하며, 때로는 무언가를 포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어렵다.
‘온전히 긍정적인 영향’.
배려는,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봤을 때, 과장해서 그 사람의 인생을 생각해 봤을 때, 내가 상대방의 '인생에게' 좋은 영향을 준 것이다. 배려는, 결과를 ‘지향’ 해야 한다.
내가 그 사람이 아닌데 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긍정적이라고 판단했는데 상대방은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최선을 다하는 것? 배려는 노력일까.
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배려가 아니라, 정말 그 사람이 편하고 행복한 상태가 되었으면 하는 배려. 보이는 작은 행동부터, 그 사람이 보지 못하는 시야에서도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 사람이 알던 모르던 상관하지 않고, 오히려 최대한 섬세하고 깊게 배려해서 모르게 하는 것.
그것은 사랑을 할 때 자연스럽게 나온다. 배려는 사랑일까.
배려를 알아볼 사람은 알아본다. 그럼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다. ‘기브 앤 테이크’는 성품 판독기.
“우리 헤어지자."
노력을 하고 나서, 스스로 판단한다.
내가 이 사람에게 특별하게 좋은 영향을 주진 않는구나, 내가 이 사람과 잘 맞지는 않는구나.
혹은 상대방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 때, 노력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을 때.
또는 내가 그럴 수 없을 때, 그 사람과의 차원적인 타이밍이 맞지 않을 때.
그 사람과 관계를 끊는다. 그렇게, 배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