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自然)

-나의 이야기

by 장지영

1. 자연(自然)


햇볕이 강하게 내리쬔다. 머리는 전투모 때문에 조금 불편하다.

훈련을 하던 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호흡이 조금 가파르다.

“하 존나 힘드네.”

옆에서 다른 훈련병들이 대화를 한다. 조금 부정적이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옆에서 거든다.


툭.

빗방울이 떨어진다.

툭. 툭.

점점 많이 떨어지더니, 꽤 온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해가 여전히 강하게 내리쬔다. 여우비다.


빗방울이 연두색 풀들 사이로 떨어진다. 풀 위로도 떨어진다.

빗방울의 무게를 전달받은 풀들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원위치로 돌아오려 한다.

이슬을 머금은 풀도 있고, 고개를 흔들어 그것을 거부하는 풀도 있다.


무게를 전달받은 풀들이 전체적으로 조금씩 움직인다. 오케스트라 같다. 그리고 그 풀들은 갑자기 햇빛을 받아 빛이 나기 시작한다.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자연(自然)은 생명력을 가지고 스스로 생성, 발전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자연을 좋아한다. 나와 닮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살아있는 상태이고 싶고, 독립적으로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고 싶어 하고, 나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싶어 한다.


자연스럽고, 자연이고 싶다.


생각해 보니, 사실 나는 애초에 자연이었다.



2. 마약중독 치료


내 첫 몽정(夢精)은 훈련소였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꿈에 어떤 외국 여자가 나와서 이렇게 저렇게 했다.

난 사정을 하기 전에 직감적으로 눈을 떴고, 속옷에 묻을 까봐 1초 만에 바지를 잡아끌었다. 주변을 둘러봤더니 모두 코를 골며 자고 있었고, 나는 화장실로 갔다.


휴대폰을 살면서 이 정도로 오랫동안 만지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휴대폰 생각이 많이 날 것이라 생각했다.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없어서 답답하긴 했지만, 그 안에서 해야 할 것들을 하는 동안에는 의외로 생각이 전혀 나질 않았다.

연락을 하지 못하고,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친구 중 한 명은 인터넷 편지로 유재석이 은퇴했다고 했는데, 무슨 바보도 아니고 그걸 그대로 믿었다.


담배도 피우지 않았고, 음악, 성관계도 없다(자위행위도 하지 못한다). 많은 종류의 도파민들이 사라졌다.


밥이 맛있었다. 힘든 일 뒤에 먹는 밥은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다. 짬밥이 맛이 없다고? 안 힘들어서다. 정말 과장 하나도 안 하고 반찬 없이 밥만 줘도 잘 먹었을 거다. 밥에서 단맛이 느껴진다. 그 정도로 맛과 관계없이 음식들이 맛있게 느껴졌다.


TV는 조금씩 볼 수 있었다. 가끔씩 그 검은색 테두리의 직사각형 물체를 보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나의 입대 당시엔 잇지(ITZY)라는 아이돌이 인기가 있었다. 난 살면서 원더걸스와 소녀시대 이후로 아이돌은 관심이 없었고 모르기도 잘 몰랐는데, 그곳에서 아이돌은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그들이 춤을 추면, 내 심장이 춤을 췄다. TV안의 세계와 내가 소통을 했다. 안무를 하는 손짓 하나하나의 느낌들이 모두 전달이 됐다. 보면서 막 좋아하다가 중간에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마치 내가 오타쿠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그게 사실이었다. 힘든 삶 속에서 그것을 충전해 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그것은 정말 순수한 팬 사랑이었고, 그들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신성하고 감사했다.


자극적인 것들이 없어지니까, 나는 섬세하고 순수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작은 것에 웃기고 재밌었다. 그리고 작은 일에 감사하고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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