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인 시간

by 장지영

흔히 ‘뺑이 친다’고 한다.

군대에서 고생거리인 일, 작업을 하거나 잡일을 할 때 이렇게 말한다. 군대에 가면 정말 일거리가 많다. 막 계속 생긴다. 그중엔 정말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일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제설 작업이다. 눈이 계속 오고 있는데 제설 작업을 했다가, 한두 시간 뒤에 눈이 또 쌓여서 똑같은 곳을 다시 하러 나온다. 정말 이런 바보들이 없다.

고생하지 않고 휴식을 취했을 때는 ‘꿀을 빨았다’라고 표현한다.

며칠 전에 예비군을 다녀왔는데, 사격을 하고 돌아와서 생활관 현역 군인에게 뭐 하고 있었냐고 물어봤더니 “꿀벌입니다.” 했다. 실제로 군대에서는 서로 여왕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 한다. 정작 나는 뺑이를 치는데, 남이 꿀을 빨고 있으면 배가 아플 수 있다. 군인들의 복통은 생각보다 그 고통이 커서, 서로 예민해지고 감정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시간 왜 이렇게 안 가냐’, ‘휴가 언제냐’를 입에 달고 산다.

이해한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의무를 다 해야 하는데, 그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위 군대용어들의 공통점은, 모두 ‘시간’과 연관된 말들이다.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우리가 말하는 보편적인 ‘시간’은 시계를 말한다. 그것은 우리가 계산과 이론의 편의를 위해서 정한 것이지, 시간이라는 것의 존재는 아직 과학적으로도 밝혀진 것이 없다.

‘인터스텔라’에서는, 중력장이 다른 공간에 잠깐 갔다 왔는데 20년이 흘러있다.

뉴턴은 시간에 대해 ‘어떤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는 형식’이라고 말했고,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으로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은 가만히 있는 사람의 시간보다 더 느리게 간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현대 물리학자들은 시간이 뭔지 ‘모른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시간은 환상일 뿐이란다. 시간은 도대체 정체가 뭘까?


‘심리적 시간’.

과학 그런 거 일단 모르겠고, 어쨌든 우리는 가끔 시간을 보고 느리게 간다, 빠르게 간다고 느낀다. 우리는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라고 말하지만, 군인은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냐.’고 말한다.

정말 단지 표현방식이 그런 걸까? 저 말을 한 사람은 정말 시간이 흐른 것에 대해 느낀 진심을 말했을 것이고 그것이 거짓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 그냥 개인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냐고? 맞다. 시간은 개인이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은 ‘상대적’이다.


우주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시간은 어찌 됐든 단지 자신이 ‘느끼는’ 것이 전부다. 내가 없으면 시간도 없다. 하지만 만약 그러한 시간에 대해 느끼는 것을 의도적으로 통제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놀라운 사실이다. 그것은 '몰입'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운동을 한다. 러닝, 등산 등등.

과연 ‘뺑이 치는 것’과 ‘러닝’ 그리고 ‘등산’ 중에 어떤 것이 가장 힘들까? 무엇이 시간적으로 가장 효율적일까. 나는 등산으로 하겠다. 등산이 아무래도 제일 힘들지 않나? 어떤 산인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등산은 높고 낮은 여러 가지 형태의 지형을…

아니 이게 도대체 뭐가 중요한가. 등산이 이기면 상 주나?

군대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얘가 꿀을 빨았다, 쟤가 꿀을 빨았다 ‘비교’를 해댄다. 알아서 하겠지 하면 서로 너무 좋은데 말이다.

남이 꿀을 빨던 토를 하던, 항상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개인의 시간'을 우선시하고 그 시간에 기준을 두고 집중해야 한다. 자신이 느끼는 시간에 대해서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면 그 시간이 온전히 자기가 소유하는 시간이 될 수 없다.


그리고 꿀을 도대체 왜 빠는 거냐. 그만 좀 빨아댔으면 좋겠다.

군대에 있는 시간이 아까우면 그 시간을 활용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기를 쓰고 꿀벌이 되려고 하면 앞뒤가 안 맞는 것 아닌가? 사회로 치면 백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꿀벌도 일은 한다. 일을 하는 것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면 휴식의 즐거움도 느끼지 못한다. 휴식을 위해 휴식을 취하면 그 휴식은 꿀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벌이 될 것이다.


마음가짐. 위 내용들은 마음가짐이다. 시간은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심리를 이용해야 한다.

시간이 다르게 흐르게 하기 위한 마음가짐을 가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는 ‘나의 의지’로 하는 행동인가. 둘째는 ‘생산적인 활동’인가.


‘등산’은 나의 의지이고, ‘뺑이 치는 것’은 반강제적 행동이다.

우리는 러닝이나 등산을 하면서 ‘뺑이 친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둘 다 똑같은 운동이고, 칼로리를 소모하는 행위인데 말이다. 등산이 뺑이 치는 것보다 물리적으로 더 힘든 데도, 뺑이 치는 것으로 더 많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의 의지로 나의 신체를 움직이느냐 아니냐는 크게 다르다. 애초 사람은 ‘의지대로’ 움직이도록 만들어져 있어서, 그것이 곧 ‘정상적인’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이 가장 건강하게 움직이는 방법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영리하게 통제한다면, 자유의지로 행복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는 뺑이 치는 것을, 의지를 가진, 건강한 행동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활동이 스스로 생각했을 때 ‘생산적인 활동’이어야 한다. 그 활동을 통해 내가 얻는 이득이 있고, 당장이든 이후든 나에게 어떠한 도움이 되어야 정말 내가 움직이고 싶어 진다.

예를 들어 회식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 나의 모임 참석여부가 달라지는 것. 그 사람이 있음으로 인해 그 회식이 생산적인 시간이라고 판단한다.

하다 못해 음식으로 친다면, ‘맛있음‘이라는 만족할 만한 욕구 충족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음식을 먹을 때 맛이 있었으면 배가 부를 때 만족이 되고, 맛없는 음식으로 애매하게 배를 채우면 왠지 모르게 ‘시간을 낭비’ 한 것 같고 기분이 더러운 경우가 있다. 단지 자신이 진정 만족하는 시간이냐가 관건이다.


나는 뺑이를 치면서, 내가 그 행위를 통해 군대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긍정적으로 형성한다거나, 작업을 하며 생활 속 지혜를 얻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나도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하기 싫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내가 이 행위를 통해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것을 의도적으로 찾았다. 그러다 보니 긍정이 낙천이 되었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정말 스스로 믿게 된다.

그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그랬던 것일 수도 있다.

사실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정말 엄청난 이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시간 낭비였을 수도 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방어기제’ 같은 자기 합리화였을 수도 있고, 긍정적인 마인드 셋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그 시간의 질을 높이고 조금 더 시간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이 있든 없든, 단지 내가 ‘무엇을 했고’ 그동안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만 존재한다.

시간은 개인이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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